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2015년 장좌리 당제 당굿을 보고

배철지(시인, 완도문화21 이사)

  • 배철지 wandopia@daum.net
  • 입력 2015.03.12 09:36
  • 수정 2015.11.04 13:50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해의 장도 당제는 바람이 매서웠다. 기온도 영도에 가까워 꽃샘추위라는 말이 딱 맞았다. 그래도 장좌리 사람들은 길굿으로 길을 열어 썰물이 진 바다를 건너 장도로 들어갔다. 수백 년을 이어서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거나, 바람이 불거나 한결같이 음력 정월 보름날 새벽에 바다 한복판에 난 길을 따라서 마치 종이 위에 먹물이 듬뿍 묻은 붓으로 선을 그은 듯 검게 가라앉은 바다 위로 흰 옷 입은 풍물패들이 지나갔다. 사물소리를 앞세우고, 길라잡이는 춤으로 길을 열어 장도로만 들어갔다. 갈지자를 그리며 동네 사람들 몇몇이 뒤를 따르고 멀리서 당굿을 보기 위해 달려온 객꾼들이 그 뒤를 이어 사행진을 그리며 따라왔다.

그런데 올해의 꼬리는 다른 해에 비해서 유난히 짧았다. 그래서 뱀 꼬리가 아니라 토끼 꼬리처럼 보였다. 그러나 장도로는 이미 들어갔고 예전 같으면 딱딱 맞을 장단이 더러 어긋나고, 토드락거렸지만 그런들 어떠랴. 동네 사람들은 수효가 자꾸만 줄고, 나이들은 들어가는데 이렇게라도 지내는 게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이윽고 길은 열려 사당에 도착하고 예전에는 이고 지고 왔을 제물이 지금은 트럭에 실려와 기다리고 있었다. 집사가 상을 차리고 국태민안과 자유통일과 마을 사람들의 무사함을 빌고 함께 어울려 아침을 먹고 나니 제사는 이내 축제로 변했다.

그래서 멀리서 온 사람들이 어울려 춤추고, 소리꾼처럼 보이는 사람이 단가 ‘사철가’를 불러 분위기를 끌어 올리더니 그 절정은 ‘국악판 남행열차’였다.

그런데 숫자를 아무리 세어도 객이 마을 사람들보다 현저히 적았다. 물론 제를 지내는 데는 장좌리 사람들만 있어도 정성이 부족하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객꾼의 숫자가 관심의 정도를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라고 볼 때 해마다 그 숫자가 준다는 것은 세간의 관심에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거라 봐도 무방하리라. 선거가 끝난 탓인지 그 많던 선출직 공무원들도 군의회 의장을 제외하고는 보이지 않았다. 또 완도 문화의 중추인 문화원장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장도 당제를 그렇게 홀대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전승문화가 귀하디 귀한 우리 완도에서 그래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28호로 지정되었다는 이름표를 버젓이 달고 있으니 온전히 전승하고 보존해야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고, 다 없어져가던 완도 풍물의 맥을 되살린 장도 당제 열두군고의 상쇠였던 고 김봉도 씨의 수고로움이 아니었으면 풍물소리가 들리지도 않았을 것이니 그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그리하지는 말아야한다.

또한 당제는 이제 더이상 종교적인 행사는 아니다. 전승되어온 여러 놀이들이 신성을 버리고 축제로 전환된 지 오래이니 거기에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터부시하는 것도 참으로 옹색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내려오는 길에 바람결에 작은 소망을 하나 전했으니 내년에는 억지로 만든 축제가 아닌 전승되어 오는 축제에 모두 모여 한바탕 춤이라도 추었으면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