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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추비동의 밤을 수놓은 선율을 타고서

신지면주민자치위원회의 소소한 가을 이야기를 담은 작은음악회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22.11.1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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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추비동(非秋非冬).
가을도 아니고 그렇다고 겨울도 아닌 11월의 지금쯤. 
그 지금쯤의 이 밤은 마치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秋聲賦圖/위 사진)를 펼쳐 놓은 듯하다. 


그림의 오른쪽엔 메마르고 성근 수풀과 함께 산이 그려져 있고, 화면 한가운데는 초가집 한 채에 둥근 항아리 창문 안으로 어렴풋이 구양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구양수는 책을 읽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어느 손님이 찾아왔는가 싶어 동자를 불러 말하길 "누가왔는지 살피고 오너라"  밖을 나갔다가 돌아온 동자의 말 “하늘에는 달과 별만이 맑게 빛나 천하를 비추고 사방은 고요한데 소리는 수풀 사이에서 들린다”고 했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대문장가였던 구양수의 동자다운 답변. 
동자가 대답하고 있는 장면을 그려낸 것이 김홍도의 추성부도인데, 이 그림에서 동자는 수풀의 바람소리 나는 쪽을 가리키고 있고, 마당에는 두 마리 학이 목을 빼고 입을 벌리고 있으며,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떨어진 낙엽들도 드문드문 흩날리고 있다. 


왼쪽에는 둥치 굵은 나무가 두세 그루 서 있고 그 옆쪽에는 초가집 하나가 대숲에 둘러싸여 있으며 위로는 달이 떠 있다. 구양수의 쓸쓸한 노년을 자신의 처지와 견주어 그린 단원의 추성부도는 비추비동의 쓸쓸한 존재감을 한껏 자랑하는데 그림 전체적으로도 맥이 빠찌는 쓸쓸함이 압권으로 11월 지금쯤의 밤 같다.


그런데 이런 밤, 밤하늘에 아름다운 선율이 흐른다면, 그건 또 어떠할까?
인류의 원죄론에 입각해 즐거움을 금기시 했던 중세 스콜라 철학의 대부 아우구스티누스는 미사 시간에 들려오는 노래에 반해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향기로부터 얻는 쾌락보다는 귀로 들리는 소리의 즐거움에 늘 매료 당해왔습니다. 귀의 즐거움은 나를 사로잡아 꼼짝 못하게 하였습니다"
성인도 이런데 하물며 평범한 사람들이야 말할 나위 없겠다. 물론 노래야 어디에서든 들을 수 있겠지만, 실상은 노래보단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분위기다. 노래가 분위기를 살릴 수 있겠지만, 분위기가 노래를 더욱 빛나게 할 수도 있겠다. 


이른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갔다. 
낮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다시 보이는 시간. 
그동안 잘 살피지 않았던 밖에는 동네 어귀의 나무들이 옷꺼풀이 하나둘 벗으면서 조금은 추운듯 서 있다.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밤이라 애처로운 모십인데, 그 애처로움 때문에 아름다운 밤. 


그때 가로등 불빛이 하나 둘 들어오자, 비추비동의 밤은 은은하면서도 부드럽게 어둠을 비춰주고 있어 커피로 치면 아메리카노에 바닐라 우유를 가미한 바닐라라테 같은 느낌. 

 

 

신지면주민자치위원회가 마련한 깊어가는 가을밤에소소한 가을 이야기를 담은 작은음악회는 그러한 밤에 열렸다. 지난 16(수) 18:00부터 신지면 문화센터 광장에서 열린 버스킹과 밴드, 체험(아이들).

 

재기 발랄한 통기타의 선율, 보컬의 생동하는 음율,  다양한 장르의 곡을 넘나드는 연주자들의 발랄한 표정과 몸짓, 그 풋풋함이란 봄부터 여름까지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올리며 주렁주렁 열매를 매달 때까지 한 눈 팔새 없이, 게으름 필 새도 없이, 쉼없이 달려와 지친 꽃과 나무, 바람과 별빛 달빛, 그 외 만물을 쓰담쓰담. 


그렇게 비추비동(非秋非冬)의 밤의 살결과 어울리는 선율로, 눈을 감으면 세상의 모든 소리가 음악 아닌 게 없을 정도. 
마법같이 신비로운 이 밤, 무엇을 그리 심오하게 듣고 있나요? 
아, 지금 듣고 있는 것이요? 당신인데요!

 

가을을 꽉 채운 리듬이 천사의 표정으로
가장 내밀하고 꾸밈없는 밤물결을 이룰 때,
밤물결의 실을 풀어 밤배 하나를 짭니다

 

밤의 혈관의 피들이 춤추고
밤의 촉각의 모든 지층에서 
대지진이 일어나
밤의 심장이 활화산처럼 폭팔하는 
감각의 한 문장을 지어
그 문장의 살결로 당신의 손목을 잡아요!

 

밤배를 타고 밤하늘을 건너 보자며,

축복이 내린 시간, 마음이 깃든 공간에서
사랑으로 멈춘 존재로
벼락같은 사태에 모든 흐름이 순간 끊기고 
만기가 사라진 진리의 순간을....

당신을 두 눈에 담아 둬요...
그럼, 닻을 올리고 이 밤을 건널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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