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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産業을 核心 輸出産業으로 育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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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승
등록일
2013-05-08 10:50:14
조회수
3105
첨부파일
 수산업을 핵심산업으로(130513완도신문).hwp (22016 Byte)

韓國水産政策포럼 代表 姜哲勝

강철승

cskang46@naver.com

010-9908-8004

水産業을 核心 輸出産業으로 育成하라

水産業을 核心 輸出産業으로 育成하라
韓國水産政策포럼 代表 姜哲勝
cskang46@naver.com

최근 ‘바다의 개척자’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꽉 막힌 고속도로에선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라고 하며 은퇴 후엔 교육사업에 힘쓸 생각이라고 했다.
원양어선 실습항해사로 출발해 참치 캔 제조회사 사장으로 성공한 뒤 증권업계 진출까지. 김재철(78) 동원그룹 회장의 기업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그는 지금 그룹 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를 비롯해 동원산업·동원F&B·동원시스템즈 등 16개 계열사를 둔 중견그룹의 수장이다. 1969년 설립한 동원의 지난해 매출은 4조원을 넘으며, 2003년 계열 분리된 한국투자금융지주의 3조2000억원을 포함하면 약 7조4000억 원에 이른다.
그 시작은 참치 원양어업이었다. 김 회장이 44년 전 자본금 1000만원으로 세운 동원산업은 지난해 7798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의 창업기업가 멘토 스쿨 강연을 마친 그의 반평생 바다와 함께 살며 체득한 그만의 경영철학을 살펴보자.원양어선 타며 ‘캡틴 킴’으로 신뢰 쌓아 김재철 회장은 전남 강진군에서 9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곧잘 했다. 서울대 농대 장학생으로 입학할 예정이던 그는 담임선생님의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 말씀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해요. ‘바다는 무한한 자원의 보고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잘살려면 바다를 개척해야 한다. 나처럼 서울대 나와 봐야 너희와 입씨름밖에 더 하느냐’고 하셨죠.” 그 길로 바다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을 알아본 뒤 부산수산대(현 부경대) 어로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1957년 제동산업이 한국 최초로 참치잡이 원양어선 ‘지남호’를 띄우기로 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아, 이거다! 싶었어요. 마침 그 회사 사람이 부산에 왔다길래 양담배 사 들고 찾아갔는데, 국가적 이벤트에 어디 풋내기 대학생이 명함을 내미느냐며 무시당했어요. 지도교수도 같이 사정해도 꿈쩍 안 했죠. 나중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무보수에 죽어도 탓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나서야 겨우 승선 허가가 떨어졌다. “ 대학을 졸업하고 1년2개월을 항해사로 지낸 그는 최연소 선장에 발탁됐다. 1인당 국민소득이 70달러일 때 월급이 100달러였다. 부산시 남포동 술집이 뱃사람들로 대성황을 이뤘다. 최고 어획고를 올리자 ‘캡틴 킴’이면 믿을 만하다고 소문도 났다. 그는 30세에 최대규모의 원양회사인 고려원양(주)에 수산부장으로 스카우트되어 세 척의 배를 이끌고 인도양으로 향했고, 1년 뒤 돌아와 이사가 됐다.
필자가 그 당시 수산청 어업진흥관실 원양어업과에 근무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시절인 1966년 수술산업진흥 확대회의라는 국가적인 수출드라브 정책을 조기 실현하기 위해 상공부에서 박대통령 주관으로 매월 첫 주 추출진흥확대회의를 하였는데 항상 수출 1위 수산물, 2위 서울교통(주)의 가발, 3위가 동명목재(주)의 목재(합판)으로 발표 순위도 항상 수산청장이 맨 먼저 수출실적과 전망을 보고했다.
박정희대통령의 수출산업 우선지원 정책에 따라 농림부 수산국을 수산청으로 독립하여 1966년 3월 5일 3국 15개과로 개청하여 수산업을 수출산업으로 1980년 대 초까지 한국수출산업의 역군으로서 현재 1조억 불 교역의 역군으로서 효자 노릇을 해 왔다.
그러나 김영삼정부들어 1967년 수산청과 해운항만청을 통합하여 해양수산부를 신설한 후 12년 동안 13명의 수산 무뢰한인 13명의 장관이 바뀌면서 수산 홀대 정책으로 이어져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 작은 정부 정책에 의해 해양수산부를 해체하고 수산부문을 농림수산식품부의 수산정책실로 통합한 후에도 오히려 수산진흥은커녕 1국 9개과로 기구와 조직을 더욱 축소하는 정책으로 일관하여, 수출 1위였던 수산업을 수출 23억불 수입 40억불250만 톤의 값싼 중국산 등 수산물을 수입함으로써 국내 수산업은 황폐화의 직전에 이르렀고, 한 ․ 미 FTA 반대 어민들의 반발이 극대화 되어 해양수산부신설이 거론되었다.
지난해 19대 대통령후보들이 모두 해양수산부 부활을 선거공약으로 세운 후 박근혜 대동령후보가 당선되어 우여곡절 끝에 해양수산부가 신설되었으나 초대 신임장관 후보의 청문회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과정을 거쳐 17개 부처 중 제일 늦게 해양수산부장관으로 윤진숙박사가 4월 17일 임명되어 그 이튿날 해수부의 현판을 세종시 정부청사에 달았다.
김회장은 원양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1969년 일본 도쇼쿠사로부터 3년 뒤 고기를 잡아 배 값을 갚는 용선 조건으로 배를 빌려 동원산업을 설립했다. 그는 창업 3~4년 만에 정부의 수출산업 외화대출 지원을 받아 원양어선을 6척으로 늘리는 등 앞만 보고 달렸다. 두 차례 오일쇼크로 수산회사들이 잇따라 무너질 때도 그는 오히려 규모를 키우며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불황을 넘기 위해 새 배를 건조했다.
필자가 원양어업과에서 원양트롤어업담당 업무를 담당할 때 동원산업(주) 김회장은 금융기관의 지불보증 없이 미쓰비시상사와 6년 분할 용선계약으로 4300t급 초대형 원양트롤 신조선인 동산호를 바다에 띄워 사업타성여부를 결정하는 사업타당성 기술검토를 하게되었다.
당시 한국에는 이런 초대형 원양트롤어선의 출어, 운영 실적이 없어 일본과 유럽의 빈약한 초대형 원양트롤어업의 사업성과 자료들을 수집하여 미래의 불확실한 위험과 수익을 검토하는 투자수익율기법(IRR)을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한국은행에서 배워와 사업타당성 검토결과 동원산업이 제출한 사업계획이 수익성이 있는 사업으로 타당한 것으로 회신하여 관련기관의 허가을받아 동원산업(주)의 도약의 발판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것은 캡틴 킴으로 20년 가까이 쌓은 신뢰가 바탕이 됐다. 2차 오일쇼크 때는 직접 배에 몸을 실었다.“은퇴 후엔 교육사업에 힘쓸 것” 바다에선 캡틴 킴으로 통했지만 육상 네트워크는 부족했다. 단점을 메우려고 1980년대 초 고려대·서울대 경영대학원 과정에 다녔다. 미국 유학이란 새로운 도전도 감행했다. 하버드대 MBA 최고경영자 과정에 등록한 그는 또 한 번 ‘아, 이거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참치 캔 생산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가 되면 참치 캔을 사먹는다는 이론이 있다는 거예요. 그때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200~1300달러였죠.” MBA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1982년 동원참치 생산을 시작했다. 출시 가격은 당시 돈으로 1000원. 짜장면 한 그릇보다 훨씬 비쌌다. 하지만 남대문시장에서는 미국 유학생들이 3800원을 주고 사먹던 제품이었다. 동원참치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건 88 서울 올림픽부터다. “그땐 참치 캔이 막 공장에서 나와 따뜻한 채 팔려나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김 회장은 미국에서 또 하나 새로운 발견을 했다.
“1980년대 한국에선 증권회사라고 하면 산업이 아니라 장사치나 하는 걸로 여겼어요. 그런데 미국에선 어딜 가나 가장 우수한 사람들이 증권회사로 가더군요.” 마침 정부가 한신증권 입찰을 했다. 동원은 입찰가 71억2000만원에 한신증권(주)를 낙찰 받으며 증권업에 진출했다. “당시 원양어업 하던 회사가 증권회사를 낙찰 받았다고 한참 떠들썩했죠.”
동원산업은 대형 원양트롤어업의 획기적인 수익성 확대로 그 기반으로 한신증권(주)를 낙찰 받았지만 금융에 대해선 아는 게 없이 막막하기만 했다. 무엇보다 인재를 모으기가 어려웠다. 그는 인센티브제 도입과 직원교육 강화로 승부수를 던졌다. 1970년대 30곳을 웃돌던 원양업계는 현재 동원산업(주)를 비롯한 사조산업(주), 한성기업(주)외 몇몇 회사만 그 맥을 잇고 있다.
김회장은 마도로스 출신답게 바다에서 얻은 경영 지혜를 설파했다. “항상 같은 방향으로 돛을 올리는 사공은 결코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갈 수 없습니다. 바람에 따라 그때그때 돛의 방향을 바꿔야 순풍을 따라갈 수 있죠. 본업을 버리는 자는 망하고 본업만 하는 자도 망한다는 일본 격언도 있잖아요. 또 평균 풍속보다 순간 풍속은 훨씬 빠릅니다. 1t을 견뎌야 한다면 5t은 견딜 수 있게 배를 만들어야 합니다. 회사 역시 미리 위기를 준비해야지, 위기가 왔을 때는 이미 늦습니다.”

한국수산업의 장기 발전 방향
한국의 희망 국민 행복시대의 수장으로 2013년 전 세계에서 그리고 동북아에서 최초로 박정희 아버지 대통령에 이어 영애(令愛)인 박근혜 독신 여성 정치인을 대통령(船長)으로 선택한 한국 국민은 최선진국의 위대한 저력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있으며, 지난해 6월 23일에 20-50 클럽에 7번째로 진입하여 명실상부한 세계 7위권의 선진국임을 입증했다.
박대통령을 거친 파도와 험한 기상과 위기 즉발로 대처의 상징되는 “해양수산부”정책결정의 수장(首長)인 船長(해수부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유일한 사례이다. 갖은 고난 끝에 5년 만에 해양수산부가 신설되어 최초 여성선장(관)으로 윤진숙박사가 앞서 청문회에서 당했던 것 보다 더 험난한 예측할 수 없는 정책들이 불시에 산더미처럼 풍파로 닥아 오는 것을 죽을 각오로 선장이 선원과 승객(국민)과 선체(조직)을 살릴 수 있다면 자기 혼자 순장할 각오를 가지고 지난 1일 첫 방문하는 곳을 새벽 노량진 수산시장을, 그리고 목포 등 호남지역의 어촌과 어민들을 만나 수산현안을 열정적으로 파아하여 챙기고 있고 이번 추경예산도 970억 원을 반영하여 수산부문에 400억원을 투입하여 양식업을 적극 지원할 예정이고, 지난 8일 수산물수출 관련업계와 회의를 열고 지난해부터 시작된 엔저현상에 따른 수출부진 대책방안을 논의했다.
최근 박대통령이 34년 만에 박정희대통령이 온 정성을 들여 수출 한국 꿈을 실현하기위해 주관해온 “수술진흥확대회의”를 박근혜대통령이 지난 5월 1일 “ 무역투지진흥회의”를 주관하는 것이 한국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국부창출과 일자리 창출의 근본임을 재확인 하는 정책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주재한 무역투자진흥회의의 연원은 1960년대에 대한민국의 ‘수출 사령탑’ 역할을 했던 ‘수출진흥확대회의’에서 찾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5년부터 1979년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다섯 차례만 빼고 매달 이 회의를 주재했다. 딸 박근혜 대통령이 34년 만에 아버지가 애착을 갖던 회의를 이어받아 직접 ‘무역 챙기기’에 나선 셈이다. 옛 수출진흥확대회의는 상공부, 경제기획원, 재무부, 학계, 민간 기업이 참여한 가운데 외환, 조세, 금융 등 수출과 관련한 전 분야의 정책을 논의했다. 박 전 대통령이 수출입국(輸出立國)을 내걸고 이 회의에 힘을 실어 준 덕에 1965년 1억 달러에 그쳤던 수출액은 1977년 100억 달러를 돌파했고 2011, 2012 1조달러 국제교역 선진국이 되었다. 이번 무역투자진흥회의도 과거의 수출진흥확대회의처럼 매머드급으로 열렸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장관 11명이 총출동했으며 민간 기업인 등 150여 명이 참여한 새 정부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의 회의였다. 현장 중심이라는 점도 같았다. 박 전 대통령은 수출진흥확대회의에서 대기업 총수들에게서 직접수출 동향과 계획을 브리핑받곤 했다. 윤장관은 이러한 박대통령의 수출확대 의지를 재인식하고, 삼면이 바다인 오천년 역사의 한반도 수산업이 WTO의 문호개방 이후 한·미 FTA, 앞으로 눈앞에 닥친 한·중 FTA와 한·일 FT, 한중일 FTA 에도 철저하고, Blue Ocean 수산업을 IT와 융합하여 수산해양 Bio 신 성장 산업으로 첨단화하는데 장기적인 투자가 필수적이다.
지난해 수산동식물을 중국 등에서 싼 맛에 250만 톤이나 수입한 것도 중국의 소득증가에 따른 수산물소비증대로 5년 후에는 자국 소비충족을 위해 1,500만 톤이나 수입할 경우에 대비하여 국내 양식업과 원양업의 획기적인 투자로 현재 해수부의 4조원의 예산을 이 정부 5년 이내에 10조원 이상으로 대폭 확대하여 수산물의 자급자족은 물론, 100억불 수산물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기위한 5년 10년 30년 10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수산해양해운기상 정책전략의 구축이 필요하며, 수산해양해운인력의 원활한 공급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도 수산해양해운기상의 전문 인력양성 교육에 이르는 정책까지 철저히 마련하여 남북통일과 100년 대계인 동북아 수산해양을 주도하는 세계 3위의 수산강국을 구축하는 꿈을 현실화 하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작성일:2013-05-08 10:50:14 211.44.24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