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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유언에 16년 째 장학 사업 펼쳐 온 ‘김현심할머니’

자녀들이 보내 온 용돈 모아 신지중 졸업생에게 장학금 전달 나는 죽어도 장학회는 영원히...자식들 어머니 뜻 잇겠다.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07.02.13 02:45
  • 수정 2015.11.0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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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로 16년째 장학사업을 펼쳐오고 있는 김현심할머니(91)가 13일, 아픈 몸을 이끌고 신지중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완도신문

 장학사업을 유언으로 남긴 남편의 뜻을 받들어 16년 동안 생활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꾸준히 지급해온 할머니가 있어 화제다.

 신지면 대곡리 김현심(91세)할머니.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16년 째 장학사업을 계속 이어 오고 있어 주위의 귀감이 되고 있다. 

 

남편 유언에 따라 16년 전 청원장학회를 설립한 김 할머니는 자신이 번 돈과 자녀들의 보내 온 용돈을 모아 해마다 신지중학교 졸업생 가운데 생활이 어려운 학생 2명을 선정, 장학금을 전달해 왔다.

 

13일, 장학금 전달식이 있는 날이다. 고령의 나이로 건강을 걱정하는 가족들은 김 할머니에게 장학금만 전달하고 직접 참석하는 것은 만류했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아픈 몸을 이끌고 전달식에 참석할 정도로 장학사업에 많은 애정을 쏟고 있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크고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으시는 김현심 할머니◎완도신문



         ▲김 할머니는 남편과 영원히 함께 하고픈 마음에 집안 정원에 묘를 만들었다.◎완도신문
 

김 할머니가 어려운 가운데 장학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작고하신 남편 故정종태 씨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힘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것.

 

신지면 신상리가 고향인 김 할머니는 19세에 2살 연하인 故정종태 할아버지에게 시집왔다.“우리 남편 연식정구, 유도, 붓글씨 등 못한 것이 없었을 정도야.” 생전에 남편이 한량기질도 많았지만 같이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서로 언성을 높인 적 없을 정도로 금슬 좋은 부부로 정평이 났다.

 

남편생각을 하면 지금도 새색시 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김 할머니, 남편의 묘를 집안정원에 만들어 항상 같이 하겠다는 뼈속 사무치게 절절한 남편사랑, 죽은 남편이 평소 즐겨 마시던 차를 묘 앞에 놓고 심심찮은 대화로 말벗이 되곤 한다는 남편사랑은 70년이 넘도록 식지 않고 있어 결혼을 쉽게 생각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교훈이 되고있다. 

 

남편이 살았을 때 돈 없어 못 배운 지역후배들을 가르쳐야 한다며 항상 교육을 강조했다. 한(恨)이 되었는지 죽으면서까지 장학사업을 유언으로 남겼다. 할머니는 남편의 평생 간직한 한을 풀어주기로 작정하고 자녀들이 보내온 용돈을 아끼고 절약해 신지중학교에 매년 장학금을 16년 동안 전달해 오고 있다.

 

김 할머니는 3남 5녀를 모두 4년제 대학에 졸업시켰을 만큼 교육열 또한 강했다. 특히 큰딸은 서울대 학생회장 출신으로 현직 외교관을 지내고 있다. “자식들에게 논밭을 물려주는 것보다 교육을 시키는 것이 훨씬 크다”고 생각한 김할머니는 딸 5자매들을 모두 대학을 보냈다.

 

그 때만 해도 시골 정서로는 딸을 대학에 보낸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주변과 친척들의 차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딸들도 아들들 처럼 똑같이 교육을 시켰다. 지금은 모두들 부러워한다고 했다.

 

자녀들 역시 그런 어머니 뜻을 헤아려 졸음이 오면 찬물로 세수를 하고 오징어를 씹으면서 잠을 쫓아가며 공부를 했다. 지금은 나름대로 모두 기반을 닦고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김 할머니는 “나는 죽어도 청원장학회 이름은 영원히 남는다.”하시며, 자식들이 장학사업을 계속 이어가기를 원하고 있다. 물론 자식들도 어머니 뜻을 받들어 청원장학회를 정식 장학재단으로 설립할 뜻이 있음을 밝혔다.

 

김 할머니는 장학금을 받았던 학생들 중 고마움을 담은 편지를 종종 받는다. 또, 결혼해서 자식과 함께 인사 올 때, 지나가던 학생들이 “저기~ 장학할머니 지나간다. ”소리를  들을 때는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크고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고 산다고 했다.

 

“요즘은 부쩍 남편 살아생전 소중하고 행복했던 시간들이 많이 생각나. 남편이 아니면 내가 어떻게 이런 보람 있는 일을 생각이나 했겠어.....”



     ▲할아버지 살아생전 5자매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왼쪽에서 두번째 김할머니) ◎ 완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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