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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례가 유배 와 형성된 고금면 연동리

[드론으로 본 완도] 사진제공 / 완도드론교육원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6.19 10:42
  • 수정 2020.06.2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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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경 김씨 성3호(戶)가 이주하여 왔다가 곧 이거(移去)하였으며 1811년 홍병례가 홍경래의 난에 연루돼 연동으로 유배를 왔다. 
홍병례는 학식과 덕망이 높아 근동(近洞)에서 문하생이 되고자 몰려들어 마을이 형성됐다. 
1864년 홍병례는 1864년 귀양에서 풀려났으나 이곳에서 계속 거주하다가 사망했다. 연동에 위치한 영모사는 홍병례와 그의 제자였던 윤세용, 배학연 등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사당이다.
이 용남(熔南) 홍병례(洪秉禮)가 향학(鄕學)을 베풀어 이 고장에 학문, 예절, 역학 등을 가르쳐 문하생을 길렀으며, 마을이름을 지형이 처마밑에 제비집과 같다하여 연소동(燕巢洞)이라 하였다가 1952년 분구되면서 소자(巢字)를 략하고 연동이라 했다. 
1960년대 이전에 연안 여객선 기항지로 마을이 한참 융성하였으며 면사무소가 덕동에서 농상으로 옮겨올 때 고금어협의 이전되어오기도 하였다.
 가구 수는 24세대이며 남자 17명, 여자 22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장은 박창환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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