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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의 의미

[완도 시론] 박준영 / 법무법인 '새봄' 변호사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6.05 11:00
  • 수정 2020.06.05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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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하지 마세요”
“모르면 모른다고 하세요”
사실을 지키는 방법입니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윤지오 씨가 지목한 전직 기자 조모 씨의 무죄가 확정되었습니다. 무죄가 확정됐지만, 윤지오 씨가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꾸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당당함의 근거가 전혀 없지는 않았겠지요. 믿고 싶습니다.

윤지오 씨는 현장에서 무언가를 봤을 것입니다. 그녀가 본 사실이 증거화되는 과정에서 진술이 오염되었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대법원이 보도자료로 언급한 ‘범인식별절차의 위법’입니다. 조모 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거지요.
참고로, 보도자료에 나온 ‘범인식별절차’와 관련된 법리는 2000년대에 접어들어 나오기 시작했고(대법원 2001. 2. 9. 2000도4946 판결), 조금씩 구체적으로 정립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참 많이 벌어졌습니다.

일례로, 낙동강변 살인사건에서는 사건 발생 당일 ‘체격 좋고 얼굴 둥글 넓적 보통머리’, ‘체격 적고, 호리호리, 얼굴 홀쭉’이라고 범인의 인상착의를 이야기했던 사람이, 2년 가까이 지나 경찰이 조작한 범인들 앞에서 “저 사람들이 틀림없다”라고 했고, 이 진술이 증거가 되어 무기징역을 받았습니다.

이런 점은 수사절차의 문제로서, 윤지오 씨에게만 책임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수사의 문제 외에 윤지오 씨 진술이 믿기 어렵다는 평가까지 받은 데에는, 윤지오 씨가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 진술뿐만 아니라 장자연 문건, 리스트, 특수강간, 마약, 이름이 특이한 국회의원 등등...
이번 무죄확정판결. 실망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장자연 사건을 통해 여성의 성이 착취당하고 이용당하는 우리사회를 바꿔보려 했는데...

많이 안타까워하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판결을 비판할 게 아니라고 봅니다. 장자연 씨 사건에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습니다. 그 이해관계 중에 우리는 '일부'만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사실을 바로보지 못했습니다.
일부만 주목하게 된 이유가 뭔지, 그렇게 만든 이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는 어쩌다 그 수단에 동원되었는지. 사실상 윤지오 씨가 이용했다고 봐야 할 장자연 사건을 통해 우리가 고민할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자연 씨 사건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긴 한데, 언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 늘 고민입니다. 장자연 씨 유족은 윤지오 씨를 사자명예훼손으로 고소하려 했지만, 가족이 나서 장자연 사건을 덮으려한다는 비난을 걱정해야 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윤지오 씨는 과장했습니다. 그리고 모르는 걸 안다고 했습니다. 그게 사실을 지키지 못한 이유입니다. 이건 진술이 증거로서 중요한 사건에서 명심해야 할 '기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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