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이 날아갈까 봐서 무섭소."해안도로를 따라 유촌에서 죽촌으로 넘어간다. 죽촌 마을 앞길은 물고기 양식장 사료로 쓸 냉동 물고기 하역 작업이 한창이다. 사료 창고에서는 물고기를 자르는 기계소리가 요란하다. 해안가 낡은 오두막 집 마당에서는 할머니 한분이 생선을 손질하고 앉았다."말렸다가 반찬 하실려구요.""아닙니다. 냉동실에 넣어 뒀다가 아이들 오면 먹일라고 그럽니다. 칵칵 씻처갔고 배를 뜹니다. 이거 이리 좋다요. 한데 좀 빈내가 납니다"할머니는 선한 인상처럼 말씀도 참 곱다. 학꽁치가 맛있기는 한데 날것으로 먹으면
당시 영국군은 주민들에게 치료약을 공급하고 노임을 지불해 가며 공사 일을 시켰다. 섬 주민들과 마찰을 피하기 위한 영국군의 유화 전략이었겠지만 조선 왕조 하에서 강제 부역에만 종사했던 섬 주민들은 그것을 고맙게 여겼다. 섬 주민들은 영국군과 협상 차 거문도에 온 조선 정부의 대표 엄세영에게 "자기 백성을 지켜주지도 못하면서 노임 받고 일하는 것을 방해 한다"고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전한다.조선 왕조 지배 세력의 섬에 대한 수탈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영국군이 거문도를 점령하자 재빠른 일본 상인들은 서도에 유곽을
거문리에 한국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8.15 해방 직후부터다. 일본인들이 살다 떠난 집들을 적산 불하 받았다. 일본인들은 "얼마 있다가 곧 올테니 잘 관리하고 있으라" 당부 하고 떠났지만 헛된 꿈에 불과했다. 거문리에는 아직도 일본집들이 많이 남아 있다. 겉모양은 바뀌었어도 골조는 그대로다. 저 노래방 건물도 일식 목조 건물을 개조 한 것이다. 노래방 건물에는 나까끼지라는 일본인이 살았었다. 그는 거문도의 어패류를 수집해서 일본으로 보내는 중개상이었다."한 십 년 전만 해도 나까끼지 아주머니가 여길 찾아
세계는 자신이 아는 만큼 존재한다. 세 시간의 항해 끝에 '거문도 사랑'호가 거문도 내해로 진입한다. 여수항을 출항한 여객선은 나로도와 손죽도, 초도 등의 섬을 경유해 거문도로 왔다. 거문도에 오기 전까지 나는 이 항로의 중간에 손죽도와 초도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두 섬은 나의 세계에는 없는 섬이었다. 거문도 여정을 통해 나의 지도에는 두 개의 섬이 더 생겼다. 내 세계는 그만큼 넓어 졌다.여수에서 114 킬로, 먼 바다로 나왔지만 거문도 내항 바다는 잔잔하다. 서도와 동도, 고도 세 섬이 팔을 벌리고 서로를 품어
수산물 양식이 큰 소득을 가져다주면서 섬에도 젊은 사람들이 다시 들어와 살고는 있지만 섬은, 농촌처럼 지속적으로 빈집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교통의 불편보다 더 큰 이유는 아이들 교육이다. 욕지도에도 빈집들이 많다. 아주 사람이 살지 않거나 어장철이나 피서철에만 돈벌이를 위해 가끔씩 들어와 사는 집, 그 또한 빈집이다. 이 나라는 집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빈집에 사람이 들어가 살게 할 정책이 부족하다.4차선 국도 옆으로 고속도로를 만드는 나라. 도로가 늘어도 막힐 때는 늘 막힌다. 휴가철이나 명절, 일 년에 몇 차례를 제외하고는
전북 진안군은 오랜 시간에 걸친 마을 만들기 사업을 통해 지역발전을 위한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행정운영 시스템과 탄탄한 중간지원조직을 갖추고 있다. 그동안 쌓인 성공과 실패의 경험, 내공, 그리고 지역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서두르지 않고 단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했다.진안군의 마을 만들기의 가장 큰 특징은 지역의 재생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하기 위해 ‘더디지만 제대로 걸어가는 길’이다. 다시 말해 지역을 구성하고 있는 마을과 마을, 행정과 주민, 마을과 단체 사이에 적절한 협력과 경쟁시스템이 기본적으로 담보될 때 지역은 점진적으
욕지도는 아름다운 해변이 많지만 욕지도의 진면목은 해변에 있지 않다. 해변에 가면 섬의 일부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욕지도만이 아니다. 어느 섬이든 섬을 온전히 보고 싶으면 섬의 산에 올라야 한다. 욕지도를 찾는 사람들은 주봉인 천왕산에 올라야 진짜 욕지도를 봤다 할 것이다. 가장 높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는 데는 채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발길이 날렵한 사람은 30분만에도 오를 수 있다.욕지도에는 천왕봉(392m)을 비롯해 대기봉(355m), 약과봉(315m), 일출봉(190m) 등의 여러 산이 있다. 산에는 등산로가 잘 나 있
아이가 늙도록 섬을 못 떠나고 "혼자 오셨는가예?""예""혼자 오면 외로울 낀데."욕지도 제암 마을 언덕빼기, 봄이 오는 길목에서 할머니 한분 마늘 밭을 매고 계시다. 할머니는 욕지도에서 태어나 욕지도 남자와 결혼해 살았다. 섬이지만 내내 농사만 지었다. 딸만 다섯을 둔 딸부자. 아이를 가지고도 밭일을 쉬지 못했다. 평생 밭만 파고 살았다. 섬 살이가 하도 고달파 젊어서는 섬을 떠나고 싶은 적도 많았다."후회가 왜 없겠어요. 남들처럼 객지 나가서 남편 벌어다 주는 돈 받아 편히 살았으면 좋았겠지. 평생을 섬에서 갇혀 살
현재 농어촌은 심각한 고령화와 인구유출, 사라지는 일자리, 경제적 자립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추진한 각종 농어촌 정책은 지역의 특성을 무시한 획일적인 대책과 언제 떠날지 모를 외지 기업을 유치하려는 지자체의 생색내기 사업으론 지역의 자립경제는 불가능 하다.전북 완주군은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기 위해 행정중심이 아닌 주민 중심으로 지역 자원을 활용해 다양한 농촌활력사업을 추진해 눈길을 끌고 있다. 다시 말해 자치단체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하향식’이 아닌, 주민들의 참여와 관심을 바탕으로 하는 ‘상향식’ 지역개발 사업이기
이 숲의 바람소리를 들으며 문득 깨닫는다. 바다도 숲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데 대체 나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이가 세상에는 몇이나 될까. 어쩌면 우리가 눈 SNS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소식을 전하는 것은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나의 안부를 알아달라는 절실한 호소가 아닐까. 자신의 존재가 잊혀 질 때 사람은 살아있어도 산 것이 아니다.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도 없는 사람들의 세계. 인간은 기계가 없으면 서로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 아주 사라져 버린 것일까. 사람들이 이처럼 메트릭스 속에서만 빠져 산다면 마
내도 숲길 입구 산비탈에는 오래된 동백나무들이 신장처럼 숲을 호위하며 서 있다. 오랜 세월 모진 바닷바람을 견디며 속이 단단해진 동백나무들은 도끼날도 뚫을 수 없을 만큼 견고하다. 이 겨울, 철갑옷으로 무장한 동백나무들의 방어를 뚫을 수 있는 적은 어디에도 없으리라. 숲길 초입은 약간 가파르다. 나무와 흙으로 만들어진 계단은 비탈을 오르는 어려움을 덜어준다. 호흡을 가라앉히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면 오른쪽 비탈에는 편백나무들이 하늘을 뚫을 기세로 솟아올라 내도 숲의 위용을 자랑한다.나무가 울창한 숲 1ha가 1년 동안 생산하는 산소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 했으니 삶이란 그토록 소중한 것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원시림의 섬, 내도거제의 섬, 외도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외도 바로 옆 섬 내도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안이 있으니 바깥이 있듯이 내도가 있으니 외도가 있다. 외도가 사람이 가꾼 섬이라면 내도는 자연이 기른 섬이다. 내도는 이 나라 섬 중 드물게 원시림이 살아 있는 곳이다.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 마을에서 바깥쪽에 있는 섬이 외도고 안쪽에 있는 섬이 내도다. 그래서 내도는 안섬, 외도는 밖섬이다. 내도는 본래 내조라도
추자대교를 지나 하추자에서 상추자로 건넌다. 대교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추자대교는 하추자도 묵리와 상추자도 영흥리 사이 바다 길을 이어주는 212m의 작고 아담한 다리다. 1966년 착공되어 1972년에 완공된 다리가 있었으나 10년도 지나지 않아 교각과 슬래브 곳곳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1988년 무렵부터 붕괴 위험에 빠졌다. 부실 공사 탓이었다. 다리는 결국 1993년 4월 새로운 다리 공사를 위해 모래를 싣고 가던 트럭의 하중의 견디지 못하고 아주 붕괴됐다. 그 사고로 두 사람이 죽었다. 토목 공화국의 부실 공사는 외딴 섬이
물 문제는 인류만의 일이 아니다. 지구 행성에 기대 사는 생명체들의 생존의 문제다. 우리가 사는 지구의 4분의 3이 물로 덮여 있지만 그 물의 97%는 바다에 있다. 담수는 지구상 물의 3%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2%는 빙산이나 빙하의 상태로 있다. 결국 우리는 지구 전체 물의 1%만을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그 1%의 물을 사람과 수많은 생물 종들이 고루 나눠야 한다. 세계 보건 기구(WHO)에 따르면 지구에서 물 문제로 죽어가는 사람만 한 해에 340만 명이 넘는다.다행히도 이 나라에서는 마실 물이 없어 죽는 사람은 없다.
"바다는 이 행성의 피다.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든지 간에 바다는 우리 모두의 기에 영향을 끼친다. 바닷물은 이 해안에서 저 해안으로 물리적 정보뿐만 아니라 천상의 정보까지 운반하기 때문이다."(찰리 라이리 '물의 치유력')어떤 문화권의 사람들은 바다가 사람의 생사에 직접 관여 한다고 믿는다. 조수(潮水)가 사람의 혼을 옮기고 썰물이 사람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한 통계는 이를 뒷받침 한다. "만조 때 태어나는 아이가 많고 간조 때 숨을 거두는 사람이 많다." 달의 인력이 바닷물을 끌어당기면 사람
쇠락해 가는 섬의 나날들 어청도 항로 길목의 섬. 군산항에서 북서쪽으로 23㎞ 떨어진 연도는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에 속하는 섬이지만 군산보다는 충남의 장항, 서천이 더 가깝다. 연도는 동경 126°27′, 북위 36°01′에 위치해 있으며, 면적 0.73㎢, 해안선길이 4.5㎞의 작은 섬이다. 고군산군도에 속한 섬이다. 맑은 날에는 중국 산둥반도에서 하늘로 솟아오르는 연기를 볼 수 있다 해서 연(煙)자를 써서 연도라 부르게 됐다는 지명 유래가 있다. 또 섬의 형세가 호수 속에서 피어오르는 연꽃과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호로 지정된 청산도 구들장 논을 우리군이 ‘세계중요농업유산’ 시스템에 등록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보에 나섰다.지난 29일 청산면사무소에서 세계농업유산(FAO GIAHS) 준비위원회 자문회의를 개최한 것도 이 때문이다.이날 이준원 농림수산식품부 농어촌정책국장, FAO GIAHS 등재 준비위원회 윤원근 위원장과 자문위원, 군 관계자, 청산도 구들장논 주민협의체 이용남 위원장 등 50여명이 참석했다.이준원 농림수산식품부 농어촌정책국장은 “역사적·생태적 가치성, 지역사회 발전과 연계된 효과성 등 청산도 구들장 논이 수세기
치동묘, 어청도의 신당 어청도는 왜구를 비롯한 해적들의 노략질 대상이기도 했지만 더 오랜 옛날에는 섬 자체가 해적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치동묘(淄東廟). 어청도에도 이웃 섬 외연도처럼 치동묘라는 전횡의 사당이 있다. 전횡은 이 섬에서 해적질로 연명했으나 사후에는 신이 되었다.전횡은 진시황 사후 제나라를 세워 왕이 됐으나 한고조 유방에게 패망한 뒤 500여명의 부하들과 함께 황해의 섬으로 도망 쳤다고 전한다. 외연도의 전설은 전횡이 숨어든 섬을 외연도라 하고 어청도에서는 그 섬이 어청도라 한다. 중국 청도 근해에도 전횡도가 있다.이처
기술의 축복, 기술의 재앙 평상에 앉아 바다를 보던 어청도 어촌계장님은 이제 바다가 아주 망했다고 탄식한다."고기 집은 적은데 기계가 발달해서 정확하게 훑어버리니 고기가 씨가 마르지."옛날 어선들은 눈으로 가늠해 가며 그물을 던졌지만 이제는 어군탐지기로 물고기들이 지나는 길목을 정확히 찾아내 그물질을 하니 치어까지 싹쓸이 되고 만다. 어로 기술의 발달이 단기적으로는 이익을 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바다의 파국을 앞당기는 독이된 것이다. 수 만년, 누대에 걸쳐서 나눠 써야할 자원을 단기간에 고갈 시켜버리는 과학기술. 인간이 이룬
어청도에 들다 한때 2000여명에 달하던 어청도에 주민들이 이제는 190여명만 남았다. 군부대가 있어 군인과 군속들이 다수 살지만 이들은 뜨내기다. 어청도는 군산시에 속해 있으나 군산의 섬들보다는 충남 보령의 외연도, 호도, 녹도 등과 가깝다. 하지만 섬은 이들 이웃 섬들과는 교류가 거의 없다. 행정구역이 충남에서 전북으로 바뀌면서 뱃길이 끊긴 탓이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사람살이의 정을 강제로 끊어버린 것은 권력의 야만이다. 과거 독재 정권의 실력자였던 김종필이 선거구 조정을 명분으로 전북 금산을 충남으로 가져간 대가로 어청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