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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이런 재미난 세상이 다 있다요?

[에세이- 횡간도에서] 박소현 / 횡간도 보건진료소장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7.03 11:35
  • 수정 2020.07.0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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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랴러려 로료루류 르~리!”
“라라러러 로로루루 르~리”
“워따, 어마이들 라라러러가 아니고 라랴러려!”
하하하! 크크크! 웃다가 앞자리 학생이 용기 내 전체를 대변한다. “쌔가 안 돌아가라우.” 더 큰 웃음소리가 들린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리라, 그제야 나도 웃음이 난다.

비가 주룩주룩 장마라는데 수업 시작 삼십 분 전에 경로당에 들어서니 “와! 선생님 온다!” 여기저기서 어서 오라는 인사와 함께 노랑 병아리들의 박수가 터져 나온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아가며 어찌 이런 환대를 받아 볼까 싶어 감사하고 숙연한 마음이 든다. 

시대가 그러했고, 환경이 그래서 배우지 못했다. 그래도 삶의 불편은 있었지만, 그럭저럭 견뎌왔다. 그런데 혼자 사시니 깊어지는 노인 우울감과 코로나19 덕에 더 깊어진 고립감은 어찌할까? 대다수 엄마들이 혼자 사시니, 남들 앞에선 자식 욕될까 억누르다, 치매간이검사와 노인 우울검사 때에는 남모를 눈물이 터져 나오더라. 무언가 삶의 기쁨, 전환점이 필요했다. 
항상 당당한 우리 엄마들인데 서명하시라 하면 따스운 물에 데친 실가리 마냥 숨이 죽어 그 이름 석 자를 힘겹게 내 손 잡고 써갔다.

  나를 돌아보니 그러했다. 아빠 돌아가시고, 허리는 망가져 주로 근무하던 응급실 일도 못 하게 되고 결국 삶의 보상은 공부였다. 내가 즐거이 노력한 만큼 날 저버리지 않았으니.
나는 그렇게 한글 교실을 열어야지 마음먹었고, 완도군 보건의료원 치매정신관리팀(팀장: 박현옥)과 치매안심센타에서는 기꺼이 심사숙고 검토해 주시며 지역특화사업으로 최고의 프로그램을 개발해 주셨다. 혼자 했으면 시즌으로 여러 차례 나눠 할 계획을 꼼꼼하게 짜주신 덕에 하하호호 한글교실, 미술요법-작업치료, 두근두근 뇌운동까지 다양한 내용으로 탄탄하게 짜이고, 혼자 지내시는 어머니들 자주 못 드실 간식이며, 책가방에 필통, 교재까지 완벽하게 준비해 주셨다. 

막상 폐쇄되었던 경로당이 문을 열고 시작하려 하자, 한두 분 어머니들이 이렇게 나이 들어 공부가 되겠냐는 푸념에 난 큰 시련을 맛보았다. 이장님의 여러 차례 방송에도 불구하고 첫 수업 날 학생이 아무도 없었다. 눈앞이 캄캄하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더라. 

다시 내일로 미루고 몇몇 어머니 집을 방문해 “엄마! 왜 안 와? 그땐 공부하고 싶다고 했잖아!” 울먹이려는 내 말에 “미안하요. 갈라 했는디 일 있었단 말이요, 꼭 갈라!” 
두 번째 모이는 날 열세 분이 오셨고, 엄마들께 다 눈 감으시라고 하고, 훈민정음 서문을 읊어드리며 세종대왕님이 우리 짠한 백성들 쉽게 익혀 쉽게 쓰라 만드신 글자인데 왜 못하느냐, 
석 달 자리만 지키고 계시면 꼭 읽고 쓰실 수 있다고 자신감을 드렸더니 다음 수업에는 스물다섯 분이 되었다.

아야어여 체조부터 시작해서 하햐허혀를 한 달 만에 끝내고 지금은 받침 붙이기 연습 중이다. 
한글 교실만 하는 게 아니라서 한글 아시는 분들도 치매 예방 된다고 오셔서 참석하시고, 우울감이 심해 밖에 안 나오시려던 엄마들도 손잡고 데려오셨다. 
부녀회장님도 반장 역할로 바쁜 시간 내서 참가해 간식 준비랑 챙겨주시고, 밥상에 나란히 책 편 짝꿍이 못 따라가면 밤에 불러 보충 수업도 해주신다. 

알아도 성큼 답 안 하시고 짝꿍이 맞게 읽으면 씨익 웃어주신다. 색칠 공부 만다라를 할 때면 처음 쥐어보는 색연필이지만 어찌나 곱디곱게 칠하시는지... 옆 짝지에게 “워따워따! 내 가이나야! 이삐게도 칠해따이!” 칭찬도 하신다.

 “소장님! 너머너머 즐겁고 학교 가는 날이 기다려지요. 숙제는 폴새 다 해부렀어라. 이렇게 재미난 세상이 다 있다요? 공부 갈챠 주지 맛난 것도 주지, 평생 우리 공부 갈챠 줌시로 어디로 가지 말고 삽시다.” 원래 공부가 할 의지 없으면 백날 시켜도 안 하지만, 재미 느끼면 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 게 공부 아니던가? 

고향에 돌아와서 부모님 모시고 계시는 지역민들 뿐 아니라, 도시에 사는 자녀분들도 “엄마 학교 댕겨왔다!” 하는 말에 좋아한단다. 동네 아버지 한 분은 구구절절 편지를 아내 편에 보내시며 꺼져가는 인생의 등불을 다시 한번 밝혀 주어 고맙다고 하신다. 
이렇게 열심히 할 줄 알았으면 진즉 집에서라도 시켜 볼 것을 후회가 된다고.

내가 처음 열세 분의 엄마들 모시고 <외딴섬 어르신 치매예방 프로그램> 설명해 드리며, “엄마들! 자식들이 제일 고마운 게 뭘까? 농사 잘 지어 택배 보내주시는 것도 좋고, 재산 많이 물려주는 것도 좋아. 제일 좋은 게 뭔 줄 알아? 첫째는 무심코 전화했는데, ‘이~! 나는 잘 있다!’ 이 소리가 제일 좋고, 두 번째는 ‘나 요새 공부한다!’ 이 소리일거야. 

엄마들은 허리 휘도록 일해서 자식들 상장 타오면 한없이 기뻤듯이 이제는 그 자식들이 자라서 내 엄마가 시대가 그러해서 못 배운 한글이랑 공부한다고 하면 손주들이 공부하는 것만큼 기쁠 거야!” 
먹혔다. 밭일하다가도 호미 팽개치고 오시고, 멸치 고르다가도 달려오시니! 벌써 수업 1시간 전인데 경로당을 향해 난 길 위에 책가방을 든 노랑 병아리들이 줄지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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