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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름

  • 김영채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4.12.18 14:00
  • 수정 2015.11.0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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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늘어진 어깨 힘없는 걸음걸이
때로는 교회의 뒷담 길로 해서
학교길 걷다가 흰 구름 떠가는 하늘을 본다.
남은 세월의 잔고는 바닥나고
해질녘이면 동네 뒷골목 수파 탁자에
놓인 술잔에 웅크리고 둘러앉아
농아리 까고 낄낄대며
그나마 하나 둘 못 찾아오는 빈자리
차곡차곡 쌓아온 잃어버릴 명예가
애처롭게 따라온 가족에게
남겨줄 유산이 없어서는 더욱 아닌데
쳇 애국자도 아님시롱
고개를 숙이고 서성거리고 있다

새들이 높게 날으는 창공
그 아래 지상지하에도
은빛 물결치는 해상해저에도
엄숙해야할 교단 제단에도 그리고
어머니의 긴 한숨 할머니의 메마른 눈물로
고이 길러보낸 전선의 방카속
또 사변이라도 터졌다하면
적색전사통지서 한 장
이장 어르신 대동하고 우편배달 왔던
그날로 끝나는 인연이었는데

어느 한 곳 한구석
아물고 성한 곳이 없는
설움의 길고 긴 나날
이제나 저제나 하며 참아오느라
비통한 통곡을 삼키며 부르튼 목통을
짓눌러 죽은 듯 숨어 버티어 겨우겨우
이어온 우리 땅 우리네 이웃들인데
이 어인 끝나지 않은
저주의 내림굿들인가

해 지고 부모님 기다리는데
학교마당 구석 눈만 초롱 한 아이들
「자유 평등 평화 사랑이
가득한 행복한 곳으로」
낭랑하게 노래하며
깡충깡충 뛰어가던
그 아이들 돌아지 아니 하고
오늘 어둠속으로 깊숙이 사라진
장엄한 태양이
내일 다시 떠오르지 않으면
놀이동산 소나무등걸에 기대어
저 먼 바다 수평선을
바라보는 일이야 없겠지

한 치 한 푼으로 밀고 댕기며
씨름하듯 보낸 날이 저물고
밤 장사 등불이 켜진다

어쩌다 이런 모습으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애기들은 태어나서 자라나는데
숨 쉬며 살 수 있는 날이 있을가

밤하늘이 물결치듯 출렁이고
별들이 부딪치며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