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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삭은 맛

에세이/ 김지민 수필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1.02.05 11:04
  • 수정 2021.02.0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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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이 아파트 앞 동 옥상까지 내려왔다. 이런 날은 배를 채워도 속이 텅 빈 것처럼 입이 궁금하다. 기름에서 갓 튀겨낸 꽈배기가 생각나 중심상가로 나간다. 소리 없이 비가 내렸고, 바람은 겉옷이 살짝 흔들릴 만큼 불었다. 이곳저곳 둘러보다 고소한 냄새 풍기는 봉지를 들고 집으로 방향을 틀었다. 몸도 지쳤을뿐더러 얌전하던 발목도 시큰거리며 앙탈을 부린 탓이다.

사거리에서 버스 정류장을 지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아파트 단지를 끼고 손바닥만 한 공원이 있다. 그곳 귀퉁이에 앉은 노점들, 살아온 시간만큼 골 깊은 주름의 할머니 몇 분이 앉아서 직접 키운 채소를 파는 곳이다. 가느다란 비가 얄궂게 내려서 인지 다른 때보다 할머니들 주름이 더 깊어 보였다. 난 오늘도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 모습이 우리 엄마 같고, 뭔가가 내 몸을 이끌듯 가슴속에서 뭉싯거리게 올라와 주섬주섬 장바구니를 또 채웠다. 딱히 음식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매번 이곳을 지나치지 못하고 물건을 산다. 며칠 전 마트에서 사다 놓은 채소도 냉장고에서 때를 기다리는 중인데 말이다.

벚꽃이 한창일 때 일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난 공원을 지나가야 했고, 마침 그곳에 할머니 한 분이 장사하고 계셨다. 문제는 팔고 있는 게 고추장아찌였다는 거다. 사실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먹어 본 기억이라고는 어린 시절 엄마가 장독대에서 꺼내 빨갛게 무쳐 통깨를 뿌려 밥상에 올려놓은 것뿐이다. 어린 입맛에 그 맛이 좋은 기억일 리는 없다. 그런데 이미 난 노점 앞에서 가던 걸음을 멈췄고, 할머니는 비닐봉지를 펼쳐 들고 있었다. 양은 또 왜 이리 많은지, 걷는 내내 장바구니 속 고추장아찌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기대가 아닌 걱정이었다. 집에 들어오니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 "어쩌자고 이걸 샀어, 음식물 쓰레기만 늘겠네."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내가 계속 걱정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었다. 괜히 버리게 될 것 같은 마음이 한쪽에 있어서다. 볼을 꺼내 삭힌 고추를 담아 놓고 끝을 깨물어 보니 소금 맛이다. 일단 물을 붓고 짠맛이 수그러지길 기다렸다. 그리고 기억을 되살려 갖은양념으로 맛을 내 봤다. 내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곰삭은 맛이 느껴졌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시간이 삭힌 맛을 좋아한다. 특히 생긴 모습과 냄새 때문에 남편이 기겁했던 황석어 젓갈은 내가 밥맛을 잃었을 때 입맛을 되살아나게 하는 걸쭉한 맛의 최고다. 한동안 나는 누룽지를 끓여 삭힌 고추를 베어 물며, 고추를 따서 씻고 삭히는데 들어갔을 할머니의 정성을 떠올리며 입안을 포근한 시간의 맛으로 채웠다.  인스턴트 음식에 길든 요즘이지만 때론 한겨울 자판기 커피를 감싸고 있는 손바닥처럼 가슴을 따듯하게 하는 오래 묵은 된장이나 묵은지에서 나는 맛처럼 은근하게 곰삭은 고향 냄새가 그리워진다. 아마 그곳에서 맡고 살았던 사람 냄새가 그리운 것인지도.... 오래된 친구나 오래 묵은 술처럼 시간을 지나온 것들에선 어떤 정취가 가득 느껴진다. 주름진 이마와 얼굴, 휜 다리의 걸음걸이가 가슴 깊은 곳을 건드려 애잔해지듯 묵힌 향이 전해지는 음식 또한 그렇다.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적당히 곰삭아야 정이란 감정이 느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세월을 두르면 외향이야 거기서 거기겠지만 속맛이 깊은 사람은 자꾸 그리워하게 된다. 삶이라는 과정에서 쓰고 달고 맵고, 갖가지 맛이 온몸에 적당히 밴 은근하고 삭힌 맛이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내가 노점을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할머니가 풍기는 헐거운 사람 냄새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묵직하게 가슴 한 곳을 건드리는 곰삭은 맛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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