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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야 겠다[에세이-고향 생각] 배민서 / 완도 출신. 미국 거주
완도신문 | 승인 2020.07.10 11:35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시간은 있어.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새에게도, 나무에게도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시간은 있는 법이지. 기억하고 추억하고 감싸 안는 일, 그래서 힘이 되고 빛이 되는 일. 손에서 놓친 줄만 알았는데 잘 감췄다고 믿었는데 가슴에 다시 잡히고 마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이어서 온 몸에 레몬즙이 퍼지는 것 같은......" 이병률 산문집 [끌림] 중에서-

  내 침실의 블라인드를 올리면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새로 만든 아늑한 쉼터가 바라다 보인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었던 지난 몇 개월 동안 땀을 뻘뻘 흘려가며 땅을 파서 기초공사를 하고 직접 벽돌을 깔아서 만든 곳이라 그런지 바라만 보아도 왠지 뿌듯하고 행복해진다.  지금 내가 살고있는 이 작은 도시에는 지난 금요일 통계로 14000명이 넘는 COVID 19 확진자가 발생했고 내가 근무하는 카운티 시립병원에도 환자들이 몰려 와 의료진들의 감염 역시 대폭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주차장에서부터 마스크 두개를 겹쳐 쓰고 그 위에 페이스 쉴드까지 쓴 상태로 온종일 바쁜업무에 시달리다가 집에 돌아와 마주하는 이곳 작은 쉼터는 내게 천국이 아닐 수가 없다.
이곳 텍사스는 한국과는 달리 날씨가 무척 덥고 건조한데다 수 십년을 버텨 온 잔디 뿌리가 촘촘히 얽혀있었던 우리집 뒤란이었다.

이 척박한 땅을 일구어 화단과 텃밭을 만들어 고추와 상추 그리고 깻잎도 심었고, 체리토마토와 한국 참외도 심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엄마는 연탄재와 쓰레기더미가 쌓여있던 집 앞 공터를 일구어 밭을 만드셨다. 거기에 아부지가 좋아 하시던 청양고추를 심으셨고 가지와 열무 그리고 배추도 심어 놓고 엄마는 늘상 밭 매고 벌레 잡고 거름을 주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민서야! 고추 좀 따온나~" 하시면 나는 텃밭에 나가 고추가지들을 들추며 숨박꼭질 하듯 녀석들을 따는 재미가 솔솔 했었다.

밥상 위에는 장독에서 막 퍼온 오렌지 빛이 감도는 된장과 열무김치, 꽁보리 밥 몇 그릇이 전부였다. 엄마는 늘 식은 밥 한 덩이에 김칫국물을 반찬삼아 드시곤 하셨다. 그것이 가난 때문이란 사실을 모르기나 한 거처럼 나는 늘 즐겁기만 하였다. 

여름이면 동네친구들과 빤스하나 수건에 돌돌 말아 본남개미로 헤엄을 치러 다녔다. 가는 길에 마주치는 산딸기들은 모두 다 따 먹고 장난을 치며 걷다보면 고무신 속 맨발에 땀이 차 미끌리면서 벗겨지기가 일쑤였다. 바다가 보이면 우리는 와~ 환성을 지르며 뛰어가 첨벙 빠지곤 했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밀물과 썰물을 익혔고, 물이 나는 때에는 모랫고동을 양은 주전자에 가득 잡아 오기도 했었다.

이처럼 우리의 완벽한 휴양지였던 이 작은 모래사장에서 한 여름 내 내 뒹굴며 놀다 새까맣게 타서 두어 차례 허물이 벗겨져 따끔거릴 즈음에 여름방학은 끝났고 우리는 밀린 방학숙제를 그제서야 꺼내 시작하곤 했었다. 그 시절, 누가 매일 일기를 쓰기는 했던걸까? 그림일기는 대충 그려넣었는데, 그날 그날의 날씨들은 기억할 수 없어 암담했던 상황이 또렷하다. 돈을 아끼려고 걸레를 재봉틀로 꼼꼼히 박아서 만들어 주셨던 엄마..., 겨울이 가까와지면 친구들이 사온 빗자루와 먼지털이는 다 부서져도 엄마가 만들어주신 걸레는 씩씩하게 살아남아 있었다.

그래......, 사랑해야 겠다. 엄마가 어려웠던 순간에 밭을 일구고 재봉틀로 내 옷과 준비물을 만들어 주셨던 것 처럼, 내게 주어진 순간순간들을 사랑해야 겠다. 병원에서 사용 할 두건을 재봉틀로 만들며 나는 오늘도 행복할 것을 선택하고 있었다.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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