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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리 젊은 농부 강민식 씨

완도를 希望하는 사람들

  • 박남수 기자 wandopia@daum.net
  • 입력 2014.11.20 12:14
  • 수정 2015.11.1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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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리 농부 강민식 씨가 지난 6월 정도리 논에 모를 내고 있다.


정도리 젊은 농부 강민식 씨(28세)는 완도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전남대 공대를 진학했다. 전공인 자동차공학을 단념하는 데는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중도 자퇴하고 국립 한국농수산대학에 재수 끝에 힘들게 입학했다. 이번 전공은 식량작물학과. 과목 중에서 수도작(벼)은 비교적 흥미로웠으나 콩이나 옥수수, 밀 등 과목에서는 졸기도 했다.

농수산대학을 졸업한 후, 고향 정도리 아버지 논에서 실습했다. 아버지 강행복 씨는 그의 대선배 농군이다. 강 씨는 군대에서 총 대신 정도리에서 트랙터를 몰았고, 군화 대신 장화를 신었다.

모를 내고 벼를 베고 볏짚을 거두는 일까지 무엇이든 해냈다. 완도 서부 일대에서 유명한 일꾼이다. 농사를 평생 직업으로 정했지만 오로지 그 길만을 가기에 우리 사회는 늘 불안하고 전망도 불투명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쉼 없이 일해 보지만 내일을 확신할 수 없다. 소도 키웠으나 이제는 그만 두었다.

벼 농사를 다 끝낸 요즘 낮에는 주로 바다에서 전복 가두리를 돌보고, 밤에도 논에서 볏짚을 수거하는 ‘부업’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 면허를 받아 바다에 1,000여 칸 정도 전복 가두리 양식도 시작했다. 아버지와 강 씨 말고도 다섯 정도 직원을 더 쓴다. 요즘 연일 바다에서 가두리 그물 청소하고 전복 사료 주느라 잠시 쉴 틈도 없다.

미역과 톳 양식도 했다. 그런데 작년에 미역 포자가 거의 죽은 탓에 올해는 미역포자를 감지 않고 그냥 두었다. 아버지는 양식 기간이 짧은 톳만큼은 계속하려 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다. 전복 가두리에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복 양식을 하는데 걱정도 크다. 정도리 바다는 그야말로 바람에 취약하다. 태풍이 절대로 없어야 한다. 그래서 몹시 위험한 투자이기도 하다.

강 씨의 본업은 벼 농사이다. 아버지와 함께 정도리 신농조합 소유와 화흥포 간척지 땅 5만여 평 논에서 벼농사를 짓는다. 남들은 그들 부자를 부농으로 여기겠지만, 금년 농사는 실패했다. 논에 퍼진 병충해를 제때 잡지 못했다. 친환경 쌀 생산의 계약 때문에 약을 칠 수 없었다. 친환경을 포기하고 농약을 살포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결국 나락 수매 등급도 떨어지고 수확량도 떨어지는 최악의 해였다.

힘든 하루 중 가장 행복한 때는 그가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결혼 2년차인 그와 아내 사이에 7개월 된 아들이 웃으며 그를 반긴다. “분유만 먹던 갓난 아들의 똥은 향긋했는데 요즘 이유식을 하면서 고약해졌다”는 강민식 씨의 말은 자신의 앞날에 첩첩이 그리고 높다랗게 쌓인 우리 농업의 고약한 장벽 같다. 식량 주권을 포기한 우리 정부의 암울한 미래 같다.

아이가 씩씩하게 자라듯 정도리 젊은 농부 강민식 씨의 농업에 대한 꿈도 건강하게 영글어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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