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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권언유착’을 넘어 ‘권언동맹’으로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05.17 12:12
  • 수정 2015.12.05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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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크게 보아 두 개의 권력이 지배한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그것이다. 정치권력은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국가기구를 통치력의 기반으로 활용한다. 자본권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막강한 재력을 과시하며 정치권력을 좌지우지한다. 여기에 새로이 등장한 권력이 언론이다. 언론은 막강한 여론 지배력을 이용하여 유사 권력기관으로 행세한다.

언론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당한 권력행사를 감시하는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복무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언론학 교과서에 나오는 ‘환경감시 기능’이 그것이다. 따라서 언론과 두 개의 권력은 항상 갈등을 겪으며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때로는 굴종과 대립의 관계로 변화한다.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유착과 동맹의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흔히 언론을 일컫는 ‘감시견’이 상황에 따라 ‘공격견’ ‘애완견’ ‘수호견’으로 바뀌는 이유이다.

한국사회에서 권력과 언론의 관계는 시대상황에 따라 굴곡을 겪어왔다. 군사독재시절에는 정치권력의 힘이 막강해 언론은 굴종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정치권력은 언론을 ‘당근과 채찍’으로 회유해 ‘권언유착’으로 진전했다. 자본권력은 자본을 무기로 언론을 휘어잡았다. 광고를 미끼로 자신에 불리한 기사는 빼거나 줄이고, 유리한 기사는 크게 키우는 능소능대의 힘을 행사했다. 자본의 탐욕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자본의 포로가 되어버린 것이다.

1987년 6.10시민항쟁 이후 한국사회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언론은 정치권력을 능가하는 힘을 갖게 됐다. 이른바 ‘언론권력’이 등장한 것이다. 언론은 “대통령을 만들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 ‘낮의 대통령’을 노리는 권력기관으로 행세했다. 정치권력은 선거로 선출된 합법적이고 정당한 권력이다. 언론권력은 법률적 기반은 없지만, 정치권력 못지않은 힘을 갖게 됐다. 그래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불린다.

한국 언론은 정치권력에 굴종하거나 유착하면서 막강한 힘을 키워왔다. 특히 신문사주들은 독재정권 시절에는 절대 권력을 지닌 대통령에 굴종했지만, 한편으론 대통령 못지않은 권력도 행사했다. 그래서 ‘밤의 대통령’으로 불리기도 한다. 권력에 굴종한 언론은 ‘용비어천가’를 읊어대며 권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재롱을 부렸다.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그 대가는 엄청난 이권이었다. 이를 이용해 언론사를 키우고 개인의 이익을 챙겼다. 국민의 삶은 안중에 없었다.

언론이 자본권력을 대하는 태도는 정치권력 보다 이중적이다. 정치권력의 집권초기에는 아부를 마다하지 않다가도 집권말기에 이르러 힘이 빠지면 물어뜯기에 바쁘다. 그러나 언론사 경영의 원천인 광고를 주무르는 자본권력에 대해서는 비루하기 이를 데 없다. 광고를 ‘구걸하기’ 위해 미사여구를 동원해 광고주를 칭찬하기도 하고, 광고를 ‘강제하기’ 위해 조그만 꼬투리도 침소봉대하기 일쑤이다. 언론이 내세우는 이유는 ‘생존논리’이다. 권언유착의 또 다른 모습이다.

권언유착은 언론사나 권력의 크고 작음에는 관계가 없다. 중앙의 대 언론사나 지역의 군소언론사나 마찬가지이다. 청와대는 물론, 지역의 기초자치단체에 이르기까지, 대 재벌그룹이나 지역의 중소기업이나 비슷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온갖 난관에도 불구하고 언론으로서의 기본원칙을 고집하는 언론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언론사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식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오히려 유착관계를 악용해 이익을 챙기려는 이른바 ‘사이비 언론’마저 많다.

이명박 정부 들어 권언관계는 ‘권언유착’의 단계를 넘어 ‘권언동맹’으로 발전했다. 이명박 정부는 자신에 비판적인 진보언론은 탄압하고 우호적인 보수언론과는 동맹관계를 구성했다.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이 야합해 공동의 이익을 위해 각자의 힘을 행사하고 이를 통해 권력을 분점한다는 뜻이다. 보수신문들에게는 종합편성채널을 허용하여 온갖 특혜를 부여했고, 비판신문들에게는 광고주에 압력을 넣어 광고를 게재하지 못하게 하는 수법으로 경영압박을 가했다. 더 나아가 동맹관계인 보수언론과의 합작으로 비판세력을 ‘좌파’로 몰아 여론을 조작하고 탄압했다.

이명박 정부는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보수언론과 동맹관계를 맺으면 자신에 우호적인 여론환경이 조성돼 보수세력의 장기집권 토대를 다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보수언론이 여론시장을 장악하면 권력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진보언론은 여론지배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영향력이 미미한 데다 인터넷의 비판여론마저 봉쇄하면 대한민국에 ‘이명박 찬가’가 울려 퍼지고 보수세력의 영구집권은 불을 보듯 훤하다는 착각이다.

넉달째 이어지고 있는 언론파업은 이러한 권언동맹에 타격을 가하고 있다. MBC KBS YTN 연합뉴스 등 언론사 노조들이 낙하산 사장 퇴진과 공정보도를 내세우며 거리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가 언론사에 내려 보낸 측근 낙하산 사장들을 대리인으로 하여 언론을 통제했다며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부르짖는다. 4대강사업 비판 누락, 내곡동 사저 의혹 축소 등 구체적 통제사례를 근거로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나 여당인 새누리당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권언유착이나 권언동맹은 언론에 대한 불신을 불러온 가장 커다란 원인이다. 언론이 약자인 서민의 삶을 도외시하고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을 대변하면 국민이 외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신문이나 방송의 신뢰도가 급격히 추락하고 인터넷을 통한 이른바 ‘괴담’이 성행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가 ‘동맹언론’에 특혜를 준 종합편성채널들이 애국가 시청률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국민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도 이를 잘 말해준다.

언론이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명제는 낡은 것이 아니다. 이러한 기본원칙을 저버리면 결국 독자의 외면으로 몰락할 수밖에 없다. 반면 원칙을 고집하는 언론사는 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진정한 사회의 대변지로 성장할 수 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세계적 언론사로 명성을 날리는 것도 ‘언론의 독립성’이라는 역사적 전통을 잘 이어왔기 때문이다.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준 교훈이다.

* 필자 김주언은 <한국일보> 기자 시절이던 1986년, <말>지를 통해 전두환 정권이 각 언론사에 하달한 '보도지침' 584건을 폭로해 국가보안법 위반, 외교상 기밀누설, 국가모독,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이 사건은 국내는 물론 영국과 미국의 인권, 언론단체들에까지 알려져 석방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검찰의 무리한 법적용은 9년여의 재판과정 끝에 무죄 확정판결로 이어졌다. 김주언은 이후 한국기자협회 회장,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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