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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명 주소라는 것

배철지(시인, 완도문화21 이사)

  • 배철지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5.04.09 08:20
  • 수정 2015.11.0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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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지(시인, 완도문화21 이사)

세상은 늘 변화한다. 인심이나 도덕률과 같은 인문적인 것에서부터, 의식주를 이루는 것을 포함한 자연과학적인 요소들까지 모두 변화하고 새로운 것으로 자리매김한다. 더러는 그런 모습들을 발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변화는 갈수록 급격해져서 그 속도를 따라 잡기가 힘든 경우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기가 힘들기는 하지만 애쓰는 정도에 따라서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고, 영 어려우면 그냥 시류에 따라가기만 해도 사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영영 잃어버리는 것도 있다. 필요가 없어서 버리는 게 아니라 내 뜻에 관계없이 송두리째 없어지는 것도 있으니 그 중 하나가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게 되어서 쓰지 않게 된 내가 난 곳의 땅 이름이다.

그런데 이 이름이라는 것이 가지는 무게는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렇게 쓰다가 마구 버릴 만큼 가볍지 않다는 게 문제이다. 사람이면 태어나면서 누군가가 이름을 짓고 그 이름으로 불러지면서 사회적인 존재임을 인정받게 된다. 그러다가 죽게 되면 스스로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어서 버려지지만 더러는 기록에 남아 있으니 그 생명력이 참으로 길다 하겠다. 그러면 태어나서 탯자리를 묻고 거기에서 살아가는 터전의 이름은 또 어떨까. 개개인의 이름이야 그 사람의 삶의 궤적에 따라서 달라지지만 마을의 이름은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이고 명분이며 사회적인 기능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완도군 문화원에서 1998년에 펴낸 ‘완도의 옛지명’ 이라는 책자의 삼십사 쪽을 보면 “장좌리 마을의 예전 이름은 장사(將師) 마을 즉 장좌리(將坐里) 또는 장좌리(張坐里)였다는 설이 있었으며 장좌리(張坐里)라는 이름은 장씨(張氏-장보고)가 있었던 곳으로 표기되어 오다가 1910년 한일합병과 동시에 우리 민족의 흔적을 말살하기 위하여 장좌리(長佐理)로 바꿔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름을 도로명 주소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가령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 33번지’는 ‘청해진로 1353번길 20’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 바뀐 저 주소 어디에서 저런 역사를 찾아 볼수 있을까? 만약 저 주소대로 사용해 몇 십 년쯤 지나서 세대가 바뀌면 장좌리라는 이름은 향토사의 한 쪽에서나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나라의 역사를 살펴봐도 왕조가 바뀌어서 고을 이름은 더러 바뀌고 통폐합이 되었을망정 마을 이름이 저렇게 없어진 경우는 단언컨대 없었다.

자 사정이 이리 되었으니 어떻게 할까. 사용하지 말자고 할까? 그러기에는 우리의 세금이 너무나 많이 들어가서 되돌리기가 어렵게 되었으니 결국 절충안을 찾아야하고 그 방법은 ‘김준거’씨가 올해 삼월 이십일자 완도신문에 기고한 글에 이미 나와 있다. 그 방법대로 한다면 저 주소는 ‘청해진로 장좌리길 20’으로 표기할 수 있으니 도로명 주소를 만든 취지에도 어긋나지 않고 마을 이름도 살릴 수 있게 된다.

좋은 제도는 취지가 좋다면 그에 잘 따라서 만든 것이다. 하지만 훌륭한 제도는 시행했을 때 드러난 문제점을 적극 수용하고 보완해서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게 하는 것이니 저렇게 드러난 문제점을 받아들여 최소한 우리 완도만이라도 합리적인 도로명 주소를 사용한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