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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아이들에게 완도는 없다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08.11.19 17:06
  • 수정 2015.12.0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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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의 2년
완도읍에서 태어나고 자란 견우(가명)는 중학교 2학년이다. 그의 하루는 아침 7시 10분에 시작된다. 대충 세수하고 가방을 싼다. 아침은 대부분 거른다. 졸고 있는 견우를 아빠 차는 교문 앞에 내리고 떠난다. 딱 5분 걸린다. 0교시는 자주 엎드려 있지만 가끔 숙제도 한다. 점심은 보통 5분이면 해치운다. 그리고 오후 4시 반에 수업 끝나면 영어마을에서 두어 시간 수업을 받는다. 차로 다시 보습학원에 간다. 10시 쯤 학원수업이 모두 끝난다. 집에 가서 저녁을 먹는다.

그에게 보길도, 청산도를 얘기하면 늘 모른단다. 명사십리나 수목원, 구계등 역시 늘 가까이 있지만 아프리카보다 멀고 낯설다. 오로지 학교와 학원과 집뿐이다. 집에 와서는 두어 시간 게임하는 건 기본이다. 2년 동안 되풀이한 견우의 일상이다.

멜리사의 2년
멜리사는 캐나다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을 졸업한 뒤 완도에서 중앙초등학교 원어민 교사로 2년 동안 생활한 뒤 지금 인도 여행 중이다. 그녀의 교통수단은 가느다란 두 바퀴 자전거가 전부다. 완도 읍내를 달리는 그녀는 항상 즐겁다. 완도 사람 누구도 해보지 못한 일들을 그녀는 했다. 자전거로 신지, 고금, 약산, 금일에 이르는 힘든 여행을 했다. 어디 그뿐인가? 청산, 보길, 노화, 소안 등의 섬들을 두 바퀴로 달렸다.

그러는 동안 멜리사에게 수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으나 아이들 친구가 가장 많다. 완도에는 엄마도 계신다. 같이 길을 걸을라치면 아무데서나 아이들이 몰려나와 그녀와 친구하잔다. 완도에서 가장 부자로 살았다. 기억에 남는 경험과 사람들을 담은 사진집도 만들었다. 이방인 멜리사의 완도 생활 2년이다.

아이들에게 완도는 없다
캐슬린 스티븐스는 33년 전 평화봉사단원으로 충남 예산에서 영어교사를 했다. 심은경이란 한국이름으로 2년을 살았던 그녀가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해왔다. 그녀가 예산중학교를 방문해 여러 차례 눈물을 흘렸단다. 멜리사 역시 더 많은 경험을 쌓아 자기 고향에서 큰 일을 하길 바란다. 30년 후 캐나다를 대표하여 완도를 방문하게 될 그 날이 올지 누가 알겠는가? 그렇게 될 것을 믿는다. 그녀에겐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문제는 우리 아이들이다. 우리에게 지금이 한국전쟁 후 출세를 위해 굶어가며 공부하던 시대는 더 이상 아니다. 가족과 식사 한 끼 제대로 하지 못해 신체는 허약하고, 방과 후나 주말에 친구들과 어울릴 줄 모르는 사회성 제로로 자라는 그들이 어떻게 완도의 미래를 책임질까? 적어도 이제는 나와 가족보다 우리 이웃과 이웃 나라를 걱정할 줄 아는 그런 아이들이 필요한 시기다. 그런데 우리 부모와 학교와 학원과, 그리고 완도 사회는 아이들에게 그런 세계를 보여주고 가르치고 있는가?

완도 교육에 진정 필요한 것은, 명문고 만들기, 장보고장학회, 청해진강좌가 아닐 터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잃어버린 고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봄 소풍 날 행정선에 태워 완도를 두루 한바퀴 돌며, 보고 듣고 놀게 하는 것은 어떤가? 그들 가슴에 완도인이라는 정체성을 한번쯤 심어주는 것은 어떤가? 장보고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은 어떤가?

완도에서 태어났지만 완도를 전혀 모르는 견우의 30년 뒤 모습이 어떨 지를 고민해 볼 일이다. 단지 2년을 살았지만 완도를 가슴깊이 담고 떠난 멜리사야말로 진정한 완도인이 아니겠는가? 견우의 학교 성적이 점점 좋아진다고 치자. 더욱 다행이라면 꿈에도 그리는 서울대도 갈 것이고 멀리 미국으로 유학도 할 것이다. 그때 거기서 만난 친구들에게 자기 고향을 소개하라면 견우는 어떻게 할까? 네이버에 물어볼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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