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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센 사회 속 ‘사람’

[완도 시론] 박준영 / 법무법인 '새봄'변호사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12.11 11:00
  • 수정 2020.12.1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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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를 가리켜 흔히 젊은 사회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굉장히 나이 많은 사회다.”신영복 선생님이 2006년 <프레시안> 창간 5주년 기념 강연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나이 든 어르신의 생각은, 그 분이 살아온 삶의 결론이고, 그래서 누가 뭐래도 쉽게 바뀌지 않듯이, 파란만장한 역사를 거쳐 온 우리 사회도 그 세월만큼의 무게를 지고 있는 고집 센 사회라는 것이지요.  

선생님의 강연은 14년 전 일입니다. ‘대립과 갈등의 시대, 진정한 소통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진행됐는데, 당시 우리 사회는 ‘전시 작전통제권, 한미FTA, 헌재 소장 문제 등으로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무엇 하나 서로 합의해내거나 상대방의 주장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의 문제를 풀 시원한 방도가 없다며 답답해 하셨습니다.

그런데 14년 전과 지금. 달라진 게 없습니다. 오히려 더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은 심화된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을 건강한 진보의 과정으로 볼 수 있는 것일까. 대립과 갈등을 넘어 소통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선생님은 ‘사람’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좋은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여린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몇몇 친구들에게 좀 미안할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1960년대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굉장히 능력 있고 진보적인 친구들이 참 많았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감옥에 있는 동안 내내 그 친구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했고, 출소한 직후 제일 먼저 물어본 게 그 친구들의 근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 중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다들 그 자리를 떠나 출세해 있었다고 합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예전에 별 능력 없어 보였던 친구들, 사명감이 아니라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참여했던 이들이었습니다.

각각의 진영에서 지지받고 있는 사람들이 ‘소통’을 지향하는 ‘좋은 사람’일까.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십 수년이 지났을 때 상당부분 그 실체가 드러나겠지요. 

그런데 좋은 사람으로 알고 믿고 따른, 이것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발전에 함께 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시민들의 실망, 좌절은 어찌해야 하나요. 

역사 속에서 사회의 붕괴는 대중의 우민화(愚民化)가 그 원인이었습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서도 ‘대립과 갈등을 야기하는 일방의 논리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우민화는 진행되고 있지요.

고집 센 우리 사회 속에서 여론을 주도해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의도를 알아가는 게 ‘바보’소리 듣지 않는 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져본 적이 없는 또는 졌다는 사실을 인정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소통’이 배제된 이기기 위한 싸움에 본인도 모르게 익숙해져 있을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본인을 “역사발전의 도구로 써 달라”고 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많이 져본 ‘소통’의 정치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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