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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군청 김영삼계장 222km 성지순례 울트라 마라톤대회 참가기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07.05.24 13:21
  • 수정 2015.11.2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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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가 동기와 명동성당 출발

 

가톨릭에 입문한 해가 1998년이니까 벌써 9년 세월이 흘렀다. 마라톤 특히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한 후부터 언젠가 한 번은 성지순례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 도전해 보고자 마음속에 꿈을 키워왔다. 특히 수도권 인근 지역에 산재한 성지라서 그런지 마라톤과 성지순례가 함께 나를 유혹하는 측면이 강했다. 뽕도 따고 임도 만난다는 속담이 있듯이 말이다.

 

그러나 작년 8월 부산 해운대에서 임진각까지 538km 울트라 마라톤 완주 도전 실패 후 울트라 마라톤에 대한 나의 열기가 한풀 꺾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반도 횡단, 제주도 일주, 광주 빛고을 울트라 마라톤대회를 완주한 경험과 실력이 있기에 성지 순례 마라톤이 험난하기로 유명해도 내 나름대로 완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또한. 있었다.

 

솔직히 종합민원봉사과 조대원의 참가 권유가 없었다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올 4월 초에 개최한 한라산 종주 148km에 도전하여 제주도를 섭렵한다는 꿈을 가진 적도 있었다.

 

아무튼 100km를 완주한 저력의 사나이-완도 울트라맨 5인방(김영삼, 조대원, 우태웅, 유장열, 정상진)이 작년 말 강진 해맞이 100km 도전에 성공한 것을 계기로 나와 조대원은 한반도 종주 재도전의 야심작을 위해 이 번 대회를 전초전으로 삼고 우태웅과 유장열은 한반도 횡단의 시험무대로 이 대회에 참가하기로 다짐한 바 있었다.

 

나로서는 이 번 완주의 성공 여부가 나의 울트라 마라톤 인생의 지속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큰 의미가 있는 대회였던 것이다. 가장 큰 애로는 건축주로서 신축공사에 신경을 곤두 세워야 할 판에 마라톤에 미쳐 자기밖에 모른다는 평소 내 집사람의 원망을 어떻게 피할까 하는 핑겟거리 마련이었다. 아무튼. 참가하기로 결정한 이상 내 마음을 꺾을 자 내 자신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조대원과 함께 서울 남부버스터미널에서 명동까지 같이 갔다. 그동안 정이 들어서인지 동행을 하니 서울이 객지답지 않았다. 길을 물어 명동성당에 도착하니 동료직원 우태웅이가 우리를 반긴다. 이 번 완도참가 4인방인 유장열은 친구 때문에 늦어질 것 같다고 전해주니 식사부터 하자고 했다. 도착시각이 오후 6시여서 그런지 다른 참가자에 비해 빠른 편이었다. 번호표와 참가 기념품을 챙기고 나서 성당 주변 남원 추어탕 집에서 추어탕을 각자 1그릇을 비우고 1그릇을 더 주문하여 3인이 같이 나눴다.

 

24시간 편의점에 들러 주로에서 먹을 간식을 챙기고 기념품 배부장소에 되돌아 와 보니 이제야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탈의실에는 다행히 먼저 와 있는 다른 참가자들이 부지런히 참가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입구 한쪽에 자리를 잡아 먼저 배 번호표를 달고 대회용 옷으로 갈아입었다. 젖꼭지에 테이프를 붙이고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에 바셀린을 열심히 발라댄다. 발가락과 발바닥에 테이프를 감고 신발끈을 단단히 조여 맨다. 배낭에 는 깜빡이 등을 앞뒤로 메 달고 헤드 랜턴도 챙긴다.

 

벌써 출발 30분 전이라고 주최 측 안내 방송이 우리를 재촉한다. 완도 4인방이 한데 모여 전열을 가다듬고 명동성당 성모 상 앞에서 주최 측의 기념사진촬영을 위해 자세를 멋지게 잡아본다. 물론 4인방의 사진도 함께 담았다. 바야흐로 참가자 준비운동이 시작되고 출발이 다가오자 마지막 기념사진 플래시가 일제히 빛을 뿜는다.

 

출발 전 완도 4인방의 힘찬 “완도, 완도 파이팅, 파이팅” 구호를 목청껏 올리고 밤 9시가 되면서 한 무리의 주자들이 성당 정문을 거쳐 명당의 인파를 헤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형형색색의 참가복장과 배낭의 깜빡이 등. 우리가 봐도 이상스러운데 명동 멋쟁이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지가 궁금하다.

 

 

명동성당에서 수리산 성지까지

 

 

명동성당을 나와 달리면서 작전을 궁리했다. 아무래도 출발지가 서울의 중심지인 만큼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고 선두권에서 달리면 나중에 뒤처지더라도 동행할 참가자에게 의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무조건 초반부터 앞으로 전진이다. 뒤처지면 끝장이다. 라는 각오로 자신을 격려했다.

 

코스는 대회 측에서 제공하는 항공사진과 인터넷 포털의 지도로 갈 길을 미리 가봤지만 달리면서 방향감각이 무디어지고 초반에는 무리지어 달리기 때문에 구태여 알 필요가 없었다. 횡단보도 표시등을 무시하고 단 1초라도 시간을 아끼고 싶은 마음에 앞을 나서지만 갈 길을 몰라 선두를 따라갔다.

 

큰길에서 골목으로 들어서면서 선두 주자도 헤맨다. 경험이 있는 주자도 서울 도심 속 골목길은 눈에 익지 않는 모양이다. 당 고개 성지로 가는 길은 시골 도로 사정 보다 여의치 않아 보였다. 골목길을 돌아 달동네 지역 꼭대기쯤 당도하니 바로 당 고개 성당이다. 아담한 크기의 성모 상이 있고 조그만 광장이 잔디로 덮여 있다. 정문 뒷쪽으로 뒷문이 걸려있다. 누군가 그리로 통과하자 나도 그 뒤를 따른다. 5.35km를 지나온 것이다.

 

전자상가 고가차도, 선이 상가, 신용산 지하, 용산역, 용산 컨벤션센터, 를 스쳐가자 성모상에 불을 밝힌 새남터성지가 오른편에 다가왔다. 누군가가 사진기로 기념사진 한 컷하자 나도 동석해 봤다. 다시 막다른 좁은 골목길을 지나니 새남터보도 육교가 한강둔치 진입 계단으로 연결돼 있다

 

한강철교, 원효대교, 마포대교, 서강대교가 한강을 가로질러 버티고 있고 우리 달림이들은 그 밑을 통과했다. 밤 10시가 지난 늦은 밤인데도 둔치 길은 운동하는 사람이 많았다.

 

아름다운 한강변의 야경은 불야성을 이루고 선진국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건강과 참살이를 위하여 우리는 모두 앞서가는 주자가 아닌가. 자찬해본다. 이윽고 저만치 도로변 절벽 위 건물 이 절두산 성지다. 앞 선 주자가 이번에도 성지를 둘러보고 가려니 하고 마음먹고 있었으나 그냥 스쳐 간다.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절두산 성지를 뒤로 하고 당산철교. 양화대교를 지나, 성산대교 위를 달리다 보니 어느새 강남에 당도한다. 염창교 앞에서 좌회전하니 안양천 둔치길이다. 이곳에서부터 양화교, 양평교, 목동교, 신정 1교, 오금교, 고적교, 안양고, 월산 대교, 하안교, 둔치교, 안양천 교를 지나 시흥전철역 인도교까지 29.98km다. 밤 12시가 지나 4.28(토) 0시가 넘어섰다.

 

자전거 도로가 시작되고 군부대 병력의 야간행진 행렬 사이로 미친 듯이 박용각 씨를 따라잡으려고 몸부림치듯 온 힘을 다해 달리고 또 달렸다. 시흥대교, 서부간선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가 교차하는 교각을 밑을 지나 석수동 비포장도로에서 좌회전하면 삼거리가 나오고 우회전하여 제2경인고속도로, 화창교, 충훈 고교까지 직진하다 둔치교, 충훈 2교, 충훈 1교 다리 진입하면 안양천을 벗어나게 된다.

 

한라아파트를 지나 화덕삼거리 육교를 건넌 후 직진할 때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 국내 최초 100회 마라톤 완주자이며. 이번 대회 공동 우승자이기도 한 박용각 씨를 뒤따라가느라고 진땀깨나 흘렀다. 서울시나 안산시내의 지리를 모른 나로서는 선두주자를 놓치면 이번 대회 완주에 이르지 못할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우성 삼거리 이후부터는 박용각 씨도 이 곳 지리에 밝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베테랑인. 박용각 씨에게 믿음이 갔다. 지금껏 같이 온 광주마라톤클럽소속이자 빛고을 마라톤 대회장이기도한 고화중씨가 보이질 않는다.

 

진흥아파트고개를 지나 진흥 오거리, 안양공고에서 우회전하여 안양과학대학이 우측에 보인다. 계속 직진하다 교통순경에게 수리산 길을 물으니 큰길 사거리에서 우회전 하라고한다. 양지 1교다. 이곳에서 고화중 씨를 다시 만났다. 병목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수리산 산림욕장 입구까지 달렸지만 박용각 씨와 고화중씨는 이미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안양천의 끝자락이기도 한 계곡을 따라 가다 보면 첫 번째 이동 cp가 있을 것이다. 제삼 세월교, 수도권 순환고속도로 교각 아래를 지나니 멀리서 성모 상이 서있는 모습이 불빛을 받아 수리산성지 및 순례자 성당이 보인다. 대회 진행요원이 반긴다. 성지순례 마라톤인 만큼 종교적 신앙심으로 한 가족처럼 대해 주는 이들이 대회장에서 주로에서 이동 cp에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우리 달림이 들을 반기는 모습에 큰 깨달음과 감동을 하였다.

 

수리산 성지 도착시간은 4월 28일(토) 01:29. 이동cp에는 앞서갔던 박용각 씨와 서화중 씨가 이미 당도하여 대회 측에서 제공하는 떡과 음료수를 먹고 쉬고 있었다. 진행요원이 물도 주고 떡도 챙겨주고 하니 마치 내가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수리산성지에서 손골 성지까지

 

고화중 씨가 수리산 등산로를 향하여 같이 가자고 한다. 떡을 한입 먹고 조금이라고 무게를 줄이고자 남은 떡을 길가의 바위 위에 놓고 앞선 주자를 가까이하려고 하지만 갈수록 멀어져 간다. 박용각 씨가 뒤를 따라오더니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혼자라 무섭기도 하였지만 길을 잃을까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도 주로에 ‘자연을 보호합시다.’라는 리본을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아 손전등 불빛에 반사되어 나의 길을 인도해 준다. 갈림길에서는 이리저리 살피며 리본을 찾아보면 반드시 갈 방향에 설치되어 있어 산 속이지만 쉽게 이동할 수가 있었다.

 

제3전망대, 제2전망대, 제1전망대, 구름다리, 수리산 석탑까지 직진, 길가 좌측 돌무덤을 지나 현충탑 주변에서 잠시 헤매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진행요원이 수고했다며. 반긴다. 앞쪽 사거리에서 좌회전한 후 사거리에서 다시 우회전하니 24시 해장국집 간판이 보인다. 여기서 식사를 하고자 들려보니 이미 앞서가던 두 분의 주자가 있었다. 해장국 1그릇을 주문하는 동안 신발을 풀고 양말까지 벗어버리고 잠시 휴식을 취하니 먹을 것이 나온다. 4천 원짜리 음식을 다 먹어치우고 물을 챙긴 후 다시 혼자서 갈 길을 재촉한다.

 

안양우체국과 KT 앞까지 확인하였으나 해장국집에서 계속 직진해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직진하다 보면 고가도로가 나오고 비산대교가 나올 것으로 알고 전진을 계속하지만 바로 나올 것 같은 비산대교는 보이질 않는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았다. 통행인에게 비산대교를 물으니 길을 잘못 들어섰다며. 오던 길로 되돌아가서 바로 사거리에서 건너 직진하라고 한다.

 

직진하여 비산대교를 찾아보았으나 다리이름이 달랐다. 이곳에서 헤매면 낭패다 싶어 가던 택시도 트럭도 붙잡아서 물어보고 싶지만 그들도 바쁜지 지나쳐버린다. 다시 오던 길 쪽을 바라보니 택시 한 대가 큰 도로로 진입하고자 기다리고 있지 않는가. 갈 길을 재촉하여 택시기사에게 물어보니 바로 건너 하천 쪽으로 계속 직진하다 보면 나올 것이라며 안내해 주었다.

 

그러나 비산대교는 나오지 않고 5~6개의 다리를 지나니 통행인이 있어 물어보니 하천 쪽으로 내려가 둔치 길에서 역주행하여 첫 번째 다리에서 좌회전에서 직진하다 또다시 좌회전하면 백운호수에 이르는 둔치길이 이어진다고 말해준다. 다리 건너서 통행인에게 재차 물어보아 드디어 백운호수 안내 표지판이 있어 이제 제대로 길을 찾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생겼다.

 

길에서 좌측으로 돌면서 학의천이 시작된다. 가는 길에 진행요원이 나를 반기며 차와 음료수를 제공한다. 오던 길 쪽을 바라보니 깜빡이 등이 보인다. 주자가 뒤 따라 오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제 길을 찾았음을 재확인하면서 안양천 둔치 길 끝나는 지점에 백운호수가 있음을 대회전에 이미 알아 두었으므로 앞길이 막막하지만은 않았다.

 

가는 도중 비산교 학문교, 충의교 대한교, 동안 교를 지나 둔치공원 끝나자 수도권순환 고속도로 지나서 진행요원이 반긴다. 백운도로 뚝 길 쪽으로 직진해야 할지 아니면 큰길로 직진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다가 오던 길을 되돌아가니 박일환 주자와 자연스럽게 동행주가 되었다. 학현 마을 입구에서 마을 쪽으로 우회전하니 시골길로 이어진다.

 

배꼽음식점에서 좌회전하니 고개가 나오고 멀리 고속도로가 보인다. 위에 오성 농장이 있고 고속도로 밑을 지나 국도(안양-판교)에서 우회전하여 하우현 성당까지 이른다. 하후현 성당 뒤 등산로에서 한반도 횡단 때. 동행주를 같이 한 바 있는 조희웅씨를 만났다. 빨리 왔다며 먼저 인사를 건네 왔다.

 

한 무리가 앞을 지나고 나와 박일환씨와 계속 동행주를 하며. 능선에 도착하니 날이 환히 밝았다. 이곳에서 국사봉까지는 1,750m이고 지금까지 지나온 거리가 59.3km에 이른다. 8시간 정도 소요된 것이다. 청계산 국사봉 정상에 오르기까지 봉우리를 5~6개는 넘어온 것 같다. 국사봉 정상에 당도하니 3~5명의 주자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거리상으로는 60.47km인 지점이다.

 

나는 24시 편의점에서 샀던 삼각 김밥 1개를 먹는 동안 정상에 나 홀로 되었다. 앞서 간 일행을 뒤 따라 가려고 발걸음을 재촉하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질 않는다. 앞선 주자들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소리도 쳐보고 싶지만 응답이 오질 않을 것 같아 그냥 발걸음만 재촉할 뿐이다.

 

다행히도 수리산 속 등산로의 리본이 나의 앞길을 안내해 주었다. 8부 능선에서 진행요원이 음료수와 과자를 준비해 놓으며 먹고 가란다. 사탕 한 개를 먹고 계속 걸으니 진행요원이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향하며 둔토리 성지를 둘러본 후 이 지점에서 사진을 찍고 가라고 안내한다.

 

둔토리 성지는 프랑스 태생 신부가 참시를 당한 역사적 사건을 길이 남기고자 이곳 높은 바위굴에 조그마한 성지를 조성한 것이다. 성호를 긋고 나서 오던 길로 돌아 카메라 앞에 자세를 잡고 나서 좌측 길 내리막길을 따라 안양 성남 국도까지 하산을 재촉했다.

 

수도권순환고속도로 지하통로를 지나니 아침 7시가 지났다. 운중동 고기리 57번 국도 밑, 동운리 고개, 정성 노인의 길, 수지성당석문공소를 지나 고기리 삼거리에서 우회전하고 나서 장모사랑 앞을 지나 앞구리 고개를 지나니 윗손골 삼거리가 나온다. 도롯가를 따라 아침 먹을 곳을 찾아보지만 산골 오지인지라 손님이 뜸해 식당마다 휴점 상태다. 우측 길로 접어드니 주자 한 분과 마주쳤다. 먹을 것을 주느냐고 물어봤더니 김밥을 준다고 한다.

 

4월28일(토)07:48분에 손골성지에 당도하니 진행요원들이 무척이나 반기며 대단하다고 기를 세워준다. 배낭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착용하고 김밥을 먹고 물을 챙기고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지금까지 거리는 71.97km. 시계를 보니 아침 8시가 넘어섰다.

 

 

손골성지에서 남한산성성지까지

 

 

오던 길로 다시 내려가 삼거리에서 우측 길로 접어들어 손기교 앞에서 우회전하면서 동원교 다리 아래서 분당 탄천 길이 시작된다. 동원교와 백현교를 지난 세월교까지 12km이지만 안내서에는 백현교 1개만 표시되어 있어 바로 세월교가 나오리라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에게 크나큰 착오였다. 손골성지에서 김밥을 하나 더 챙겼더라면 이렇게 고달프지는 않았을 텐데 체내 에너지가 고갈되어서인지 기진맥진한 상태가 기나긴 탄천을 맞이하여 더해간다.

 

도저히 이런 상태로는 남한산성에 오후 3시까지 도착하기 어렵겠구나. 판단하고 탄천 주변의 자전거족에게 주변에 식당이 없느냐고 물으니 둔치길 을 벗어나 도로 쪽으로 올라가보라고 한다. 2~3개의 횡단보도를 지나 직진하다 분식집을 발견하고 설렁탕을 주문하고 큰 것을 배설하고자 화장실을 찾았다. 얼굴도 씻고 긴 소매 옷도 챙겨 배낭에 넣고 음식을 먹고 나니 힘이 살아난다.

 

시계를 보니 10시 반이 넘어섰다. 둔치 길보다는 도로를 이용하여 남한산성역으로 곧장 가면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일 것 같아 도로변 간이매점에서 길을 물으니 남한산성역은 여기서 너무 멀어 길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모란역을 물으니 곧장 큰 길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라 한다. 좌회전하니 큰길이 계속 이어지고 멀리 큰 고층 건물 군이 보인다.

 

저기쯤 되냐고 물의 계속 그곳까지 직진하면 된다고 한다. 수진역을 지나면 바로 남한산성역이겠지 생각했는데 남한산성역은 멀기만 하다. 11시가 넘어서면서부터 초여름 날씨에 또다시 힘이 빠진다. 이러다간 남한산성 고갯길을 넘어서기가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에 도로변 주위에 먹을 만한 식당을 찾아보면서 거의 걷다시피 앞으로 나아간다.

 

신흥사거리, 우리은행 사거리, 단대 오거리를 지냐쳐서야 남한산성유원지가 보였다. 고갯길이 끝나는 지점에 나무계단이 가파르게 설치되어 있었다. 남한산성 남문이 어디냐고 하니 표 받는 곳을 지나 계속 직진하라고 한다. 직진하다 보니 터널이 나오고 이곳에서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우회전해야 할지 직진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자전거족에게 길을 물으니 모르겠다며. 터널 쪽으로 직진하라고 한다. 터널 쪽은 아니다 싶어 우측 길로 들어서 한참을 가다 다시 오던 길로 내려가 통행인에게 길을 물어 다시 그 길로 가니 남한산성 남문이 나타나고 문을 통과하자 윗길과 아랫길로 이어진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망설이다 행락객에게 물으니 내려가다 보면 매점이 나타날 것이라 알려준다.

 

좌측 도로 아래에는 비석 무리가 질서 있게 늘어서 있고 커브를 돌자 진행요원이 반긴다. 이윽고 남한산성 성지 성당이 나타나고 이동 cp로 안내한다. 남한산성성지에 도착시각은 4월 26일(토) 12:48. 거리는 103.55km. 먼저 온 주자 중에 대원이 하고 태웅이 및 장열이가 이미 당도해 있었고 왜 이렇게 늦었느냐고 궁금해 하니 초반 페이스 조절 실패와 허기진 배 때문에 늦었노라고 하니 수긍이 가는 모양이다 .

 

마사지를 하고 나서야 대회 후반전을 준비하고자 옮겨놓은 가방을 챙겨 발가락에 테이프를 감고 먹을 것을 챙기고 나서 대회 측에서 제공한 국밥 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오후 1시 30분이 넘었다. 이래 가지고는 제한시간 내 완주하기 까지는 힘들겠구나! 생각하면서 잠시도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어 혼자서 길을 나섰다.

 



남한산성성지에서 천진암성지까지

 

 

완도 4인방 중 나만 뒤처지면서 혼자가 되었다. 지금 가는 방향은 광주에 있는 천진암성지다. 가다 보면 천진암 안내 표시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광주 쪽 남한산성 고갯길을 내려가니 자동차의 행렬이 끝이 보이질 않는다.

 

식사를 마친 후 기온이 높아지면서 몸은 피곤하고 나른해진다. 한 숨자고 싶기도 하지만 시간에 쫓기는 나로서는 그런 한가로움을 누릴 여유가 없었다.

 

광주원 입구 삼거리에서 한참 달리다 보니 대원이가 길가에서 도로 쪽으로 걸어 나온다. 반가웠다. “왜 늦었느냐?”라고 물으니 한 20분 동안 나무그늘에서 잠을 잠시 청했노라고 한다. 제주도 일주 울트라 마라톤에서 추위와 잠을 못 이긴 경험이 있는 우리 둘에게 경험이 지혜를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심한 잠이 오지 않아 계속 걷기로 했다.

 

대원이가 달리기 시작했다. 국도 43번 삼거리쯤에서 진행요원 차가 방향을 알려 준다. 바나나 1개를 맛있게 받아먹었다. 박인환 씨가 길을 헷갈렸다면서 같이 가자고 한다. 군부대 앞 43번 국도에서 좌회전하여 오던 길 쪽으로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라고 감시차량에서 알려준다. 우회전한 후 비포장도로에서 대원이를 다시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원이가 몸 정리 좀 해야겠으니 조금 가다가 삼거리 45번 국도에서 좌회전하여 고속도로 밑으로 직진하라고 일러준다. 한 무리의 주자들이 오르막길(도마치 고개)이어서 그런지 걷고 있다. 빨리 걸으면 뒤쫓아 갈 것 같아 걸음을 재촉한다. 도마치 고개 정상쯤에 달했을 때 앞서 가던 주자들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 부지런히 종종걸음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따라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는 신념으로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니 도마삼거리쯤에서 대원이가 뒤따라오고 있다.

 

따라 가기 힘들겠다며. 대원이는 또 내 앞을 달리기 시작한다. 북한강을 가로지르는 광주의 광동교 위를 건너다보니 대원이가 아스라이 사라져 간다. 지금 시각은 4월 28일(토) 오후 3시가 넘었다. 한참을 가다 퇴촌 입구 사거리 못 가서 진행요원이 수고한다며 격려해 준다. 말 한마디가 힘이 솟게 해 주는 것은 사람의 내면에 감정이 흐르기 때문이리라.

 

퇴촌 농협 앞을 건너면서 먹을 만한 식당을 찾아보지만 마땅한 식당이 보이질 않는다. 시골마을이라 그러겠지 생각하며. 도수초교 앞 사거리에서 잠시 어디로 가야 할지 머뭇거리다가 앞서가던 도마치 고개 일행이 멀리 보인다. 바로 대원이가 뒤따라가고 있었다. 어서 빨리 따라가야지 하며 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도수 2교 및 3교, 관음 1교에서 관음 5교까지 걷다 보니 황인환 씨와 다시 마주쳤다. 여기서 황인환 씨가 잠시 눈을 붙여야 겠다며. 정자에 드러눕는다. 나도 한숨 청해 볼까 했으나 잠기는 아직 없어 잠이 오면 자연스레 길 가 적당한 곳에서 자면 되겠지 하고 우산 1교를 지나니 승용차 안 소녀가 파이팅을 외치며 얼음과자를 주면서 먹으라고 한다.

 

허기도 지고 기진맥진한 상태라 고맙게 받아 날름날름 먹으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퇴촌 야영수련장을 지나니 천진암이 멀리 산 아래 또 한 봉우리 위에 깃발을 나부끼며 맥 빠진 주자를 반긴다.

 

고갯길을 오르다 보니 천진암 입구가 보이고 정문에서 우회전하니 고갯길 위에 진행요원이 반긴다. 원래 남한산성에서 한숨 자려고 하였으나 주자들이 북적대고 잠도 오지 않았으나. 천진암 당도 시각이 17시 38분쯤이니 잠깐만이라도 눈을 붙여보기로 했다. 거리로는 128.07km이다. 대원이에게서 “앵자봉을 향하여 20분 전에 천진암에서 출발했으니 밤길에 조심하십시오.”라는 전화가 왔다. 여기서 잠깐 한숨 붙이고 가겠으니 걱정 마소“라고 답하였다.

 

눈을 붙이는 동안 진행요원이 종아리에 얼음찜질도 해주고 어깨도 주물어 주니 피로가 금방 가시는 것 같았다. 10분간 눈을 붙이고 끼니를 해결하고자 급식장소로 옮겼다. 명동성당 가는 2호선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나 울트라마라톤 가시느냐고 인사를 먼저 해준 그 아줌마가 여기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또다시 먼저 인사를 건넨다.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어 얼른 바로 알 수가 없었는데 지하철역에서 인사 나눈 이가 바로 저라며 환한 웃음을 짓는다. 천진암에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 생각도 안 해 봤는데 인연치곤 기억에 남을 인연이다. 그 미소처럼 항상 행복이 넘쳤으면 하고 바래본다. 앵자봉 등봉과 야간 주행에 대비 손전등도 꺼내고 곰국도 먹어치우고 떡도 한 덩어리 챙긴 후 “수고들 하십시오. 먼저 가겠습니다.”라고 하니 아까 그 아줌마 껌을 주면서 잘 뛰라고 건넨다. 두 개를 집어 들고 한 입에 담아 꼭꼭 씹으며 천진암 고갯길을 올라간다. 오후 6시가 바로 넘어선 순간이다.

 

 

천진암성지에서 양근성지까지

 

 

제6야영장입구에서 직진하니 뒤 따라오는 주자들이 3~4명 무리를 지으며 올라온다. 바로 마구치 고개에서 나를 앞서 달리던 주자들이다. 시간을 줄이고자 걸음을 재촉하며 혼자 길을 개척해본다. 그렇지만. 안내코스도로는 찾기가 어려웠다. 박석고개 길을 잘못 찾아 잠시 헤매다가 뒤따라오던 일행이 옆길로 가고 있다. 어두워지기 전에 이들을 따라가는 것만이 최선의 지름길이다. 라고 생각하고 바쁜 걸음을 더욱 재촉한다.

 

박석고개 길을 따라 앞서간 이들을 따라가기란 그리 쉽지가 않았다. 일행 중 쳐진 한 분만을 겨우 따라가게 되었다. 박석고개 정상에서 갈림길이 좌우로 나있다. 안내코스도를 살피며.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나아갔다. 앵자봉 정상까지는 4~5개의 고개를 넘어야 하는 험난한 지형이었다.

앵자봉 정상까지 혼자서 달렸다. 정상에 설치돼 있는 요약도를 보니 제 길을 찾아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헬기장이 어디에 있는지 보이질 않고 오른쪽 능선로에 철탑으로 가는 길이 있었고 로프가 급경사를 대신하고 있었다.

 

잠시 후 내 뒤를 따라 오던 주자가 가까이 오자 물으면서 길을 확인해 본다. 자연사랑 리본이 등산로 주변에 있어 이것이 보이는 곳만 찾아 길을 떠나니 제3헬기장, 제2헬기장, 제1헬기장을 지나게 된다. 등산로 삼거리에서 우측 길을 택해 직진하니 임도상에 원통형 구조물이 보인다. 임도에 당도하니 바로 뒤를 이어 황인환 씨가 우회전하라며 먼저 가란다. 뒤에 오는 주자(진정화씨)가 도착하면 함께 가겠노라고 한다.

 

내리막길이어서 신발을 거의 끌다시피 달리다보니 아까 앞서 가던 일행들로 보이는 깜박이 등 불빛이 보였다. 어두워진 것으로 보아 밤 8시가 가까워지지 않았나 싶어진다.

 

한 무리의 일행과 합류하고 임도를 한참 내려가니 이윽고 계곡물이 흐르고 우리는 한 무리가 되어 계속 나아가다 보니 이윽고 첫 번째 민가가 길 좌측에 있다. 주어마을 쪽으로 직진을 계속하면서 일행은 모두 걷다시피 한다. 아스팔트 도로가 시작되고 대하품교에서 좌회전하니 44번 도로로 이어진다. 이곳은 행정구역상 여주가 아닌가 짐작해 본다.

 

여주에서 양평까지 안내해 줄 큰길인 셈이다. 이곳에서 일행 모두 잠시 휴식을 취하고 그 중 황인환 씨와 진정화씨가 차고 나간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까지 걷던 식으로 계속하다보면 어느 세월에 최종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지 막막하여 지금부터서는 무리를 해서라도 뛰어가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내 앞에서 뛰어가니 나도 용기가 솟았다.

 

하품교를 지나 오르막길 부근의 도로 주변에 불을 밝힌 식당이 보인다. 황인환 씨가 식사를 하고 가자고 해 따라 들어가니 마을이장과 그 일행 등이 의자에 걸터앉아 술을 먹고 있었다. 식당 주인에게 추어탕을 주문하니 밥이 다 떨어져서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장일행 등이 먹을 공기를 주면서 자기네들은 필요 없으니 우리 보고 먹으라고 한다.

 

시간은 오후 9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식사가 나오기까지 10여 분 동안 모두 드러누워 눈을 붙이고 나는 실례를 무릅쓰고 양말을 벗었다. 추어탕을 비우자마자 잘 먹었다고 주인과 이장일행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세월교가 여기서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니 2km는 된다고 알려 준다.

 

시간은 밤 10시가 넘어섰다. 우리 일행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세월교까지는 계속 직진하고 삼거리가 나오기 까지 무작정 뛰었다. 대석리 버스정류장, 대감마을 입구를 지나 세월리 삼거리 표시가 보인다. 좌회전하여 세월교,를 지나 고개에 부근에서 작년에 한반도 종단에 성공한 한씨가 걷고 있었다. 우리는 오다가 식당에 들려 먹고 나왔다고 말하면서 계속 뛰고 오르막길에서는 다시 걷기 시작한 후 고개 내리막길에서 다시 뛰기 시작한다.

 

남한강 에시스빌리지 입구를 지나 약간 오르막 고개를 지나니 편의점이 보인다. 여기서 손전등 건전지를 넣고 일행을 뒤쫓아 가고자 전속력으로 달려가니 양평대교 위에 다행히 깜빡이 등이 보인다. 힘들게 달리다 보니 양근대교 상에서 뒤따라가게 되었다. 양근 대교에서 좌회전한 후 양평주유소, 양평해장국을 지나니 양근 성지 입구 안내판이 보인다. 좌회전하여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니 양근 성지 정문에 바로 마대로 이동하라고 표시되어있었다. 거의 4월 28일(토) 밤 11시 30분이 넘었지 않았나 보인다.

 

이곳 양평은 바람도 세차고 추위도 보통이 아니다. 오한이 밀려오고 잠이 서서히 밀려온다. 비옷이라도 담아두었으면 이럴 때 쓰는 것인데 날씨가 좋다하여 집에다 두고 왔다. 완벽하게 대비하지 못한 탓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황인환 씨는 계속 완주시간을 계산하고 있는 모양이다. 계속 앞으로 달려가고 나는 뒤따라가기를 반복하다 추위를 견디기가 어려웠던지 비옷을 꺼내 입는다. 비닐이라도 담고 왔으면 추위를 모면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임도에서 지금까지 동행한 진정화씨가 발목 부상으로 더는 뛰지 못하겠다며 먼저 가라고 한다.

 

시간에 쫓기는 우리는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진정화 씨를 뒤로 한 채 마제를 향해 황인환 씨와 나의 힘겨운 역주는 계속되었다. 추위와 잠이 밀려오면서 또 다시 주력이 떨어지고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그렇다고 황인환 씨를 놓칠 순 없었다. 주로를 잘 아는 황인환 씨에게 나를 맡겨야만 했다. 발을 끌다 시피하며 겨우 뛰기도 하고 힘들면 걷기를 반복하며 나아간다.

 

송가네 식당이 눈에 보인다. 여기서 식사를 하고 잠을 청했으면 하였으나 황인환 씨는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 춥기도 하려니와 잠을 못 이겨 이대로 가다가는 도저히 안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시골 순댓국 식당에 들려 요기도 좀하고 쉬었다가 가자고 하니 따라 준다. 정말 이번 완주의 1등 공신은 이분이 아닌가 싶다. 해장국을 시키고 쓰레기 봉투하나를 부탁했다. 물론 음식이 들어오기까지 양말을 벗고 단잠을 청했다.

 

전기장판이 설치되어 있는지 정말 따뜻하다. 시간을 보니 4월 29일(일) 새벽 1시 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밥이 들어오자 일어나 식사를 마치고 갈 준비를 하는데 대원이가 나타나 해장국 하나 시켜먹으라 하니 먹고 왔다고 하면서 오다가 길을 잃어 늦었노라고 한다. 잠시 후 하품까지 동행하던 일행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잠을 더 청하고 난 후 쓰레기봉투로 비옷을 만들어 입고 새벽 2시쯤 식당을 나왔다.

 

 

양근 성지에서 마대까지

 

 

일행은 또다시 3명이 되었다. 요기를 하고 잠을 자고 나니 한결 몸이 나아졌다. 황인환 씨와 대원이가 계속 앞장을 서고 나는 뒤따라가기를 반복하며 나아간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북한강변의 냉기는 더해지고 주력까지 느려진다. 그렇다고 천천히 걸을 수만은 없었다. 종아리가 아파도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갈 길이 멀지만 뒤처지면 끝장이다. 라는 생각에서다.

 

세 사람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함께 무리지어 뛰고 있다. 마제는 빨리 달려가 추운 몸을 달래고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저 멀리 아스라이 양수대교가 끝없이 이어지며. 가로등 행렬이 북한강변에 있는 다리임을 알리고 있다. 언제 저 끝없는 대교를 지나갈까 하면서 국수교와 신원버스정류장을 지나치고 있다. 지금까지는 3명이 함께 잘 달려왔다.

 

거의 걷지 않고 달려왔다고나 할까. 식당에서 휴식을 취한 것이 효과를 발휘했다. 용담대교를 지나 이제부터는 양수대교다. 새벽 3시가 넘었을 것으로 짐작이 가고 가도 가도 다리만이 계속되는 이곳을 뛰고 또 뛰었다. 달리다 보니 다리 위에 고개같이 경사진 곳이 보인다. 양수대교도 끝이 나고 있는 것이다. 내리막길부터 또 다시 주력이 떨어지고 양쪽 사타구니 근육마저 잘 움직여 주질 않는다.

 

두 사람은 여전히 뛰어가고 나는 계속 뒤쳐지고 있다. 따라가려고 온 힘을 다하지만 근육이 마비된 것처럼 다리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앞서가던 두 주자가 잠시 머뭇거린다. 좌측 강변로 쪽으로 방향을 틀고 우회전하니 이곳이 마재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길 양쪽에는 목재로 된 인도가 있어 그리로 걸어갔다. 진행요원 차량이 지나가자 마제 cp를 물으니 200m만 더 가면 된다고 한다.

 

다리를 거의 끌다시피 걸으면서 마제 cp(174.89km)에 당도하니 대원이는 대형 타올을 온몸에 두르고 황인환 씨는 라면을 먹으면서 불가에서 피곤함을 달래고 있었다. 시간은 새벽 4시 26이다. 기력이 다 떨어진 나는 컵라면을 한 그릇 비우고 타올을 몸에 두른 채 잠에 떨어졌다. 물론 우리 일행 외에도 3명 정도가 이미 잠에 떨어져 있었다.

 

이곳에서도 진행 및 봉사요원의 친절은 극진했다. 격려성 인사, 추위에 지친 주자에 타월과 컵라면 그리고 막걸리, 바나나까지 손수 둘러주고 끊여주고 부어주고 정말이지 손 하나 까닥 않고 먹고 자고 할 정도였다.

 

 

마제에서 구산 성지까지

 

 

달콤한 잠에서 깨어난 시각은 4월 29일(일)05:20분. 따뜻한 난로 옆에서 누워 자고 나니 온몸의 추위가 풀려서 한결 몸이 가볍다. 바깥은 이미 훤하고 주자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라고 유혹하고 있다. 황인환 씨가 제일 먼저 일어나 우리를 재촉한다. 1시간여 소비했으므로 앞길이 더욱 바빠졌다.

 

앞으로 주행안내도 황인환 씨가 맡게 될 것이고 나는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심정으로 cp를 서둘러 나왔다. 저 앞에 한 명의 주자가 우리보다 먼저 길을 나서 뛰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거의 쉬지 않고 달려야만 여유 있게 완주할 수 있기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달려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다 함께 또 뛰기 시작한다.

 

저 멀리 양수대교로 이어지는 터널이 보이고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45번 국도이고 우회전하니 한전 팔당 사업소다. 팔당댐위로 도로가 있어 그 위로 갈 수 있느냐고 근무자에게 물어보니 안 된다고 한다. 우회전하니 마제 cp에서 우리보다 앞선 주자 한 분이 서서히 달리고 있었다. 이 길이 맞긴 맞은 모양이다.

 

조금 있으니 대원과 황인환 씨가 함께 뒤에서 나를 추월한다. 이들이 잠시 늦은 연유는 삼거리 좌회전 후 황인환 씨가 잠깐 실례하고자 화장실로 간 사이 대원에게 함께 오도록 부탁한 후 시간이 급한 나로서는 먼저 가겠노라고 말했던 것이다.

 

6번 국도 교차지점을 지나 팔당대교 나들목 입구 쪽은 오르막길로 양평 쪽으로 오는 차량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팔당대교 북단에서 좌측난간 보도로 방향을 틀어 나아가니 나들목이 끝나고 한강둔치 진입로 입구에서 360도 꺾어서 내려가 한강둔치생태공원길 입구를 지나 덕풍교 뚝 길로 진입하면서 끝이 없는 한강 뚝 길이 3.26km나 이어진다. 바람도 없는 화창한 봄 날씨로 또다시 기력이 떨어지고 나는 또 쳐지기 시작한다. 미사리 한강감시초소에서 좌회전하여 계단을 내려갔다. 황인환 씨는 어디로 간 곳이 없고 대원과 함께 구산 성지를 찾는다.

 

미사리 경정장 후문 88 자동차전용도로를 건너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니 구산성지 안내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니 울트라마라톤 표시가 반긴다. 구산 성지는 주택가 골목길 우측에 있었고 정문에서 진행요원이 우리를 반겼다. 거리는 190.76km. 아침 8시가 넘어섰다. 완도 4인방 유장열은 한 시간 전인 7시경에 이곳을 거쳐 갔다고 명부에 표시되어 있다. 이곳에서 대원과 함께 컵라면을 비우고 함께 길을 나선다.

 

이화산업 공장 정문에서 우회전해야 하나 300m쯤 계속 직진하니 뭔가 잘못된 것을 안 대원이가 역주행하여 이화산업 공장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망월4길, 선동 4거리를 건너 하남시 사회인야구장 후문을 유턴하여 쪽문을 통과하면서 긴 티를 벗어 배낭에 담고 반티상태로 달려본다.

 

경기도 서울시 경계, 강동대교 밑, 고덕천/둔치교에서 좌회전, 언덕길 직진 후 바로 우회전, 털보 중기, 평창감자탕 집, 샘터그린공원, 암사정수사업소, 선사 사거리 이정표에서 우회전, 토끼굴, 상수원보호구역안내표지에서 좌회전하여 광나루 매점까지 30여 명의 주자들이 선두주자를 따라 달리다가 잠깐 걷기를 반복하면서 이곳에 도착했다.

 

그 속에는 우리를 앞서간 주자들과 뒤처진 주자들이 다 모여든 것 같았다. 황인환 씨와 고진화 씨도 있었다. 매점에서 쉬는 동안 대원과 함께 둔치 길을 따라 걷다가 대원의 발바닥 상태가 좋지 않다면 화장실로 들어가 수돗물에 발을 담근다. 얼굴을 씻으려다가 선 크림을 건드릴까봐 씻기를 멈추고 다시 나와 용변을 본 사이 대원은 벌써 저 멀리 사라지고 있다.

 

종종걸음으로 뒤따라가다 독한 마음으로 뛰어 본다. 10시가 넘으면서 나른해지고 몸이 계속 처진다. 천호대교, 올림픽대교, 잠실철교, 탄천 둔치교, 영동대교까지 거의 걷다시피 하였다. 이렇게 가다가는 완주하기가 어려운데 발이 말을 듣지 않는다. 잠도 쏟아지고 시간은 11시를 넘어 정오를 향해 가는 듯하다.

 

길가에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니 한 무리의 주자들이 뛰어가고 그 뒤를 이어 다른 한 무리의 주자들이 걸어오고 있다. 여기서 쳐지면 안 된다. 나도 앞서 뛰어가는 주자처럼 있는 힘을 다하여 뛰어 보자. 여기서 쳐지면 완주는 불가능하니 제발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나 자신에게 격려와 힘을 북돋우며 뛰기로 하였다.

 

뛰니 뛰어진다. 5~6명의 앞선 주자들을 제치고 뛰어가고 힘들면 잠깐 걷기도 하며. 잠수교가 나오는지 자꾸 한강을 바라본다. 잠수교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청담대교, 영동대교, 성수대교, 동호대교, 한남대교, 반포대교까지 거의 달리기로 시간을 단축했다. 잠수교 진입 직전에 광주 빛고을 마라톤에서 주행 중 처음 만나 알게 된 한철호 씨가 바로 뛰어가고 있다.

 

조금 더 가니 대원이 발바닥을 어루만지며. 먼저 가라고 한다. 같이 달려오면서 이명우 씨와 계속 동행주를 하여야겠다고 생각하고 부지런히 뒤따라가지만 잠수교 북단에서 먼저 뒤따라오던 대원과 함께 사라져간다. 있는 힘을 다해 쫓아가다 보니 힘이 파한다. 앞으로 1~2시간여 시간이 있으므로 걸어가도 완주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원에게 걸어가자고 하니 같이 가자며. 앞장선다.

 

녹사평역 건널목, 해방촌 입구, 한참 걷다가 4인방 유장열에게 전화를 하는 모양이다. 어디쯤 있느냐고 묻고 함께 가자고 전화하는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해방촌 우리 마트 앞 4거리에서 진행요원의 반겨주고 아이스바도 준다. 더위도 시원함이 있어 쪽쪽 빨아먹으며 도로를 건너다보니 유장열이 반가워한다. 용산2가 동사무소 앞 5거리에서 직진, 남산도서관 쪽에서 좌회전, 남산도서관 앞 건널목에서 우회전하기 전에 심성기 씨가 뒤따라오면서 길을 알려준다.

 

남산공원관리사무소까지 계속 오르막길이고 시간은 1시를 넘어서고 있다. 공원을 찾는 사람들과 차량으로 북적거리는 남산 공원은 휴일 서울시민과 지방에서 올라온 관광객들로 만원이다. 이제부터 내리막길이라 한결 쉬어졌지만 기진맥진한 나에게는 힘겹다. 나와 동행하는 완도 4인방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안중근의사 기념광장 계단에서 내려가다 앞서가던 대원이가 통행인에게 명동성당 길을 묻는다. 명동 전철역으로 들어가 명동성당 출구 쪽으로 올라 인파에 묻힌 명동으로 접어들고 4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명동성당에 당도하니 사진기사가 우리를 반긴다. 4.29(일)14:18분에 포토라인을 밟으며 역사적인 222km 가톨릭 성지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하는 순간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어려온다.

 

완도 4인방은 전원 제한시간 내 완주함으로써 만방에 우리 완도 마라톤을 드러내고, 가톨릭 성지 마라톤 역사상 금자탑을 쌓았으며. 대단한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각자 월계관을 쓰며 영광의 순간을 남기고자 주최 측의 사진촬영과 함께 4인방의 기쁨을 고이 간직하고자 네 사람만의 사진촬영도 하였다. 주최 측에서 건네준 영광의 장미꽃 한 송이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 그대는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인 장미보다 더 아름다운 이들이라고!

 

 

완주 후기

 

 

너무도 힘겨운 주행이었다. 정말로 울트라마라톤은 인간의 극한 한계를 시험하는 힘겨운 경기다. 광주 빛고을 울트라, 제주 일주 울트라, 한반도 횡단 울트라와 함께 이번 대회도 어느 대회 못지않게 힘이 들었다. 그렇지만. 결국 완주했다. 나를 이긴 승리였다. 봉사요원의 적극적인 도움, 그리고 함께 동행주한 황인환 씨, 조대원 등의 도움이 없었다면 과연 또 하나의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까?

 

역시 나의 힘으로만 완주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주님께서 늘 함께 하시면서 나를 돌보아 주셨기 때문이다. 달릴수록 힘 들어갈수록 주님은 항상 가까이 다가와 도움을 주셨다. 갈 길을 헤매지 않게 해주시고 어려울 때는 동행할 사람을 세워주시며. 역경이 닥쳐왔을 땐 슬기와 지혜를 주셨다. 어려울 때 올바른 판단을 주셨다. 길을 달리면 세상은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미지의 세계라는 또 다른 영혼의 길로 안내해 주는 것 같다. 한계에의 순응. 보이지 않는 위대함의 귀의. 겸손의 미덕, 자연과 함께 가는 때 묻지 않는 순수함. 달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선택을 받은 행복인가. 완주 후에 찾아오는 피곤함은 “수고하고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대들을 고이 쉬게 하리라”라는 주님 말씀처럼 평온함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온몸에 가득함으로 변화함을 알 수 있다.

 

한계를 극복한 이들에게 주는 주님의 선물을 받고자 우리 달림이들은 밤낮을 쉬지 않고 뛰고 달리고 걷고 때론 포기하고 싶은 심정 속에 울부짖기도 하지만 가장 위대하신 분으로부터 사랑받고 싶기에 우리는 극복해 가는 것이다.

 

초월한 자는 혼자가 되고 모든 것이 하나가 된다. 미움도 사랑도 하나가 된다. 만물이 각기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작은 이익에 눈멀지 않으며. 혼자임을 처절하게 알기에 자신의 능력이 미약하며. 혼자서는 할 수 없으며. 그럴수록 남을 귀하게 여겨야 함을 느끼게 한다.

 

가정은 우리 사랑의 밭이며. 참 행복의 근원이다. 하느님 외에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이는 가정의 구성원임을 다시 한 번 알게 하소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가정을 지켜주시고 사랑으로 항상 가득 차게 하여 주소서. 가정 구성원 모두 하나 되어 역경을 헤치고 인생의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게 하시며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꼭 완주하게 하여 주소서.

 

아름다운 세상은 바로 당신 곁에 있습니다. 지금 달리십시오. 이마에 땀방울이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질 때마다 아름다움은 그 속에 여물어갈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당신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당신의 순수한 마음을 위해 지금 바로 달리시기 바랍니다.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무리해서는 안 됩니다. 맛 들일 때까지 무리하게 달리시는 것은 참으셔야 합니다.

 

언젠가 주로에서 함께 달릴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아멘.

 

▶대회 개요◀

 

기간 : 2007. 4. 27(금) 21:00 ~ 4. 29(일) 15:00

장소 : 명동성당 성모 동산

주최 : 가톨릭 마라톤 동호회

참가자 : 73명

제한 시간(42시간)내 완주 : 47명

 

박용각, 박진경, 김희각, 김영삼, 조희웅, 정우광, 오성호, 김종대, 조대원, 김순임, 김미경, 고재수, 천금산, 임영수, 백명진, 황인환, 김영태, 김동해, 최 란, 조용국, 이학준, 이명우, 박재수, 유장열, 박석희, 우태웅, 박일환, 김용권, 정미자, 민경노, 차창근, 이상명, 서승교, 황규정, 권자현, 김구현, 유수상, 진정화, 김상열, 소창섭, 이도희, 심성기, 주재열, 전상수, 고화중, 한철호, 박충근

 

완주율 : 64.38%

▷공동우승 : 박용각, 박석희(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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