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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찔레꽃이 흘러 간절한 붉은가슴이 될 때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2.12.0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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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피는 5월은 하얀 찔레꽃 향기였지. 바람은 때를 맞춰 하얀 삐비꽃 흔들어 댔지. 온갖 부딪히는 일이 새로운 시간이야. 그것이 좋은 결과이건 아니건 결국 시간이 흘러 봐야 알 수 있어. 


첫사랑이 소중하게 기억되는 건 가장 설레는 마음이야. 순수한 자연 앞에 숨기고 싶은 마음이 들키고 싶어. 너무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 않은 발걸음 속에 그리움이 있다는 걸 참 다행이야. 오월의 향기가 너무 진해 이렇게 빨간 열매로 변했다. 


찔레꽃 지고 나면 감꽃이 피듯 시간은 숨김없이 흘러왔다. 어느 것 하나 결과가 없는 것이 없다. 시간은 냉정하게 흘러가지만 순간은 그 사람의 몫이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그 순간이 명확해진다. 


그것은 삶에서 가장 진실한 순간이었겠지. 지금도 순간이 이어져 저 너머 산등성이가 되고 구불구불한 강물이 되어 흘러간다. 가장 단순하게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가장 작은 티끌에서 우리의 순간이 시작된다. 아름다운 순간이여 그대가 나의 역사를 이루고 했다. 찔레꽃 향기의 바다가 순간들이 모여 빨간 열매를 본다. 


꽃과 시간이 만나 생명이 되었으니 지상에서 최고의 영광이다. 찔레꽃은 땅의 성분에 따라 꽃 색이 하얗고 약간 붉다. 이 지상에서 한 덩치로 핀 꽃향기는 찔레꽃이다. 이 꽃향기가 진동하고서야 장미꽃이 피기 시작한다. 바닷가에 해당화도 그렇다.

 

시간은 순서를 지어 꽃을 피게 한다. 그러나 그것을 가장 아름답게 피우게 하는 힘은 순간이다. 12월에 시간이여 어떤 열매가 제일 아름답냐고 물으면 찔레나무 열매라고 답하겠지. 가시가 달린 가지들은 촘촘히 엉켜 놓았다. 장미과 중에 찔레나무가 제일 억새다. 호랑나무와 마찬가지로 침입자를 막기 위함이다. 그러나 따뜻하게 안을 때가 있다. 바로 굴뚝새다. 자연들은 서로 인연들이 모여 산다. 내 발도 알게 모르게 가시가 되어 지금까지 걸어왔는지도 모른다. 찔레나무는 겉으로 가시만 보였지만 속에는 가시가 없다. 


그렇지 않고선 어떻게 연한 찔레순과 향기가 나오겠는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 위에서 고단하게 살아온 찔레나무가 새로운 순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겨울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은 쓸쓸함이 더해진다. 죽은 나무 꺾어 장작불 연기는 한없이 정겹다. 오감이 작동하는 시기가 초겨울이다. 어느 것이 내려가면 또 다른 것이 오른다. 


마음은 참 오묘하다. 어느 길에 다다르면 또 다른 이정표가 생긴다. 시간은 매 시간 정확하지만 순간은 여러 갈래다. 하루가 짧다. 하지만 순간은 영원하리라. 그래서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사랑한다. 산에서 명감나무 열매를 보고 마을로 내려오면 찔레나무 열매가 보인다. 그 속에 굴뚝새 소리가 자잘하게 엮어진다. 어느 집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만 보아도 그 냄새는 이미 마음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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