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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에 면도까지 2천원, “그냥 봉사야”

완도를 희망하는 사람들: 회룡리 이발사 이사동 씨

  • 박남수 기자 wandopia@daum.net
  • 입력 2015.03.18 15:43
  • 수정 2015.11.2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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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금면 회룡리 금성이발관 이사동(78)씨가 지난 18일 단골의 머리를 다듬고 있다.


고금면 회룡리는 조용하고 작은 마을이다. 한때 본교였던 초등학교도 이제 폐교 됐고 주민이라야 82세대가 전부다. 갈수록 인구는 줄어든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50년 된 금성이발관이 있다.

이발관 주인 이사동(78) 씨는 지난 1963년에 이용사 면허를 딴 후로 지금도 가위를 들고 있다. 그런데 이용 요금은 이발과 면도에 머리 감고 드라이까지 단돈 2천원이면 해결된다. 공짜나 다름없다. 봄비 내리는 지난 18일 아침, 한 시간에 두 사람 손님이 다녀갔다.

금성이발관에는 새 것이 별로 없다. 모든 게 낡았다. 그 중 앞쪽 구석 연장함 위 상석에 놓인 작은 물조루는 이씨가 아끼는 보물 1호다. 아래 부분에 구멍까지 났다. 50년 전 처음 사용했다는 손 조루다. 금성이발관은 의자도 골동품에 가깝다. 거울 위 액자에 든 자격증은 글자마저 희미하다. 사업자등록증, 요금표, 표창장 등이 있다. 다른 벽면에는 밀레의 ‘만종’ 그림과 5월 8일 받았을 것 같은 카네이션도 여럿 걸렸다.

휴대용 ‘부루스타’에 얹은 솥에서 물이 끓는다. 이발을 끝낸 이 씨는 솔에 비누거품을 묻히더니 익숙한 솜씨로 면도한다. 손 조루에 더운 물을 담아 머리를 감긴다. 그리고 드라이까지 서울 특급호텔 내 이발소와 다를 게 뭔가?

2008년 완도군수로부터 받은 상장의 내용에는 “고유가 시대에 이용료를 동결하고 거동 불편한 어르신들에게 무료 출장 이용 봉사를 실천”한 사연이 나온다. 이 씨는 회룡리는 물론이고 고금면 어디라도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노인들의 요청이 오면 출장을 간다. 때로 누워있는 환자를 이발했던 경우도 있다. 이 씨의 출장 봉사는 무료가 원칙이다.

이 씨가 이용사 면허를 따던 날에 사연도 흥미롭다. 광주에서 시험 보던 당시(1963년)에는 응시자가 직접 모델을 데리고 갔다. 그날 응시자가 전부 1,900명이었으니 각자 데리고 온 모델도 1,900명이다. 광주에서 대학 다니던 동네 후배의 자취방에서 잠을 해결하고 시험장에서 만나기로 했던 후배는 이 씨 차례가 지나도록 시험장에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타난 후배를 모델 삼아 다행히 시험을 봤고 결국 합격했다. 합격자는 200명이었다. 그때 지각한 모델이 전 광주시장을 지낸 박광태 씨다. 박광태 시장의 고향이 고금도 회룡리다.

지금 자리에서만 50년 정도 영업했다. 손님들 대부분은 고금도 사람들이지만 요즘은 약산에서도 온다. 신지와 고금이 다리로 연결되는 2년 후면 완도에서도 올 거다. 요즘 들어 뻬놓을 수 없는 신규 고객들이 있다. 바로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고금도 양식장에서 일하는 중국, 파키스탄, 네팔 등지 출신의 젊은 친구들이 이 씨의 단골이다.

이발이 본업이지만 유자, 감, 고추 농사 등 못하는 게 없다. 이번 비 그치면 이 씨의 하루는 더 바빠진다. “이용 요금 2천원 받아 뭐가 남느냐?”는 질문에 “뭘 남기겠어. 그냥 봉사하는 거지” 대답한다. 이 씨의 이발 요금이 더 오를 것 같지 않다. 회룡리 이 씨의 봉사가 앞으로 10년, 20년은 거뜬할 것 같다. 그러니 꼭 가보시라. 이 씨가 머리를 만지면 장차 광역단체장이 된다는 속설을 믿으면서.

갈수록 인구가 줄어드는 고금도 회룡리에 멀리서 사람들이 찾는 까닭은 아직 성업 중인 금성이발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발사 이사동씨의 손길이 있는 까닭이다.

 

 

 

 

▲ 금성이발관 주인 이사동씨가 최초로 사용했다는 낡은 물조루다. 그의 재산목록 1호로 50년 정도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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