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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녀석들, 손이 크다고 한마디씩 하고선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04.03 09:48
  • 수정 2021.04.0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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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순아! 봄이 이렇게 이쁜 줄 몰랐다. 이 이쁜 날들을 잘 기억해둬야하는데 너무 아쉽다” 했더니 책을 읽고 글을 써보라고 충고한다.
올해는 꼭 내이름으로 된 책을 만들거라는 친구의 당찬 포부는 내게 큰 울림이 되어 돌아왔고, 난 곧장 책읽는 모임을 찾았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저녁시간에 열리는 독서모임 이름하여 “완독” 완도살롱이라는 곳을 기웃거렸다. 살롱의 마담인 J와의 만남!


190센티의 큰키에 궂이 멋내지 않아도 개성이 뚜렷해보이고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범상치않은 예술가의 포스가 느껴지는 약간 거리감도 있어보이는 덩치좋은 청년이었다.
회원층의 주류가 2,30대라니... 말도 안돼.
내가 그 얘들과 어울릴수 있을까?
내 생각이 고루하고 내 말이 재미없어 때론 꼰대라고 놀리지않을까? 별의 별 생각을 하다가 일단은 한번만 참여해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조용히 빠지는 것으로하고 첫 모임에 참석했다.
웬걸? 내 생각은 철저하게 틀렸다.


한 책을 가지고 두세가지 주제로 얘기를 나누는데, 남자와 여자의 관점이 틀렸고, 파고드는 감정의 깊이도 다 달랐다. 서로를 전혀 모르는 상태라 어떠한 선입견도 가질수 없었고, 진심으로 얘기하고 눈빛으로 공감하면서 때론, 감정에 충실하다보니 눈물을 보이기도하고...
하지만, 그 감정, 그 눈물에 토를 다는 이도 없었다. 남자의 심장이 어쩌면 여자보다 더 말랑말랑하지 않을까? 남자의 수다도 여자 못지않구나? 신선했다. 모든 얘기를 다 쏟아내고도 전혀 부끄럽지도 후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 모임에 애정도 부쩍부쩍 커갔다.
 처음엔 기존 멤버들의 단톡에 대꾸 한마디를 못했다. 괜히 젊은이들 얘기에 찬물을 끼얹기라도 하지않을까? 내 말에 아무도 답해주지 않으면 민망하지 않을까? 때로는 요즘 얘들이 많이 하는 줄임말, 초성만 늘어놓는 이상한 조합에 이해도 못해 답답하기고 했다.
그렇게 한달을 아무 대답도 못한채 단톡에서 소외되었다. 살롱에도 독서모임이 없는 날에는 들어가기가 어색해 가지않았다.


함께 카페에서 책을 읽자, 저녁 노을 보러가자, 치맥하자는 둥 수시로 번개팅이 있었는데도 나는 나도 가고싶어라는 말을 쉬이 못했다.  워낙 나이차가 있는지라 선듯 자신이 없었다.
누가 강제라도 손잡고 나가자고하면 못 이긴척 갈수 있었을지도... 암튼 난 그렇게 못났었다. 이렇게 한두달 시간이 지나고 한쪽 발만 딛고 있는 것처럼 뭔가 어색하고 불안했을 때 나는 우리집에서 독서모임을 하자고 제안했고 모처럼 엄마가 차려준 집밥을 야심차게 준비했다.
묵은지 등갈비찜에 돼지 수육, 파릇파릇 야채가 들어간 도토리묵을 맛있게 묻혀서 상을 차렸다. 모두 대박이라며, 사진을 찍어 올리고 맛있게 먹었다. 물론 맥주로 기분좋게 목을 축이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녀석도 이 젊은 형, 누나들에게 부쩍 관심을 보였다.


그동안 엄마와 함께 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 분위기의 새로운 사람들이라 생각한것같다. 함께, 먹고 얘기하는 동안 부쩍 이들과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누나, 언니라는 호칭도 이젠 부담스럽지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볼때면 많이 이상하다고 할테지만... 자연스럽게 우리는 하고싶은 일, 꿈에 대해서 얘기할 기회가 많았다. 본인이 공부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장학재단을 만들고 싶은 J, 최종 꿈이 음악이며 음악하고 싶어 문어를 잡는다는 S, 사진찍는 일을 좋아하고 완도에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D, 모든 선생님의 이상형이 되고싶다는 JH 모두들 자신만의 색깔과 꿈이 확실하다.


그 꿈에 비해 나의 꿈은 항상 평이하다. 얘들 잘 키우고, 언제나 나를 찾는 사람이 있었으면하는 바램 정도. 어쩌면 작고 평이한 듯하나, 어찌보면 대단한 꿈이다. 이들의 꿈에 비하면 나를 위한 지극히 개인적이다 싶기도하지만, 이들은 모두 나를 응원해준다. “잘할거잖아요.” 그 한마디면 됐다. 충분했다. 이렇듯 완독은 내게 새로운 이들과의 만남을 주선해주었고 때론 호된 자극을 주면서 나의 꿈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만난 친구들과는 많게는 스무살이 넘게 차이가 나지만, 생각하는 깊이는 나이와 결코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진실에 사실 적잖이 놀라고 있다.  우리집에서 제일 큰 냄비가 어디있지? 닭볶음용 닭을 6마리를 사왔는데, 아무래도 냄비가 적어 다섯 마리만 냄비에 넣었다. 양이 적을려나. 녀석들! 손이 커도 너무 크다고 한마디씩하고선 여지없이 한냄비를 금방 비워낼것이 분명하다. 냄비가 조금만 더 컸더라도 6마리 다 하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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