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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역사와 함께 살아있는 언론으로 발전하길”

[창간30주년 특집기획] '찐'독자를 만나다 ③ 창간발기인· 논설위원으로 활동한 서해식 독자

  • 박주성 기자 pressmania@naver.com
  • 입력 2020.09.07 10:10
  • 수정 2020.09.07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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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부터 지금까지 30년째 완도신문을 구독하고 있는 금일읍 서해식 독자. 그에게 완도신문은 지역의 자부심 그 자체였다. 아직까지 독자기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완도신문과 함께 하고 있다.

아직 그의 펜대가 녹슬지 않았다. 창간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창간호에 기념축시도 쓴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30년째 완도신문 구독하고 있는 금일읍 서해식 독자(75).

완도신문 창간30주년을 맞아 구성한 ‘완도신문 ’찐(진짜)‘독자를 만나다’ 코너로 만난 서 독자는 완도신문 창간준비위원장이었던 고(故) 이경국 발행인과 같은 민주화운동의 동지였고 지방자치시대에 부응하여 지역신문을 창간하는데 공조해 기자와 논설위원으로 18년 정도 함께했었다고 한다.

서 독자에 따르면 당시 1990년 지방자치의 부활과 함께 지역신문들도 하나둘씩 창간되기 시작했는데 주민들은 기대가 컸고 창간발기인으로 12개 읍․면에서 고루 참여했다. “군 의회와 자치단체를 견제할 언론을 기대했었고 완도군민과 소통의 통로로 지역소식을 갈망하는 군민들에게 희망으로 다가선 것 같다”는게 서 독자의 증언과 같은 전언이다.

특히나 서 독자는 2015년 본지 지령 1000호를 맞이해 소장하고 있던 완도신문 묶음집(본지 창간준비호 1~3호, 창간호부터~48호까지의 원본을 그대로 담겨 있다)을 기증한 인물이다. 그렇게 완도신문을 보관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냐는 물음에 “완도신문은 완도 언론사에 기념비적인 존재다. 불모지 같은 완도땅에 정론직필의 기치를 내걸고 선구자의 길을 걸어온 완도신문이기에 먼훗날 역사적인 자료가 되기를 염원하며 보존하여 묶음집을 만들었고 창간정신을 이어가라고 지령1000호를 축하하면서 기증하게 된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또 30년전 완도신문 창간 당시와 달리 지금의 지역신문·언론 매체환경이 많이 달라졌다고 하자 “SNS 활성화로 종이신문이 많이 위축당했지만 아직도 농어촌은 노인인구가 많아 종이신문이 사랑을 받는다. 지역신문이면서도 완도신문 같이 중앙지 못지않게 중량감 있는 신문이 있는가 하면 홍보나 소식지 정도의 신문도 있는 것같다. 곳곳에 무가지로 뿌려지는 신문이 있는가 하면 품위를 지키는 신문도 있다. 우후죽순처럼 지역신문 창간이 줄을 있고 있지만 거시적으로 내다보고 30년 전통의 완도신문과 같은 매체를 키우기 위하여 지역신문들의 자기혁신이 필요한 것 같다”는 우문에 현답이 돌아온다.

마지막으로 서 독자가 보낸 애정 어린 조언과 축하는 완도신문이 30년 역사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더욱 애독자와 완도군민 여러분들을 위한 자긍심으로 남는 신문으로서 주마가편해야 할 것을 다짐케 한다.

“완도신문은 우여곡절도 많았다. 지방자치단체장을 비판한다고 엄청 핍박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정의 편에 섰다. 군민들도 완도신문을 신뢰하고 신문을 기다린다. 지역사랑과 지역발전을 견인하고 정론직필로 군민들의 사랑받는 신문으로 계속 정진해 가길 바란다. 완도신문하면 지역을 대표하는 신문으로 완도역사와 함께 살아있는 언론으로 발전하길 바라면서 30주년 완도신문에 축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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