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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리 해변에서 원교의 숨결을 느끼다

정지승의 완도, 어디까지 가봤니?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04.09 14:04
  • 수정 2023.07.31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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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문화 탐방기획 <薪智島 ①>

 

편집자 주> 본 섹션에서는 완도 섬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섬 문화 탐방 “완도, 어디까지 가봤니?”를 기획연재하고자 한다. 완도 권역별 섬의 역사와 문화, 자연과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관광자원을 발굴하여 “완도, 어디까지 보았나?”라는 질문을 스스럼없이 던지며, 우리가 알고 있는 완도는 과연 어떤 모습인지, 무엇이 진짜 완도인지를, 완도가 품고 있는 모든 것을 독자에게 생생한 소식으로 전하고자 기획됐다.

 

철부선 타고 주도(珠島) 상록수림을 보면서 들뜬 마음에 신지도에 있는 명사십리를 찾았던 기억이 새롭다. 지난 2005년 12월 신지대교가 개통 되면서부터 신지도를 찾는 여행객들은 이제 동고리 끝자락까지 자유롭게 왕래한다.

 답사여행에 관심을 가졌던 때, 주말 낚시객들이 주로 찾는 동고리가 내 눈에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송림 우거진 동고리 해변을 지나다 보면 눈 앞에 드러나는 기암괴석이 일품이다. 바람 부는 날, 그 느낌은 배가 된다. 그곳을 찾을 때마다 그동안 명사십리해변만을 눈여겨 보았던 신지도의 숨은 이야기가 차츰차츰 나의 마음을 후벼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동고리해변에서 나는 원교 이광사(圓嶠, 李匡師 1705~1777)를 만났다. 조선의 글씨 동국진체로 알려진 원교 이광사의 적거지를 수소문하여 찾아다니다 결국은 찾지 못하고 송림 우거진 곳에서 원교의 숨결을 느끼다니, 뜻밖이었다.

도담의 그림자가 드리운 해변에서 원교가 마음으로 대하던 바로 그 ‘조선의 미학’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천재화가 최북의 그림에 있는 '단구승유도'의 한 장면과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유배의 섬, 신지도는
우리의 정신을 눈 뜨게 하는 곳

 

 ‘단구승유도’는 원교 이광사가 지인들과 단양 일대를 유람할 때, ‘조선의 고흐’로 불리는 괴짜 천재화가 최북(崔北, 1712~1760)에게 도담(島潭)에서의 뱃놀이 모습을 그리게 하고, 자신이 그 연유와 참석자들의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그림의 우측 상단에 붓글씨로 ‘도담’이라 쓰고, ‘최식지인’이라 새긴 백문방인(白文方印)을 찍었다.

 그림은 18세기에 유행한 남종화풍을 토대로 하여 수묵으로 그린 뒤 담채 한 것인데, 지난 2015년 ‘단구승유도’가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샀다. 서울시는 단구승유도의 제작연대가 확실하고 원교 이광사 서체의 변화과정을 이해하는 자료가 된다고 판단하여 문화재로서 가치를 높이 평가했던 것.

 그가 신지도 금곡마을에 유배 와서 남긴 족적을 살펴보며 동고리 해변에서 뜻밖에 ‘단구승유도’속의 풍경을 만나다니. “만약 누군가 같은 생각을 했다면 그는 분명 원교를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람일 것”이라며 웃음 짓는다.

표지석 하나 없이 폐허 수준의 건물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는 금곡마을. 우여곡절 끝에 찾아 간 곳에서 원교 이광사의 자취가 허망해 보였다. 하지만, 섬 곳곳에는 원교의 숨결로 넘실거렸다.   <계속>

 

영회(詠懷)--유배지의 감회를 읊다

평생불속지(平生不俗志) 평생 속된 뜻 없이 살았거늘
노대위류인(老大爲流人) 늙어서 유배객이 되었다네.
유몽심래도(有夢尋來道) 꿈속에 내도재(친구의 서실)를 찾기도
미방망북진(迷方望北辰) 길 잃고 북극성을 바라보기도하였네.

 

만형자득의(萬形自得意) 만 가지가 스스로 뜻을 얻는 듯 하고
고객여이신(孤客輿怡神) 외로운 객이 마음을 기쁘게도 하였네.
점애문장세(漸愛文章細) 점점 문장이 지극한 것을 사랑하는데
유수명익진(唯愁命益嗔) 운명 사나워지는 것만 근심할 뿐이네.

 

 

 

 

정지승/다큐사진가


<정지승>님은 다큐사진가이면서 문화기획가로‘전남의 문화유산’을 다중매체에 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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