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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장보고를 알아야 하는가?Ⅰ완도신문-(사)장보고연구회 공동기획-청해진대사 장보고] 추강래 / (사)장보고연구회 사무국장
완도신문 | 승인 2020.10.30 14:19

첫째 장보고 대사는 21세기 신 해양시대의 롤 모델이기 때문이다.
둘째 장보고의 정신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21세기 장보고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21세기는 신 해양시대다. 바다를 통한 운송은 저렴한 비용으로 대량운송이 가능하다. 현재 전 세계 운송 물량의 75%가 해상을 통하고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95%의 물류가 바다를 통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 할 때, 이러한 바다의 운송을 9세기에 예견한 장보고 대사야말로 이 시대의 롤 모델임이 틀림없다.

원활한 무역을 위해 해적을 소탕하여 항로를 정비하고, 청해진이라는 해양 물류기지와 해상복합 운송 시스템을 만들었던 장보고의 선견지명은 분명 21세기 신 해양시대의 롤 모델이다. 우리가 장보고 대사를 알아야 하는 목적이 장보고 대사의 해양활용 방법을 오늘에 맞게 펼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장보고의 정신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도전과 개척정신이다. 장보고의 도전정신을 살펴보면, 당시 신라는 신분 계급에 따라 의식주를 비롯한 관직까지 정해져 있는 골품제였다. 장보고는 백제계 출신인 자신은 신라에서 출세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당 드림에 도전한다.

신라와 당나라 서주에서 창마술에 당할 자가 없을 정도로 무예 실력이 출중한 장보고는 무령군에 도전하여 30세에 서주의 무령군중 소장까지 된다. 상황판단이 빠르고 도전적인 성격을 가진 장보고는 제나라가 멸망한 후 머지않아 무령군이 해체될 것을 알고, 무령군을 전역하고 무역업에 도전한다. 바다를 통해 신라와 일본을 상대로 무역을 하면서 가장 걸림돌이 해적들임을 알고 또 다른 도전을 시도한다. 즉 해적들을 소탕하여 무역의 원활을 꾀하고 동포들이 노예로 잡혀가는 것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신라로 돌아와 청해진을 설치한다. 

 해적을 소탕한 공로를 인정받아 신라에는 없는 ’청해진 대사‘라는 관직을 얻은 후, 신무왕을 옹립한 공을 인정받아 진해장군과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대우로 식읍 2000호를 받는다. 신무왕 사후 문성왕으로부터 감의군사와 장복을 하사받고, 신라 귀족을 능가한 신분을 얻는다.
 어려울 때 좌절하지 않고 도전하였던 장보고의 정신은 4포(연애, 취업. 결혼, 출산 포기) 시대, 7포 시대라는 현대 젊은이들이 꼭 배워야 할 정신이 장보고의 도전정신이다. 

개척정신이 강한 장보고는 신라와 일본, 이슬람까지 탐내던 당나라의 독점 수출품목 월 주요를 만들어 동아시아에 수출하였다. 월 주요 대표적인 햇무리 굽 청자는, 도자기 바닥이 태양 주변에 동그랗게 형성되는 띠(햇무리)와 같은 햇무리 모양의 도자기를 말하는데, 중국 저장성 지방에서 5세기부터 10세기까지 생산된 월 주요를 말한다.

월 주요는 신라는 물론 이슬람 상인들까지 탐내었던 물품이었지만 당나라 외에는 만들 수 없었던 자기로 당나라의 독점 생산품목이었다. 당시 부르는 것이 값인 월 주요는 장보고 선단의 중요한 교역품이었다.
 
그런데 장보고는 이 자기를 당나라에서 구입하여 신라와 일본에 파는데 그치지 않고 좀 더 큰 이윤을 남기기 위해 직접 생산까지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경기대학교 정양모 석좌교수는, 장보고는 동북아 해상무역의 왕자입니다. 그때 청자 수요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처음에는 중국을 통해 수입해서 일본으로 가져가고, 장도의 청해진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청자의 수요가 많으니까 우리가 만들어도 충분히 수익이 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겠지요. 그래서 장도 가까이 해남과 강진에서 월 주요 장인을 데려다가 직접 만들어서 그것이 널리 퍼진 것입니다.라고 주장한다.

목포대학교 변남주 박사는 강진과 해남의 가마터 근처에서 중국의 월 주요를 닮은 자기 파편들이 발견되는데, 이것은 햇무리 굽 자기들이 이곳에서 생산되었다는 증거들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흙에 구운 흔적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중국에서 만드는 방법이 이쪽 강진과 해남에 직접 유입이 되었다는 증거가 된다고 봅니다. 왜 그러냐면 기형이라든지 굽는 방법 같은 경우는 기술자가 직접 왔다든지, 사람을 보내 배워왔다든지 않으면 그와 똑같은 상황이 여기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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