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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섬 100곳 걸음마다 막바지 생의 눈물

강제윤 시인 3년 걸쳐 섬 도보순례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09.01.30 01:05
  • 수정 2015.11.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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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걷다〉 강제윤 글·사진/   홍익출판사·1만2000원

  뭍 버리고 온 이들의 마지막 피난처
  “섬 망가뜨리는 건 태풍 아닌 탐욕”

“한국에는 4400여 개의 섬이 있다. 한국은 ‘섬나라’다. 그 섬들 중 유인도는 500여 개. 10년 동안 사람 사는 모든 섬을 걸어갈 예정이다. 이제까지 100여 개의 섬을 걸었다.”

고향인 보길도에 돌집을 짓고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보길도에서 온 편지> <숨어 사는 즐거움> 등의 산문집을 낸 시인 강제윤씨가 10년 계획을 세워 섬 순례에 나선 지 3년 만에 그 기록을 담은 책을 내놨다.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에 그동안 연재해 온 글을 손봐서 묶은 것이다.

휴대전화·자동차 없이 “망망대해의 풍랑과 폭풍우 앞에 던져진 가랑잎”에 몸을 싣고 그는 섬으로 건너간다. 그러고는 걷는다. 몸은 가볍게, 마음은 단순하게, “소란하고 얕은 세상”에서 멀어지며 섬이 내준 오솔길을 걷는다. 외래문물의 유입으로 원형질을 잃어가는 섬들이 사라지기 전, 그 마지막 모습을 찬찬한 보폭을 놀리며 눈과 글에 담아 잡아두기 위해서다.

그리하여 글은 어느 하릴없는 나그네의 속편한 유랑기가 아니다. 그 옛날 섬에 사람들이 찾아든 때와 사연이 녹아들고, 이제는 적막하고 늙어버려 쓸쓸한 섬의 모습과 그 속에 깃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한숨, 섬사람들을 옥죄는 자본의 올가미까지 기록한 절박한 르포에 가깝다.

시인이 더듬어 올라간 섬의 옛 모습은 “막바지 생들의 막바지 피난처”다. 그 옛날 도망친 노비, 관의 수탈을 피해 달아난 사람들, 지배 세력의 탄압에 못 이겨 달아난 불교 수행자들이 피난처 삼아 섬에 찾아들어 뭍에서 이루지 못한 유토피아를 꿈꾸기도 했을 터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왜구의 침탈로 고통받았고, 나라의 공도정책으로 애써 일군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현대에 들어서도 강화도 접경 지역의 섬사람들은 간첩 누명을 쓰기도 했다.

이제 섬은 자본의 손아귀에 잡혀 몸살을 앓는다. “섬이라고 토건 마피아들로부터 무사한 것은 아니다. 골재 채취 명목으로 사라진 섬이 한둘이었는가. 섬이 망가지는 것은 태풍이나 풍랑 때문이 아니다. 탐욕 때문이다. 수억 년 온갖 풍파를 견딘 섬을 인간은 하루아침에 파괴한다. 인간의 탐욕이 허리케인이나 쓰나미보다 무섭다.” 걸어서 한 시간도 안 걸리는 작은 섬 소매물도 주민들은 오래전 원주민들이 육지 사업가한테 집과 땅을 팔아버려 자기 땅에 ‘세 들어’ 살고 있다.

그래도 섬에는 자연이 아직은 보물처럼 남아 있다. 바다 모래밭에서 나고 자란 갯것들과 바다에서 나는 물고기들이 섬사람들을 먹여 살린다. “굴은 달이 차고 기우는 데 따라 여물기도 하고 야위기도 한다. 섬사람들도 굴처럼 살이 올랐다 야위었다 한다. 섬사람들은 달의 자손이다. 달이 바닷물을 밀었다 당겼다 하며 바다 것들을 키우면 사람들은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고, 고동과 소라와 굴들을 얻어다 산다.”

섬을 걷다가 만난 섬사람들과의 대화를 시인은 특히나 꼼꼼히 기록해두었다. 시어머니 모시고 외딴섬에 사느라 뭍에 나가 공부하는 자식들 밥 한 번 못해준 게 평생 한으로 남은 완도 여서도 할머니, “못살아. 못살아 절대로 못살아. 모래하고 밥 말아 먹고 못살아” 하면서도 대파밭에서 모래밥 먹으며 일하는 신안 임자도 할머니, 잠깐 놀아줬는데도 깊은 속정이 들어 울면서 가지 말라고 매달리던 완도 덕우도의 섬 아이 등 섬사람들 사연이야말로 지은이가 “섬의 보물”이라고 일컬은, 사라져가는 섬의 마지막 모습 아니었을까.

“나그네는 두렵다. 이 섬의 보물들이 알려지는 것이 두렵고,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져 버릴 것이 또한 두렵다. 그러나 끝끝내 숨길 수 없고 숨긴다고 보전되는 것이 아니라면 드러내서 모두가 함께 지킬 방도를 찾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한겨레신문/ 김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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