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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장보고를 알아야 하는가?Ⅴ완도신문-(사)장보고연구회 공동기획-청해진대사 장보고] 추강래 / (사)장보고연구회 사무국장
완도신문 | 승인 2020.11.20 11:34
노화 출신 권투 세계팸피언 김봉준 선수.

권투 세계챔피언 김봉준도 21세기 완도를 빛낸 인물이다. 김봉준의 고향은 노화도에 있는 신리 마을이다. 김봉준은 학창시절을 노화에서 보냈고, 프로권투선수의 푸른 꿈을 안고 무작정 상경하여, 7년간의 노력 끝에 마침내 세계정상에 올라선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가난을 벗어나고픈 막역한 동경으로 OPBF(동양·태평양복싱연맹) 전(前) 챔피언 조민(趙旻) 씨가 경영하는 한민체육관을 찾아갔다. 초장기에는 별 특징 없는 무명선수의 시절을 보내야 했는데, 타고난 성실성으로 끊임없는 훈련을 거쳐 세계챔피언에 오른 의지의 오뚝이 복서이다. 

김봉준은 1983년 프로에 데뷔했으며, 1986년 일본의 오하시 히데유키를 원정경기에서 꺾으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89년 4월 16일, 김봉준 선수는 콜롬비아 출신 아굿틴 가르시아 선수와 세계 타이틀전에서 7회 TKO승 거두고 WBA 미니멈급 세계챔피언이 되었다. 완도 사람이 권투로 세계를 제패한 역사적인 날이었다. 

권투평론가들은 김봉준은 타고난 복서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완전한 노력형 선수였다. 특별히 기술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한방에 상대를 잠재울만한 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겐 끈질긴 집념이 있었다. 험한 파도와 싸워 이겨나가는 섬사람들의 강한 생명력이 그의 스포츠 근성의 밑바탕이 되었다.

김봉준은 권투선수로서 37전 24승 10패 3무의 전적을 남겼다. 세계챔피언을 지낸 사람 치고 패가 많은 것은 선수 생활 초창기 성적 때문이다. 그만큼 그가 끊임없이 도전하여 세계를 제패한 의지의 스포츠 영웅이었을 보여준다.

차용우 선단장은 동원산업 참치잡이 선단장(船團長)으로 세계 참치협회가 정한 제2대 참치 명인이다. 1대 명인이었던 일본인 스즈끼씨가 1994년 타계하자 제2대 명인에 선정된 것이다.

차용우 선 단장은 완도읍 화흥리 출신이다. 동원산업 원양어선 김호(1000톤) 선장으로 세계 최초로 카리브해 참치 어장을 개척하였다. 태평양 바다에는 어느 곳에나 참치가 있지만 70~80m 바닷속 깊이 있어 수면으로 부상하지 않는다. 이 수면 아래에 있는 참치를 부상시키기 위해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많은 연구를 하였지만 실패하였다.

차 선장은 살아 있는 먹이를 이용하여 바닷속 깊이 있는 참치를 부상시킨 다음 먹이와 비슷한 채낚기로 낚는 방법을 시도하여 성공하였다. 이 방법은 지금도 원양어선에서 사용하고 있다.

차 선장은 브라운 냉동법의 단점인 염분 침투를 막기 위해 염분을 드라이시키는 방법을 새롭게 개발하였는데 지금까지 전 세계 원양어선에서 차 선장이 개발한 이 냉동법을 사용하고 있다.

또 차 선장은 가볍고 질긴 새로운 그물을 개발하였다. 원양어선에서는 그동안 일본에서 만든 그물을 사용하였는데 그 그물은 그물코가 작고 실의 무게가 무거워 투망하는 사이 참치가 다 달아나 제대로 잡지를 못하였다. 이를 본 차 선장은 어렸을 때 마을 산에서 보았던 거미줄을 생각했다. 

거미줄은 태풍이 불어 나무가 부러질지라도 거미줄은 떨어지지 않는다. 이를 그물에 이용한 것이다. 유속과 바람의 저항은 비례한다는 원리를 그물에 적용하여 그물코를 크게 하여 참치가 도망가기 전에 투망을 마칠 수 있도록 하였다.

차 선장의 실험은 적중하였다. 밤에 밖에 조업하지 못했던 참치 어장에 낮에도 작업할 수 있는 먹이 투입 방법과 새로운 그물은 획기적인 어획고를 올렸다. 1년에 최고 6~7천톤 잡았던 참치를 배가 넘는 1만4000톤 정도를 잡았다.

차 선장 미국에 있는 참치 통조림 회사인 스타키스트에 5년간 사진이 올라있는 기록을 세워 세계 참치 명인이 된 것이다. 

이윤리 선수는 베이징 장애인올림픽 사격 50m 소총 3자세 결승에서 결선 합계 676.9점으로 장애인 세계신기록이자 패럴림픽 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명중시킨 자랑스러운 완도의 딸이다.

완도군청에 다니던 1996년 당시 교통사고를 당해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이윤리는 부모님께 불효를 했다는 생각에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고 2006년 1월 우연히 대전보훈병원 사격장에서 사격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진 뒤 급격히 이 스포츠에 빠져들었다. 

남들보다 늦은 사격 입문을 만회하고자 피나는 노력을 거듭한 결과 2007년 독일 오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위에 오른 이윤리는 베이징 장애인올림픽 직전에 열린 제1회 서울컵 대회에서는 한국 신기록과 비공인 세계신기록을 동시에 수립하며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적이 급상승했다. 한번 시작한 사격인 만큼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의지로 스스로를 채찍질한 결과다.    

이 선수들 외에도 얼짱 차유람의 포켓볼과 프로 게임머 김대일 사장들은 완도 사람들로 21세기 장보고라고 할 정도로 한 분야에서 특별한 재능을 나타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이웃 중에서 21세기 장보고가 나올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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