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22년 전 추억 더듬기 - 당시 미술선생님을 찾아서

졸업시즌이 되면 더욱 그리워 완도중 38회 졸업생 본지에 22년 전 교사 찾아 달라 의뢰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07.03.02 03:23
  • 수정 2015.11.07 14:39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85년 완도중학교 제38회 졸업식장, 교정의 추억들, 스승과 제자들이 기념촬영을 마지막으로 석별의 정을 나누던 감동을 22년이 지난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는 제자들이 있다

 

당시 3학년 6반이었던 배지현과 강효권 두 학생이 어느덧 30대 후반의 사회인이 되어 담임이었던 김선희 선생님을 애타게 보고 싶다며 본지에 의뢰해 기자가 직접 찾아 나섰다.

 

당시 김선희교사는 결혼과 함께 완도를 떠났다. 전국의 지인을 상대로 역추적해 확인한 결과 미국유학 후 광주비엔날레, 광주시립미술관 등에서 일하다 1996년 일본으로 건너가 2001년 도쿄 모리 미술관에서 활동했고, 현재 중국 상하이에 있는 젠다이(zendai)그룹에서 아트디렉터(art director)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아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본지가 확인을 거쳐 인터뷰에 나섰다.

 

대학 2학년인 아들이 현재 미국유학중이라고 밝힌 김 교사는 완도중 미술선생님 시절 소박한 교정과 가난하지만 착한 학생들, 훈훈한 인심, 늘 다니던 길과 시장터, 부둣가, 정도리 갯돌밭 등을 한번도 잊은 적 없다고 말했다.

 

당시 별명이 ‘불여우’였던 김 교사는 순박한 학생들에게 교사 경험도 모자랐던 터라 좋은 선생이 못되었고, 욕심도 많아서 학생들을 욕심대로 가르치다보니 그런 별명을 얻은 것 같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정말 더 열심히 가르쳐주고 싶다고 말했다.

 

당시 동료 교사였던 수학을 가르치던 홍원래선생이 몹시 그립다는 김 교사는 미국에서 돌아온 후 1994년에 드라이브 차 완도에 간 것이 마지막이 됐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젊은 청춘을 바쳤던 완도를 결코 잊을수 없고 꼭 다시 찾겠다고 약속했다.

 

그때 철부지였던 학생들이 늘 그립고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특히 지금까지 나를 잊지 않고 찾아 준 배지현씨와 강효권씨 두 제자 에게는 현재의 삶을 사랑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을 잘 가꾸는 사람이 되어주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은퇴 후에는 시골에서 조용한 생활을 하고 싶다는 김선희교사는 상하이에서 중국의 젊은이들과 일하는 것이 즐겁고 때론 많이 배우기도 한다며, 제자들 각자가 자신의 일과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행복은 부나 명예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고 만족하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덧붙였다.

 

김 교사는 나이 50을 바라다보는 나이가 됐지만 자신이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일본, 중국인이 되기도 한다. 세상에 뭔가 좀 더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김 교사는 완도의 학생들은 장보고의 후예답게 넓은 세계관을 가지고 항상 자신과 넓은 세상을 알기 위해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시장개방과 인구 노령화로 악화된 완도경제를 걱정하는 김 교사는 일본에서 가장 부러웠던 것이 시골사람들이 잘 산다는 것이었다. 완도는 아름답고 자원도 풍부하니 그것을 잘 이용하면 잘사는 완도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완도인의 좋은 인심과 자연환경은 아직도 여전히 완도만의 자랑이니 만큼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자원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말기를 바랬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