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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사(원) 관광자원 활용 현황 Ⅱ(23회)

완도신문-(사)장보고연구회 공동기획-청해진대사 장보고] 추강래 / (사)장보고연구회 사무국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02.26 10:15
  • 수정 2021.02.2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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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들어 또다시 법화사 터의 전체적인 발굴을 시작하여 건물과 건물의 수로를 잇는 수구지를 발견하였다.
수구지가 있다는 것은 1~2차 발굴터와 연결된 다른 건물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또한, 신라 시대 담장은 담장을 쌓고 그 위에 기와를 얹는 것이 특징인데 법화사 터의 담장 터를 따라 기와 조각이 있음은 장보고 시대의 절터임을 찾아가는데 보탬이 되고 있다.
 제주 법화사의 경우 면적이 3~5만 평에 이르는 통일신라 시대 건물터가 발견되었기에 청해진의 주 무대인 이곳 완도의 법화사는 최소한 이보다는 큰 면적에 건축되었으리라 여겨진다.
 이런 증거들로 90년대 발굴하였던 건물터 보다 두 배 이상 큰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여 1~2차 발굴터 위쪽으로 넓게 발굴 중이다.

장보고와 관련이 깊은 제주시 서귀포 하원동에 있는 법화사는 중국 석도진 법화원처럼 이미 복원을 끝내고 관광객을 맞고 있다,
 제주도와 서귀포시가 82년부터 17년간 8차례 발굴토대로 “법화사 종합 정비 복원계획보고서’를 작성하여 복원을 시작하였다.

 1980년도 법화사의 주지 스님으로 소임을 맡으신 시몽 스님께서 복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법화사 복원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면서 불을 붙였다.
하원동의 법화사는 1983년 발굴 시 정면 5칸, 측면 4칸의 큰 건물터가 발견되었으며. 1990년 발굴 시 해무리굽청자, 북송 화폐인 숭년중보 등이 발굴되어 장보고시대 건축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제주도에서 법화사 복원은 종교적 문화적 가치를 넘어 관광적 경제적 가치로서도 무게를 싣고 있으며, 불자들만의 사업이 아니라 정신문화복원사업임을 인식하고 제주도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제주도와 서귀포시가 한마음이 되어 100억의 예산을 확보하고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복원을 완비하였다.

일본에서는 888년 엔닌의 유지를 받들어 연력사 내에 신라 명신(장보고)을 모신 적산 선원을 건축하여 적산 신라 명신을 봉헌하였다.
 2001년에는 완도군과 사단법인 장보고 연구회에서 연력사 경내에 장보고 탑을 건립하였다.
자존심이 강한 일본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의 공적을 기리는 비를 자기 나라에 세우도록 하였다는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다.

 신라 명신이 장보고인 줄을 알고 있으면서도 발표하지 않는 일본 사람들은, 신라 명신을 자기들의 국보로 지정하여 50년 만에 한 번씩 개방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과 일본에서 기념관을 세우고, 비를 세우도록 허락하면서 최고의 인물로 예우하는 장보고 대사를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외국에서조차 존경하는 인물인 장보고 대사를 지역적인 갈등과 종교문제로 치부하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 아직도 복원의 손길은 요원해지고 있음이 아쉬움을 더하게 한다.
 이제 우리 완도도 종교의 차원이 아닌 정신문화 사업임을 인식하고 장보고의 유물 유적 복원을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장보고와 관련 있는 중국과 제주에서는 이미 복원을 완비하고 관광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본원 사찰인 완도는 아직 법화사 위치가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한 삽도 뜨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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