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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문화방송 사태와 제퍼슨의 경고

정병호(서울시립대학교 제24대 교수협의회장,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06.21 09:02
  • 수정 2015.11.20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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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파업사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MBC노동조합이 ‘공영방송 MBC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 퇴진을 위한 총파업’에 들어간 지 140일이 다 되어 가고 있다. 사측과 노조는 상대를 향한 징계, 고소로 대치하고 있다. 이강택 언론노조위원장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20일 가까이 단식농성중이다. 그럼에도 김재철 사장과 노조의 대립은 전혀 풀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김 사장은 노조의 이번 파업이 임금, 근로시간 등 근로조건 개선과 관계없다는 이유로 불법 정치파업이라고 규정, 물러나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반면 노조는 김 사장이 정권 편향적인 보도를 주도함으로써 넓은 의미에서 방송인들의 근로조건에 해당하는 방송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했기 때문에 정당한 파업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김 사장은 노조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하는 한편 노조 간부를 해고하고 수많은 피디, 기자들을 무더기로 대리발령 조치하였다. 노조는 노조대로 김 사장을 법인카드 부당사용 등 업무상 배임과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였으며, 사장 구속수사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나서서 MBC의 지배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에 제3자 중재, 노사 당사자에의 협상 권고 등을 논의할 것을 권고했다.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해온 방송통신위원회까지 나선 것은 그 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뜻일 게다. 그러나 김재우 방문진 이사장은 “법적·현실적 한계”를 들먹이며 수수방관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현실적 한계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사실 MBC 파업사태의 중심에는 김재철 사장이 아니라, 청와대가 있다. 지금 MBC 노조가 싸우고 있는 상대는 사장이 아니라, 사장을 ‘낙하산’으로 내려 보낸 청와대라는 얘기다. 지난 2008년 광우병파동으로 혼쭐이 난 청와대가 광우병 위험을 보도한 MBC를 장악하기 위해 김재철씨를 사장으로 내정했다. 실질적인 임명권자는 방문진이 아니라, 청와대였음을 김우룡 전 이사장도 실토한 적이 있다.

김재철씨는 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청와대의 입맛대로 정부·여당의 시책을 비판한 피디와 기자들을 인사조치하고, 정권에 비판적인 경향을 보인 예능인들을 몰아내는 등 방송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해 왔다. 사정이 이러한대도 청와대측은 “개별 회사가 파업할 때마다 언급하면 간섭”이라며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도 야당의 국정조사요구에 대해 현재의 언론사 파업이 불법정치파업이라는 이유를 들어 거부했다. 그들의 눈에는 공영방송사도 여느 기업과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MBC가 기업인 것은 맞다. 그러나 MBC는 공기업이고 공영방송사이다. 원래 KBS가 가지고 있던 MBC 주식을 인수해 최대주주가 된 방문진의 이사 전원을 국가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하도록 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영방송의 독립성,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을 때 방송사 사원들이 이를 바로 잡기 위해 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정치파업 말고 뭐가 있겠는가. 민주정치의 요체인 여론 형성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영방송사 직원들이 방송의 독립성, 공정성의 침해를 외면하고 제 밥통 챙기기에만 골몰한다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현재권력이 기대난망이라면 소위 ‘미래권력’이라도 나서야 할 판이다. 국민의 선택을 받기 원한다면, 방송의 독립성, 공정성이라는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가 위협받고 있는 MBC 사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책임감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새로 구성된 국회는 즉각 진상조사와 함께 국정조사를 시작하여야 한다. 이번 방송사 파업사태의 근본원인은 방송통신위원회가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는 차제에 방송의 독립성,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기를 바란다. 예컨대 독일은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방송위원회를 정당뿐만 아니라, 종교계, 노조, 사용자단체, 상공인, 농민, 자선단체, 지방의회, 체육계, 환경보호단체, 실향민단체, 스탈린치하 희생자, 교육, 학문, 문화, 예술, 영화, 자유직업, 아동보호, 소비자보호, 동물보호 단체 등 말 그대로 각계각층을 망라한 대표 77명으로 구성한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은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를 깊이 되새겨야 할 때다.

<필자소개>
완도초, 완도중, 순천고 졸업
서울법대 졸업
포항제철 해외유학 장학생
독일 슈트로마이어 재단 장학생
독일 괴팅엔대학교 법학박사
미국 텍사스대학교 연구교수
법무부 선진법제포럼 회원
법무부 민법개정위원회 위원
기후변화행동 연구소 이사
서울시립대학교 제24대 교수협의회장
국공립대교수회연합회 정책위원장
한국농수산식품의약법학회장
사법고시·행정고시 출제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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