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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언덕에 느린 첼로의 선율로 흐르는 만추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2.11.17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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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고향이다. 고향이란 공감각적 시상을 떠오르게 한다. 만추라는 계절은 비어있는 공간이 아름답다. 마른 잎이 간신히 달고 가는 나뭇가지에 작은 새가 깃털을 세운다. 
가을을 그렇게 보내기 싫은 모양이다. 세상이 많이 변하고 복잡해졌다. 수많은 메세지가 오고 가는 공간에 딱 하나만 보인다. 만추의 풍경이다. 형형색색 만추의 계절 속에 내가 보인다. 


비로소 공간이 툭 터진다. 생각하는 것들이 더욱 깊어진다. 단풍잎이 마른 잎으로 변해간다. 길가에 꽃들도 씨와 간신히 피어있는 꽃들에게 아름다운 경계를 본다. 하루를, 순간순간을 아껴두고 보고 만추의 계절 속에서 천천히 걷는다. 


마음이 건실하기 위해선 약간 쓸쓸함도 필요한지 모른다. 자잘하게 핀 싸리 꽃 보는 듯하더니 만추의 계절이 와버렸다. 수많은 공간이 채워져도 부족한 듯하더니 이젠 꼭 있을 것만 채웠다. 고향은 싸리나무 울타리가 있다. 싸리나무는 사람의 키만큼 자란다. 가느다란 나무는 잘 휘어지면서 부러지지 않는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생활용품으로 만들었다. 


사립문을 만들고 마당에 놓인 싸리비, 삼태기, 지게 위에 얹는 바소쿠리와 부엌에 두는 광주리는 싸리나무 재료로 만들었단다. 싸리 잎 달인 물은 머리의 열을 내리고 편두통이나 후두통 등 다양한 종류의 두통을 낫게 한다고 한다. 느린 세레나데 음악은 만추의 계절에 어울린다. 단순하면서 서정적인 음악 속에서 차 한 잔의 미소를 짓게 한다. 마른 잎 약간 날리고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그 발걸음에 운율을 단다. 다른 단풍나무보다 눈에 뜨이지 않아도 소소한 발걸음에 속에선 보인다. 


싸리 꽃, 싸리나무에 싸래기 눈이 내리면 그 풍경도 아름다울 것 같다. 만추의 풍경은 많은 화음이 필요하지 않다. 내면의 향기만으로 여러 장의 풍경이 보인다. 보는 것만으로 부족할 것 같고 눈으로 듣는다는 말이 맞겠다. 싸리나무 잎 위에 부서지는 오후의 햇빛도 마음으로 스며든다. 이른 봄의 꽃들과 만추의 나뭇잎은 고향의 마음이다. 


고향에 있으면서도 늘 그리움의 대상이다. 느린 오후 햇빛이 낙엽 냄새, 나락냄새로 새어 나온다. 고향은 공감 전이가 일어나게 한다. 고향은 몸신인도 모른다. 싸리나무 냄새가 나고 서걱거리는 바람 소리는 고향의 언덕이다. 첫눈이 사리나무에 내리면 그런 순간을 잊지 앉겠다. 


느린 오후 풍경은 모두가 꽃이야. 느린 첼로 음악이 더하여지면 만추의 느낌이 좋아. 느린 시간과 느린 햇빛이 함께 있는 그 곳으로 가고파서 다시 떠난다. 만추의 계절은 순간이야. 가을 잎 간신히 달아둔 노스텔지어. 고향의 만추는 지 선상의 아리아. 느린 현악기로 가장 낮은 음으로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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