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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에세이 - 횡간도통신] 박소현 / 횡간도보건진료소장
완도신문 | 승인 2020.11.06 10:06

여느 때처럼 주 2회 진행하는 <외딴섬 어르신 치매 예방 프로그램> 수업을 위해 경로당을 찾았다. 오늘도 노랑 병아리 부대는 밥상을 펴고 숙제 검사를 위해 가지런히 숙제를 펴두었다. 출석을 부르고 나자 반장(부녀회장님)이 손을 번쩍 든다. “선생님! 우리는 졸업을 거부하요. 12월 말까지 계속 학교 댕기고 싶으요.”하자 여기저기서 “그랍시다!”를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일단 요번 프로그램은 24회기로 마치고, 이제 한글 공부하셨으니 어떤 프로그램이든 새로 만들어서 또 함께 할 수 있다고 설명해 드리자, 그제야 알았다 하신다.

졸업을 거부하는 학생들이라니 이럴 때 쓰라고 나온 말 인가보다, 총체적 난국. 20회가 넘어가자 곧 끝난다는 게 아쉬우셨나 보다. 이상한 학생들이기는 했다. 병원에 다녀오시느라 하루라도 수업을 빼먹으면 짝꿍에게 말해서 숙제를 받아놓게 하거나, 돌아오시면 진료소에 오셔서 보충수업을 자진해서 받고 가시는 분들이 많았다. 나의 제자들은 늦게 시작한 공부에 한없이 빠져드시는 모양이다. 

수업이 없는 날 저녁때 동네를 돌며 대문이 열린 집이 있으면 가만히 안을 들여다보곤 한다. 마루에 앉아 숙제하고 계신다. “워따매! 이쁜그. 이렇게 열심히 하네.” 하면 깜짝 놀라 수줍게 웃으시면서 “백날 봐도 머리에 안 들어가. 늙은께 그란갑소.”하신다. 어떤 어머니는 제사 때문에 도시 자녀들이 와서 초등학생 공책에 자식들 이름을 모두 적어 놓은 것을 보고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가며, 꼭 나중에 편지 한 통 엄마가 써서 보내 달라고 했다 한다. 또 다른 어머니는 색칠공부 한 것을 보여주자, 도시 사는 며느리가 색연필이며 색칠 공부 책을 여러 권 사서 보냈다고 벌써 한 권을 칠해서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으러 진료소까지 오신다. 어찌나 알록달록 곱게 칠했는지 “왐마! 엄마는 옛날에 학교를 제대로 다녔으면 화가가 되었을 거여!” 하면 싱글벙글 웃는다.

어려운 받침과 이중모음까지 일단 한글 익히기가 마무리되자, 처음으로 동화를 읽게 하고 싶었다. “미운 아기 오리” 제법 큰 글씨로 A4용지 두 장에 적힌 내용을  손으로 천천히 짚어가며 읽는 엄마들의 모습이 내게는 노랑 병아리 엄마들이 이제 어엿한 백조로 변신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다음 수업에는 “해님 달님” 동화를 읽고는 호랑이에게 못 되었다고 하시며 그래서 수수가 빨간빛인가 보다 웃으신다. 

지글보글 치매 예방 손뼉치기를 하실 때면 틀린 손동작에 서로 배꼽을 잡고 웃으시기도 하고, 치매안심센터에서 준비해 준 화투 퍼즐과 구슬 퍼즐을 어느 때보다 비장한 표정을 하고 맞추시기도 한다. 처음에는 “못 해! 이런 것을 우리가 어떻게 해!”하고 겁부터 내셨지만, 퍼즐을 맞춰가는 원리를 터득하시고는 밤마다 잠이 안 오고 헛생각이 드시면 퍼즐 맞추기를 하신다고 한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다고. 

마지막 수업은 꼭 엄마들이 배웠으면 하는 노래를 알려드리기로 했다.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가사가 적힌 종이를 받아 들고 읽어보시며 너무 좋은 말들이 쓰여 있다고 하신다. 한 소절씩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따라 부르자 영락없이 조금 트로트 가요처럼 음이 변형되기는 하지만 따라 부르신다. 세 번 정도 반복하고 엄마들과 함께 이 노래를 불렀다. 어찌나 눈물이 나려 하던지. 엄마들은 내게, 나는 엄마들에게 서로 행복을 주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프로그램을 종료하고 만족도 조사를 비롯한 사후 검사를 진행 중이다. 모든 엄마가 다 글을 완전히 깨우치지 못하셨더라도,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동안 한 없이 즐거우셨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2020년 완도군 지역특화사업으로 “횡간도 외딴섬 어르신 치매예방 프로그램”을 함께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신 완도군보건의료원 치매정신관리팀(팀장:박현옥)께 횡간 주민을 대표해서 감사드린다.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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