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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의 영화읽기

역사·땀·눈물이 키워낸 홋카이도의 아이들대한민국 정치인이라면 꼭 봐야 할 영화 <우리학교>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07.05.10 17:41
  • 수정 2015.11.07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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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건영(영화평론가)

한반도 면적의 3/4에 달하는 일본에서 가장 큰 섬 홋카이도에 조선인의 얼과 말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통칭 ‘우리학교’로 불리는 ‘조선초중고급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그들이다.

이 학교는 일본정부로부터 ‘각종학교’로 분류되어 졸업장은 물론이고 학력인정조차 되지 않는 사설교육기관인데, 그들은 왜 일본말과 일본학교 졸업장이라는 편한 길을 포기하고 힘겨운 조선학교 선택을 감행하였는가?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는 바로 조선초중고급학교 학생과 보낸 3년 반의 기록이면서 이국땅에서 내외적 정체성의 혼란과 일본인들의 차별과 악의서린 시선을 이겨내 온 학생들과 교원들의 진심을 담아 써내려간 한민족 리포트이다.

다큐멘터리 영화일지라도 감독의 의견과 주관과 세계관이 개입되기 마련인데 반해 <우리학교>에서 김명준 감독의 역할은 극도로 미미해 보인다. 단지 선생님과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그들과 동화되기를 주저하지 않음으로써 영화 완성에 일조하고 있을 따름이다.

요컨대 수줍어하면서도 자신감 있게 조선인임을 밝히고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통해서, 선생님들의 흔들림 없는 사명감이야말로 이 학교를 지탱해온 버팀목임을 자연스레 알려주고 있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어떻게 자신이 조선인임을 인식하고 우리학교에 들어와 우리말을 배우며 조국에 대해 열망하는지를 그려내는 초반부가 민족정체성에 관한 것이라면, 학교와 동포사회를 하나로 묶는 대운동회의 준비와 행사장면에서 만나는 유쾌하고 활력 넘치며 순수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중반부는 ‘우리학교’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한 해설이자, ‘왜 이 학교가 설립되었고 지켜져야 하는가’라는 당위성에 대한 것이다.

<북한을 ‘조국’이라 부르는 이유>

무엇보다 중요한 중반 이후의 장면들은 우리학교가 설립 이후 겪어야 했던 고초와 시련의 시간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알려줌과 동시에 그들이 조국으로 북한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전국대회 출전과 관련한 일본사회의 차별과 견제 속에서 지혜롭게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 아이들의 모습과 홋카이도 지역예선에서 패한 축구부원들의 서러운 눈물이 메마른 땅위에 떨어질 때, 머리를 감싸 안고 통곡하던 골키퍼의 모습 앞에서 해방이후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는 무엇에 가치를 두고 누구 편에서 살아왔는가를 반성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전쟁이후 산업화 근대화의 기치를 우상처럼 떠받들며 그것을 가능케 해줄 모든 것에 대해 과도한 숭배와 맹신을 아끼지 않았던 반면, 북한정부가 우리학교에 대한 경제지원을 계속하는 동안 우리정부는 일본 내의 문제를 일본에게 내맡겼을 따름이다.

한국에 가고 싶어도, 대사관을 찾아가면 왜 한국국적을 취득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절차와 과정이 너무 복잡하다는 진술, 그럼에도 한국정부가 한 일이라고는 일본 내 조선인들의 문제를 일본정부에게 맡겨버렸다는 식의 무책임함에 대한 원망이 보여질 때의 자괴감이라니. 사실이 그랬다.

해방직후 한국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이들은 무국적자가 되어버렸고 한국정부에게 이들은 잊혀지고 소외된 자들이었다. 당시 조선학교는 북한체제로부터 경제지원을 받았으니, 해방직후 남한정부가 이들을 도울 여력이 없었기에 벌어진 일인데, 결국 이것은 훗날 이념을 문제 삼은 남한정부로부터 ‘우리학교’가 배척당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반 이상 남쪽이 고향인 부모를 둔 아이들이 북한을 ‘조국’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담담하고 쾌활하게 시작되던 영화가 후반으로 치달으면서 일궈내는 감동과 눈물은 그 어떤 작위적인 스토리로도 만들어낼 수 없는 수준의 성취를 이뤄내고 있다. 고등부 3학년이 고국여행의 일환으로 만경봉호를 타고 북한방문길에 오르는 후반부는 영화의 백미인데, 그것은 단순히 북한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꿈에 그리는 조국을 직접 만나는 일이며 자신들이 힘들게 지켜온 민족정체성과 우리말을 맘껏 쓸 수 있는 공간으로의 꿈같은 이동이기 때문이다.

일본우익과의 팽팽한 긴장감을 뚫고 원산항에 도착한 아이들은 하나같이 발과 손을 동시에 디디며 조국 땅에 들어선 감격을 표현한다. (물론, 김명준 감독은 한국국적을 가졌기에 이 장면부터는 학생에 의해 촬영되었다.) 특별할 것도 없고 일본과 비교해서 턱 없이 단출한 북한의 거리와 모습일지라도 이 아이들에게 조국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위대하고 커다란 힘이던가.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인공기가 펄럭이고 김일성 배지와 사진이 나오며 북한식 발음과 북한을 조국이라 부르는 아이들이 스크린을 채우고 있지만 전혀 낯설거나 생소하지 않은 것은, 한민족에 대한 동질감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의지와 신념을 지키고 이를 자랑스러워하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동안, 부끄러움이 먼저 안일한 자아를 일깨워주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축구장에서 또는 만경봉호 선상에서 그리고 12년을 다닌 학교를 떠나는 졸업식장에서 흘리는 아이들의 눈물은 세상의 어떤 보석보다 값지고 아름답다. 지난한 역사와 피와 땀이 서린 이국땅에서의 삶이 일궈낸 감동적 서사가 그것을 재현해낸 감독의 고운 마음에 더해져 만개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탄식과 환희와 눈물이 스크린 위에 번질 때, 객석 또한 일희일비가 교차하며 때론 박수를 또 때론 분통함을 억누르게 만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학교>가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계열의 교육기관을 소재로 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데올로기의 잣대를 들이대려는 이가 있을 런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대한민국의 모든 교직자와 정치인, 방송종사자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아야 할 것이다. 반드시 그리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의 말과 민족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아이들과 이들과 하나가 되는 우리학교의 선생님들, 무엇보다 그 냉혹한 일본의 민족차별의 장벽에도 굽히지 않고 아이들을 조선학교로 보낸 재일동포 부모들의 거룩한 정신을 직접 체험하고 느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북한을 떠나면서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며 만경봉호에서 외치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왜 이리도 가슴을 파고드는 것일까? 그래! 그들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었지. 너무 당연하지만 너무 오래 잊고 살았던 사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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