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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종이 내려와 천사의 나팔소리처럼

완도의 야생화/딱지꽃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1.05.15 09:35
  • 수정 2021.05.15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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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꽃들 중에 온몸으로 냄새를 품어 대는 친구들이 있다. 그 중에 도리지, 딱지, 더덕은 뿌리부터 잎사귀까지 자기만의 고유한 향기를 지닌다. 특히 산에서 내려오지 못한 친구.
언제나 그들만의 향유를 간직하고 싶어 고요한 산을 지키고 있다. 바로 딱지 꽃이다. 이 친구가 있는 봄 산은 향기가 그윽하다. 산으로 들어가는 길목부터 고유한 냄새를 풍기는 게 봄 산이다. 그런데 딱지가 서식하는 곳을 지나면 유난히 냄새가 짙다. 사람 사는 일도 이와 마찬가지다.
같이 어울려서 사는 사회성도 있어야겠지만 자기만의 개성이 있어야 서로 보고 느끼고 자기만의 정체성을 창조해 나갈 수 있다. 딱지 꽃이 있는 곳에 함께 모여 산다.


그리 멀리 가지 않기. 비바람 몰아쳐도 그들만의 어깨를 기대며 산다. 가을에 꽃이 피더라도 조용하게 겸손하게 줄줄이 땅을 향하여 마음을 비운다. 가을에 씨를 뿌리더라도 그리 멀리 가지 않기. 가슴과 가슴으로 감싸며 겨울을 견딘다. 아름다운 사람은 가장 가까운 데에 있다. 하루가 너무 짧아 그리 멀리 두지 않기. 씨를 뿌리고 꽃이 열매가 되는 일은 가장 가까운 데에서 일어난다.


오늘 내 삶의 범위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한그루 야생화가 나를 보고 반기는 것도 가장 가깝게 있다는 걸. 나이가 들면서 마음의 무늬가 늘 바뀐다. 그 얼굴을 보면서 주름이 늘어가도 마음은 새롭게 태어난다는 걸. 새롭게 태어나는 얼굴도 가장 가까운 데에 있다. 오늘 나의 속사정이 얼마나 변하였는가 하고 가장 가까운 산으로 올라가 본다. 연한 잎을 층층이 올리고 산바람이 살짝 불면 그의 정체가 나타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주 작은 진실을 물어보는 것도 가장 가깝게 있기에 꽃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 한잔 건네면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이런 고마움을 직접 내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잔대 꽃은 어느덧 하늘로 향한다. 그 꽃도 초롱초롱 빛난다.


마치 하늘의 종처럼 천사의 나팔 소리가 나타나 올 같다. 뿌리에 영양을 두는 식물 중에 제일 부드럽다. 혹시 봄 산을 가는 사람들은 이 뿌리가 얼마나 부드러운지 느껴보시라. 꽃이 피기 전에 지금이 그윽한 향기가 절정을 이른다.
사람 사는 일도 꽃이 없어도 향기가 있는 사람. 평상시에도 향기가 있는 사람. 정열적인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왠지 그 사람만의 향기가 있는 사람. 가을 하늘에 딱지 꽃은 참 아름답다. 아주 작은 초롱꽃. 이 꽃을 처음 발견했을 땐 태어난 지 사 십년 세월이 흘렀다. 그렇다. 마음이 있어야 꽃이 보인다. 세상사는 게 두루두루 마음을 둘 수 없지만 오늘 가깝게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리고 고맙다고 마음을 전하자. 딱지 꽃보다 그 연한 딱지 냄새가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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