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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지역 성지순례와 문화체험기(2부)

◈요르단 성지순례와 문화체험◈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07.05.15 20:18
  • 수정 2015.11.07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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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완도중앙교회장로. 완도문화원부원장)

 

3월 7일 오후 이집트에서 요르단으로 가자면 이스라엘 국경을 통과해서 들어가야만 했다.

르단에서 성지순례를 마치면 다시 이스라엘에 입국해야 하므로 국경을 2번 통과하는 셈이다.

이스라엘과 인접한 국경지 타바에 도착하여 검색에 들어갔다.

 

군인들의 검색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검색 할 때 그들의 질문에는 서투른 영어를 사용하거나

짜증스런 표정을 짓거나 따지는 자세를 취하면 수상히 여겨 몇 시간씩 잡아두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묻는 말에 반드시 한국말로 대답해야 한하고 한다.

 

한번 걸리면 여행은 망치게 된다고 사전에 가이드가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자살폭탄 테러가 빈번히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18세가량의 남. 녀 군인들이 나와 검문이 시작되었는데 뜻밖에 한국인 청년이 다가와 우리말로

몇 마디씩 물어보고 웃으며 일차 통과 후 연이은 검색이 쉽게 끝나 요르단에 입국하였다.

 

2년 전까지도 요르단에 들어가기가 매우 어려웠다는데 다행히 양국 간에 잠시 화해가 이루어져

우리가 쉽게 들어가게 된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3월8일 오후 늦게 요르단의 첫 숙소는

이곳 수도 암만에 있는 호텔(파노라마)이었다. 저녁 식단은 이집트와 별로 다름이 없이 양고기

닭고기 과일 야채 꿀 등으로  뷔페식단 이었다.

 

요르단의 일정은 3월8일부터 3월10일 오전까지 페트라, 시크길, 알카즈네 사원, 귀족들의 무덤,

원형극장, 모새의 샘과 계곡 등 이었다. 3월9일 오늘도 아침 하늘과 공기가 맑고 따뜻한 봄 날씨다.

페트라는 유네스코 7대 불가사의에 속하고 또 각국을 대상으로 일생에 가장 가보고 싶은 10대

지역에 선정된 ‘페트라’ 탐방은 강한 인상을 주었다.

 

 

페트라 문화유적은 요르단에서 자랑하는 보물 1호로서 세계의 보물 1호라 해도 과언이 아니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화 ‘인디아나존스’, ‘마지막 성배’를 촬영하기도 하였는데 구약성경에는 이곳을 ‘에돔’

이라 기록하고 있다. 에돔은 바위산이라는 뜻이며, 에돔인은 바위에 굴을 파고 들어가 사는 습성이

있어서 이와 같이 기묘한 바위도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 바위도시는 4000년 전에 300m 높이의 험한 바위산을 나반태안들(에돔인)이 깎고 뚫고 들어가

개발하여 5만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도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붉은 사암으로 된 거대한 바위틈새의

깊은 산골자기로 들어갈수록 암석 자체가 여러 가지 색깔과 물결 줄무늬가 현란하여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 암벽을 파서 세운 그리스 로마식 건축양식의 웅장한 궁전도 볼 수 있었다.

벽면엔 십자가가 그려진 4세기경 예배장소로 추정된 수도원도 있고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과

상수도 시설, 시장, 무덤 등이 있는데 결코 현대에 못지않은 시설들이라 생각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바위 도시를 관통하는 길은 아시아 실크로드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이다.

 

로마와 중동인들이 이 도로를 이용하였으며, 아라비아지방으로 왕래하는 대상들에게는 높은 통관세를

받거나 약탈하여 풍요를 누리며 살았다고 한다. 나반태안인들은 고도의 문명을 남겼지만 그들의

사상과 역사와 문학. 종교에 대하여 기록으로 남기지 못하였다. 일설에는 ‘페트라’에 대한 기록이

보관된 박물관에 불이 나 모두 소실되었다고도 한다.

 

주후 6세기 경 지진으로 묻혀있었는데 1812년 스위스의 젊은 탐험가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 하르트라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현재 20%정도 발굴이 되었으며 계속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3월9일 오후 암만 시내에서 가까운 가이사랴 빌립보에 있는 원형극장을 비롯한 궁전등 거대한

유적지를 답사하였다. 홍해 인근에 위치한 이 엄청난 규모의 유적에서 그 시대에 암몬등 지중해

지역을 지배했던 로마의 패권과 문화발달을 살필 수 있었다이곳에서 가이드의 설명에서 특별히

귀중한 사실을 한 가지 알게 되었다.

 

중동지방에 수 천년된 유적들이 현재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건축 주 재료를 돌로 사용되기 때문

이라 한다.반면에 우리지역의 건축재는 잘 썩고 수명이 짧은 목재를 사용하므로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을 정리하면, 요르단은 아라비아 반도 북부 고원지역에 위치하며

면적은 8만8946k㎡ 인구 484만 명이고 수도는 암만, 아랍어를 사용하고 있다.한국과 시차는 7시간이다.

 

1967년의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3대 종교 성지인 예루살렘을

점령당하기도 하였다. 이스라엘과는 적대국으로 이 지역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종교적으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국가였으나 635년 아랍권의 통치가 시작되고 난 후 대부분 이슬람교도가 되었지만

소수의 기독교인들도 있다고 한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Amman)은 고대도시로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도시다. 9000년 전 신석기

시대부터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았으며, 현재는 인구 160만명이 거주하는 요르단의 수도가 되었다.

요르단도 이집트와 같이 사막과 광야가 많았으나 이집트에 비교하여 물이 많아 암만시 주변에는

숲과 올리브농장도 있으며 돌 틈새로 파릇한 풀들도 눈에 많이 띠였다.

 

또 목축이 성하여 광야엔 수많은 양의 무리와 검은 천으로 세워진 천막을 볼 수 있었다.

가이드가 양떼를 가리키며 들려준 짧은 이야기가 큰 감동을 주었다. 어느 외국의 여행객이

자동차로 끝없는 사막 길을 횡단하고 있었는데 중도에 자동차가 고장이 나고 말았다.

 

물과 먹을 것이 모두 떨어져 더위 속에 죽게 되었는데 멀리 양떼를 발견하곤 그리로 갔더니 목자가

나와 반겨 맞아주며 여러 마리 양을 잡아 후히 대접해 주었다는 것이다. 떠나 올 때 고마운

마음에 달러 얼마를 주었더니 크게 화를 내며 오히려 더 보태어 주더란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목자 상을 상상해 보고 또 그들의 독특한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한 인도주의 사상을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동 중 많은 바위산 군대 군대에 검정 줄무늬를 띄고 있었는데 모두 석유 성분을 머금고 있기 때문

이라고 한다. 이를 가공하기까지는 기술과 경제성이 낮아 개발하지 않는다고 하나 미래에 큰 자원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부럽기 그지없다. 오후 늦게 암만시로 들어와 호텔(제루살렘 인터내션날)에 들었다.

 

 

3월10일 오전 해발 835m의 느보산 정상에 올랐다. 이곳은  요르단 성지순례의 최고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성지다. 이곳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40여 년 동안 걸려

하나님과의 약속의 땅 이곳에 왔으나 정작 자신은 목적지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평야를 훤히

내려다보면서도 들어가지 못하고 운명한 느보산(비스가산)이다.

 

그리고 이곳 모세의 무덤위에 세워졌다는 느보산 모세기념교회에서 지도자의 역할과 고뇌,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리더십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이었다.  

2박3일 간의 요르단 성지순례를 마치고,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한곳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강한나라

이며 사막을 옥토로 일구어 세계 제일의 농업국가 이스라엘을 향해 버스는 사막을 가르며 힘차게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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