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무령군 입대(16회)
완도신문 | 승인 2020.12.30 11:41


뛰어난 무예를 가지고 있던 장보고와 정년은 정작 고국인 신라에서는 출세할 수가 없어 당나라로 건너 같던 것 같다.

 당나라에서는 자신들의 무예가 서주에서 당할 자가 없을 정도로 출중함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당시 당나라는 절도사들이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켜 국가적으로 매우 혼란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 절도사들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초재진용(초나라의 인재를 진나라에서 쓴다는 뜻)’ 정책을 쓰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무예를 이용하여 무령군에 입대한 것이다.

 대표적인 절도사의 반란이 755년에서 763년에 이르기까지 약 9년 동안 당唐나라를 뒤흔든 안녹산의 난과 고구려 유민 이정기의 난이다. 

 이정기는 732년, 고구려 유민들이 대규모로 군집되어 있던 당나라의 영주(요녕성 조양)에서 고구려 유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758년, 안사의 난 당시에 고종 사촌형인 후희일을 평로절도사에 추대하고 자신은 그 부장의 지위에 올라선다. 이정기는 젊은 나이에 무력이 상당하고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었는데 이를 시기한 후희일이 이정기를 제거하려 하자 오히려 후희일이 제거하고 절도사가 된다.

 절도사 취임 후 이정기는 본격적으로 산동 지역에 독자적인 세력의 구축을 개시하였으며 당에서 절도사의 지위와 발해, 신라 무역 독점권을 획득하여 경제적 부를 챙겼다. 이후 이정기는 발해의 법제와 세제를 받아들여 활용하고, 동시에 수도를 운주로 옮겨 당을 위협하려는 듯한 모습도 보이는 등 독립세력으로써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당헌종이 805년 즉위하면서 당 조정과 친당절도사, 신라의 김웅원이 지휘하는 3만 지원군의 연합공격으로 819년 멸망했다. 이때 장보고가 서주의 무령군 소장으로 참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장보고가 입당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당으로 건너간 장보고와 정년은 무령군이 창설할 당시인 805년경 자신들의 뛰어난 무예 실력으로 당당히 강소성 금산현 서주에서 무령군에 입대한 것 같다. 

 장보고는 이정기가 일으킨 반란을 토벌하는데 큰 공을 세워 외국인 신분이지만 무령군절도사 휘하의 무령군 소장직에 오른 것으로 여겨진다. 이때를 학자들은 819년으로 보기도 하며, KBS 역사저널에서는 815년의 일로 추측하였다. 

 군중소장의 직위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신당서’ 병제에 보이는 자장으로 생각되며, 1000명의 군사를 통솔하는 종 5품 河에서 정6품 下의 품계라고 한다.
 다른 학자들은 무령군중 소장은 하서절도사 휘하의 관직으로 2~5천 명 정도의 군사를 거느린 직책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초재진용’ 정책을 쓰고 있는 당나라가 외국인들에게 개방적이었다고는 하지만, 신라인이 당나라 군대에서 무령군중 소장에 올랐음은 번천문집의 기록처럼 그들의 무예가 서주에서 당할 자가 없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한다. 

 당시 신라 사람으로서는 드물게 보는 높은 직위에 올랐던 두 사람은 재당 신라인 사회에서 주목받는 인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훗날 재당 신라인들에게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행보가 무령군을 전역하는 시기와 동족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차이가 난 것 같다.

 장보고는 무령군에 있으면서 동포들의 삶을 보았고, 그들이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지 또 당나라 정부와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잘 파악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장보고는 무령군을 전역하여 귀하게 되고 정년은 유량 걸식하는 신세로 전락하였던 것이 그러한 부분에서 차이가 난 것 같다.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완도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편집규약 및 강령 등
59119) 전남 완도군 완도읍 개포리 1244-1번지  |  대표전화 : 061-555-2580  |  팩스 : 061-555-1888
등록번호 : 전남 다 00049  |  발행인 : 김정호  |  편집인 : 김형진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형진
Copyright © 2021 완도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