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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장보고를 알아야 하는가?Ⅱ

[완도신문-(사)장보고연구회 공동기획] 추강래 / (사)장보구연구회 사무국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11.07 16:05
  • 수정 2020.11.0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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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학자 요시오카 칸스케 박사는 “일본 후쿠오카 일대에서 출토된 햇무리 굽 청자 파편들에 사용된 흙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이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 일대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코오로칸 발굴 과장 이케자키 후쿠오카시는 장보고가 최초로 일본에 와서 장사를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은 중국이나 신라 도자기가 많이 유입됐다. 장보고 등이 당나라에 신라방을 만들어서 그 부근에서 중계무역을 하다가 제일 먼저 일본에 중국 도자기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고고학자 주강 교수는 양조우의 나성터에서 출토되는 한반도산 청자가 고려청자가 아니라 전남 강진에서 생산된 신라 청자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설명한다.

닝보시 문물 고고학 연구소 교수 린스민박사는 “완도에서 발견된 자기의 파편이 월 주요 생산품과 일치하고 유약의 색이나 굽는 방법 등이 같다.”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일본과 중국의 일부 학자들은 강진에서 만들어진 도자기가 고려청자가 아닌 신라 청자로 장보고 시대에 이미 주요 수출품으로 자리 잡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에서 월 주요가 생산되었던 시기는 장보고가 청해진에서 무역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그러므로 장보고가 당나라에 있는 신라인 도자기 기술자들을 청해진으로 데려와 생산하였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중계무역을 하는데 그치지 않고 부가가치가 높은 생산품은 직접 생산해 보겠다는 장보고의 시도가 결국 고려청자를 탄생시킨 밑거름되었다.

즉 강진에서 주장하는 고려청자는 장보고에 의해 기술 유입된 신라 청자인 것이다. 경제인으로서의 장보고의 철저한 상인 정신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인 고려청자를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된 것이다.

장보고의 이런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은 20세기 우리나라 기업인들에게도 나타났다. 맨손으로 세계적인 기업의 초석을 만들어낸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비롯해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현대그룹을 일으킨 정주영 명예회장의 어록 가운데 하나인 “이봐, 해봤어?”라는 그의 기업가 정신이 바로 장보고의 도전과 개척을 보여주는 예다.

1970년 겨울, 아직 공사도 시작하지 않은 조선소 부지를 찍은 항공사진과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선박을 수주한 그의 배짱과 뚝심은 한국형 기업가 정신의 정수로 꼽힌다.

당시 수주를 디딤돌로 건설을 시작한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는 오늘날 세계 1위 조선 강국을 만드는 초석이 됐다.

폐유조선을 가라앉혀 물을 막아 서산 간척지를 만들고, 멀리 중동에서 해외 유명 업체들을 제치고 각종 공사를 따내는 등 정 명예회장의 ‘해봤어’ 정신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현실로 만들었다.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기업가 정신이 빛난 사례는 1980년대 초반의 반도체 투자 결정이다.

이미 일본 업체들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당시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투자를 결정해 오늘날 세계 최고 IT(정보기술)업체인 삼성전자의 성장 발판을 만들었다.

초기의 난관을 이겨낸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이제 세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며, 스마트폰과 3D(3차원) TV 등 삼성전자의 다른 사업에도 큰 뒷받침이 되고 있다.

1980년대 초 일본을 방문한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이 일본 1위 철강업체인 신일본제철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덩샤오핑이 “포항제철(현 포스코) 같은 철강회사를 갖고 싶은데 도와 달라.”고 요청하자 이나야마 신일본제철 회장은 “불가능하다.”라고 거절했다.

“중국에는 박태준(포스코 창업자)이 없지 않느냐.”는 게 그의 답이었다.

1968년 박 명예회장이 포항 영일만 허허벌판에 포항제철을 세운 지 어느덧 50여 년이 흐른 지금, 자산규모 16억 원에 불과했던 포스코는 세계 1, 2위를 다투는 초대형 철강회사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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