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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가 나를 부를 때, 빙그레 웃으며 찾아왔지요”
완도신문 | 승인 2021.04.03 09:49

섬 숲마다 동백꽃이 낭자하다. 미련 없이 토해낸 동백의 송두리째 떨어진 붉은 꽃잎을 보니 심장이 멈추는 것 같다. 어느새 봄은 우리 곁에 머물고, 2021년 완도의 갯바람이 오랜 나의 침묵을 깨웠다.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상왕산이 있다. 불목리에서 숙승봉을 시작으로 업진봉, 백운봉, 상왕봉, 심봉까지 주기적으로 완주했던 시절이 내게도 있기 때문이다. 2~30대, 12년 동안 주말마다 전국의 산악지대를 떠돌았으니 이제 완도의 섬은 눈앞에 그리고도 남는다.


 내가 완도를 처음 찾았던 때는 35년 전, 고교시절 주말이었다. 자율학습이 싫어서 동무들과 꾀를 내어 이웃동네에서 원동까지 내려와 정도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선생님 몰래 다녀간 이른 봄 구계등에서 맞이한 시원한 바람과 거친 파도는 객지생활 내내 그리운 기억으로 남았을 정도다. 도시생활에 적응 못하고 시골로 내려온 이후에야 비로소 자연의 소리가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음을 깨달았다.


 산악회 때에 한라산 등정 일정에 맞춰 계절마다 제주도 가는 배를 탔다. 여객터미널에 일찍 도착하면 습관처럼 찾은 곳이 있었다. 화재로 소실되어 장소를 옮겼지만, 그때 옛 수산센터 23번 영심이 아줌마는 우리일행을 무척 반겨주었다. 그는 지금쯤 백발의 노인이 되었을까? 언덕 위 어딘가에 집이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지내는지 몹시도 궁금하다.


 완도를 수시로 다녀간 동안 섬 곳곳에 내게도 나름대로 인연이 생겼다. 손수 배를 부려 금당팔경을 유람시켜 준 약산의 펜션 주인장, 충무공 이순신 이야기를 심도 있게 설명하던 묘당도의 분묘지기, 이야기꽃을 피우며 한 밤을 함께 보냈던 항일의 섬 소안도 주민들, 해삼내장을 젓갈 담아 일본에 수출하는 자부심으로 살아온 보길도 중리마을 장씨 할머니, 양식 초창기 저장이 어려운 전복을 아이스 전복구이로 만들어 걸작이라며 선보이던 노화도 아짐의 환한 웃음도, 그리고 보옥민박집 어머니의 정성으로 차려낸 점심밥상에 홀딱 빠져서 헤어나지 못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동안 완도가 몰라보게 발전한 것은 순박한 모습으로 모두들 제 자리를 지키며 변화하는 세월을 이겨내고 계셨기 때문일 터.


못된(?) 친구 녀석의 꾐에 못이긴 척 넘어 온 중년의 나는 순진무구한 청년의 탈을 쓰고 완도를 다시 찾았다. 언론사 일을 도우면서 앞으로 티격태격 다툴 일이 눈앞에 훤한데, 그래도 웃으며 여기에 왔다.
 이제 1년 동안 완도의 섬 구석구석을 바지런히 유람하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서 듣고 기록하련다. ‘육해공’(섬, 바닷속, 공중에서)을 넘나드는 다양한 탐사방법으로 섬이 내뱉는 순수한 자연의 소리에 두 귀 쫑긋 세우고, 가슴으로 모든 것을 담아내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
섬은 청순한 모습으로 때로는 거친 들짐승의 포효로 그렇게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할 것이다.

 

정지승/다큐사진가, 문화기획가
<정지승>님은 다큐사진가이면서 문화기획가로‘전남의 문화유산’을 다중매체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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