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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는 어떤 사람인가?Ⅲ[완도신문-(사)장보고연구회 공동기획-청해진대사 장보고] 추강래 / (사)장보고연구회 사무국장
완도신문 | 승인 2020.10.08 10:48
노예제도와 인종갈등을 다룬 소설로 노예들의 참상을 알려준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쿤타킨테)”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1750년 서아프리카 감비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쿤타킨테가 17살에 영국의 노예 상인에 잡혀, 미국 남부 목화농장에 팔려, 4대에 걸쳐 노예로 살아가는 처참한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셋째. 페르시아와 아랍 상인들이 거쳐 오는 동남아 인도항로를 동아시아 항로와 연결해 세계 최초로 동양과 서양의 무역망을 하나로 묶는 데 성공한 위대한 인물이다. 

장보고와 청해진 사람들의 활동 범위는 기존 북방 연안항로와 황해횡단항로 외에도 남방 사단항로를 개척하여, 이 항로를 통하여 한반도가 아닌 중국을 건너 멀리 중동 국가들까지 무역로를 넓혔다. 장보고 대사가 이 항로를 개척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 청해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바다의 물길을 알았고, 역풍에 항해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이 있었다. 장보고 대사는 이들을 잘 활용하여 항로를 개척하였음은 우리들의 자긍심이기 하다.

넷째. 세계 최초로 노예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다.

당나라에는 660년 백제가 패망하면서 의자왕과 태자 효를 비롯해 1만 2,807명을 끌고 갔다. 668년에는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보장왕과 귀족 88명 백성 38,300호 약20만명의 고구려인을 끌고 갔다. 당으로 잡혀간 백제인과 고구려인들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노비로 전락하여 희망 없는 삶을 살아야 했고, 망국민의 후예라는 슬픔은 그들의 가슴을 옥죄었을 것이다.

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역사는 말해주지 않지만, 당나라 사람 장작(660~740)이 저술한 ’조야첨재‘라는 책에 비참했던 그들의 이야기가 있다. 백제, 고구려인 외에도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자·타에 의하여 팔려간 신라인, 빌린 곡식을 갚지 못해 팔려간 신라인, 해적 등에 의하여 강제로 잡혀간 서남해안 지방 선량한 양민 등 많은 신라인이 노예로 매매되고 있었다.

장보고는 동포들이 해적에 잡혀 와 노예로 팔려 처참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부귀영화를 뿌리치고 신라로 돌아와, 흥덕왕께 주청하여 청해진을 설진 하고, 제일 먼저 해적들을 소탕하였다.
중국 측 기록에 의하면 ‘태화년간(827~835년)이후, 해상에서 신라인을 노예로 매매하는 자가 없게 되었다’고 한 것은 바로 이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즉 세계 최초로 노예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는 인류사회의 윤리적 문제인 인신매매 즉 노예거래를 없애고 해상에서의 납치와 인신매매를 금지한 위대한 업적이다.

노예제도와 인종갈등을 다룬 소설로 노예들의 참상을 알려준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쿤타킨테)”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1750년 서아프리카 감비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쿤타킨테가 17살에 영국의 노예 상인에 잡혀, 미국 남부 목화농장에 팔려, 4대에 걸쳐 노예로 살아가는 처참한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자식에 자식을 거치면서, 쿤타킨테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잠비아 말을 가르치며 노력하였던 그들의 절절한 외침은, 7대손인 “알렉스 헤일리”에 의해, 10여 년에 걸친 현지답사를 통해 소설로 썼으며, 그의 이야기는 1977년 미국 ABC 방송국에서 12부작으로 방영되었고, 2016년에는 4부작으로 다시 제작되어 전 세계인의 가슴을 울렸다.

노예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영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윌리엄 윌버포스는 1807년 2월 23일 의회에서 노예 폐지법을 통과시켰다. 노예 해방을 위한 그의 외로운 노력은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로 촬영되어 세계인에게 노예제도의 심각성을 알렸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연한 이 영화는 전 세계에 소개되어 노예제도 폐지에 불을 붙였다.

1865년에는 미국에서 노예 폐지에 대한 수정헌법 13조가 승인되었는데 이는 링컨 대통령의 남북전쟁을 그린 영화로 전 세계에 소개되었다. “필드오브 로스트 슈즈”로 소개된 이 영화는 미국 남부 목화농장의 노예 심각성을 알리면서 노예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남북전쟁으로 소개되었다.

장보고의 해적소탕은 이들의 노예 해방에 버금가는 대단한 일로, 1965년 안현목 감독 신영균 주연으로 영화화 되었다. 인물을 주제로한 영화는 1964년 이순신이 최초이었고 장보고는 두 번째로 영화화 되었다.

2004년 11월부터 2005년 5월까지 51부작으로 KBS2 TV에서 드라마로 촬영되었는데 이때 주인공은 최수종이었다. 이 드라마로 인해 장보고역의 최수종을 비롯, 자미부인역의 최시라, 정화역의 수애, 정연역의 김흥수를 비롯 많은 연예인들이 스타덤에 올랐다. 특히 염장역을 맡았던 송일국은 해신으로 인해 최고의 스타 자리를 차지하였다. 원래 염장역으로 캐스팅되었던 한재석이 병역 비리 사건으로 인해 다시 캐스팅 될 수 있었음은 행운 중의 행운이었다.

완도는 장보고의 고향이지만 접근성의 불편으로 촬영지를 유치하는데 자치단체와 군민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유치할 수 있었음은 두고두고 자랑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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