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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이제, 박종필의 아들이 아닌 박지훈의 아버지라

뉴스後, 대한민국한우경진대회 그랜드챔피언 박지훈 씨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2.12.09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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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막바지였던 2002년 11월초 부산을 방문해 지인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영혼의 벗 문재인 변호사를 이렇게 소개했다.


자신보다 여섯 살이나 아래였고, 고시 또한 5년 후배였던 문재인 변호사, 보통사람들의 눈으로 볼 땐 주군과 가신으로 보였겠지만, 이 말은 사람 노무현이 사람 문재인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존중, 그리고 배려의 의미를 담고 있다. 노 대통령의 큰 그릇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인데, 한편으론 아버지가 티끌만한 질투없이 아들을 자랑하고픈 그 마음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바라는 최상의 것이란, 만세불간의 승어부(勝於父).
만년이 지나도 결코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면, 세상의 아버지는 하나같이 자식이 자신을 뛰어넘어 주는 것을 최고의 미덕이라 여긴다는 것.
제20회 전국 한우경진대회 시상식을 열고 대한민국 최고 한우에게 주어진 그랜드챔피언에 오른 고금면의 박지훈 씨. 


승어부에 비춰보면, 아버지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이제 박지훈은 박종필의 아들이 아닌, 박종필이 박지훈의 아버지'라고.

 

아버지의 이름은 귀에도 익숙한 박종필 전 강진축협 조합장, 지훈 씨의 그랜드챔피언 등극 소식에 완도군의회의 허궁희 의장이 동향인 김양훈 의원과 함께 오찬을 마련했다.


얼굴을 마주하니, 근골격이 장사의 힘을 가진 것처럼 듬직해 보였는데, 웃는 모습은 영락없이 해맑은 청년.


허 의장은 박종필 전 조합장과 큰 왕래는 없었지만, 친구 사이라고 전했고, 지훈 씨의 근골과 근기를 본 후, "호부가 견자를 낳을 리 없다"며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고 했다.
김양훈 의원도 "지훈이가 아버지를 뛰어넘었다"면서 고향 후배의 선양을 가슴 뿌듯해 했다.


악수를 청했더니, 쑥스러운 미소다. 
축하한다고 전해줬다. 
그 축하의 말은 그랜드 챔피언에 오른 축하보다도 남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두고 끝을 가 본 것에 대한 축하다. 더 하려고해도 더 할 게 없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가본 길에 대한 축하. 


우리에게 늘상 남겨진 감정과 문제들은 주어진 일에 대해 끝을 가지 않는 것. 그 끝을 가보기 전에는 그게 무엇이었는 지를, 끝에 가게 됐을 때 그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사명이 무엇인지 밝혀지는 것이라서. 그 말을 알아 듣는데, 이건 정말로 그곳을 가봤다는 말이기도.


지훈 씨는 "2015년부터 관리를 하게됐는데, 이게 돈이 안되는 거예요"
"남들 기준에서 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축산 2세들은 힘이 많이 들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지훈 씨의 친구 중에는 한우 사육을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외제 차에 정말 좋은 옷을 입고 다니면서 젊음을 만끽하더란다.


자신도 젊음을 가지고 있기에 그러곤 싶었지만, 그 보단 키우던 암소에 조금 더 신경 쓰기 위해 밤잠을 못자며 고민에 또 고민, 하나의 정보도 놓치지 않으면서 최초의 길을 가는데 있어 힘이 참 많이 들었다고.  


그 일에 빠져 있다보니, 돈되는 소에게는 신경을 쓰지 못해 몇 번이나 포기할까 싶었다고 했다.
그 갈림길은 마치 생사를 오가는 지옥의 강을 건너 듯 힘들고 고통스러웠는데, 그런 지훈 씨를 아내가 여러 번 잡아줬다고. 잠시 지난날의 아내를 회상하는 눈빛, 현명한 아내다 싶다. 신념이 강하고 의지가 남다르더라도 가는 길은 늘상 회의가 들 수 있으니까. 


무엇이 끝을 가게 하는 힘인지 그것, 그것은 역시나 사랑이다.  사랑 밖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고 사랑 안에는 알 수 없는 것들뿐이지만, 진정은 사랑을 일으켜 그 길의 끝을 가게 하니까. 부창부수, 아름다운 부부라는 게 전해지는데,  7년의 시간이 흐른 뒤 대회장에서 그 친구를 만나게 됐다고. 친구의 표정은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진 지훈 씨를 바라보았다는데, 굳이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감정의 교차다.


수상 소식에 아버지는 뭐라고 했냐고 물었더니, 지훈 씨는 "아버지요?" 박종필 아버지가 그랬단다. 아주 무뚝뚝한 목소리로 "니가 머한디야!" 


그러자 옆에서 말을 듣고 있던 김양훈 의원은 크게 소리내 웃으며 "지훈이의 수상 후, 박종필 전 조합장을 만났는데 정말, 그렇게 큰 달덩이는 처음 본 것 같았다"고. 
"캄캄한 밤이 마치 환한 대낮처럼 밝게 빛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식사 후, 의장실에서 차 한 잔을 나누며 허궁희 의장에게 무슨 선물이 없냐고 물었더니, 선거법 위반이란다. 그러며 허 의장이 지훈 씨에게 꿈을 묻자, 지훈 씨는 현실불가능한 일이다고 했다. 


그래도 말하랬더니, 수자원보호구역인데 축사 허가권 하나를 주면 좋겠다고 했다. 법규상 작년까지 건폐율 40프로였는데 올해부터는 아예 허가를 줄 수 없다고. 허 의장은 곧바로 군청 관계자를 불러, 상황을 알아 본 후 방법을 모색해보자고 했다.
이어 김양훈 의원이 무엇을 하려고 그러느냐고 묻자, 지훈 씨는 이제 그랜드챔피언에 올랐으니, 자신이 꿈꾸고 있는 또 다른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훈 씨의 말인즉, 가축분뇨로 인해 온실가스가 심화돼 앞으로는 축산분뇨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것인데, 논문 발표에서 완도의 해초와 해조류에는 40% 이상 온실가스 감축을 할 수 있다는 논문 발표가 있었다고.


완도의 해조류에 각종 영양분을 미생물과 발효시켜 이를 사료로 만들어 전국에 유통시킨다면 기후변화를 선도하는 완도의 가치는 세계적일 것이다고 했다.  
그런 시험장으로 활용해 보고 싶다고.


누군가 완도의 가치를 위해 꿈을 꾸고 달려가는 모습이란 정말로 아름답지 않은가!
끝을 가게 될 것이다.
어떻게 갈지는 모르겠다.
결정 된 건, 그가 가겠다고 했다는 것.


끝을 가게 됐을 때의 그 고통을 견디어 내는 건 그동안의 내가, 얼마나 충분히 나의 끝을 가봤느냐라고 볼 때, 
그는 이미 끝을 가본 남자라는 것.  

 

우홍래 면장은 신축한 고금면사무소의 첫 현수막으로 지훈 씨의 수상 현수막을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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