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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진실

[완도 시론] 박준영 / 법무법인 '새봄' 변호사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5.22 10:54
  • 수정 2020.05.2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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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바인의 호된 시련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도움이 된다면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게 나의 도덕적 의무다. 입을 열기는 두렵지만, 그게 옳은 일이다. 
더 잘 알았더라면 다르게 했을 일들의 목록은 길고도 길다. 그게 내 실패다. 
그렇지만 내가 배운 것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행동에 나서라고 촉구하고, 우리 아들이 저지른 것과 같은 비극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의 감춰진 고통까지 막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폭넓게 조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학교에 총을 들고 와 900여 발의 실탄을 난사했습니다. 13명을 살해하고 21명을 다치게 한 ‘콜롬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범인 딜런 클리볼드의 어머니 수 클리볼드가 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의 일부입니다. 

이 책에는, 딜런 클리볼드가 태어나서 사건을 벌이기까지의 17년, 또 사건 발생 후 17년, 총 34년간의 일을 정리되어 있습니다.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것이 아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폭력성과 마주한 인간이 그것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또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쓴 책입니다. 
/만약 법원에서 재심청구가 받아들여져 이 사건과 관련하여 재판이 다시 진행된다면 증인으로 출석할 생각이 있는가요./
“제가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해서 진실을 밝히는데 도움이 된다면 출석하겠습니다. 
피해자를 위해서 뿐만 아니고 저를 위해서라도 이것은 바뀌어야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춘재의 최근 진술입니다. 1986년 9월 14일 이춘재 연쇄살인 1차 사건이 발생합니다. 
당시 이춘재의 나이 23살이었습니다. n번방 사건의 '박사' 조주빈 24살, '부따' 강훈 19살, ‘이기야’ 이원호 19살, ‘갓갓’ 문형욱 24살입니다. 

이들의 주변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꿈에도 생각 못했다’는 반응이 꽤 나왔습니다.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조주빈이 포토라인에서 한 말입니다. 
이들이 어쩌다 어린 나이에 악마가 되었는지. 저는 이게 정말 궁금합니다. 법정에 선 이춘재로부터 듣고 싶은 증언이기도 합니다. 

악마가 말하는 진실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말해 줄 것입니다. 
이런 인간들에게는 사후적 처벌 외에 희망이 없다고 정리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춘재는 반드시 법정에 나올 겁니다. ‘내가 범인 맞다’라는 주장을 넘어 그의 진실을 얼마나 끌어낼 수 있을지가 중요합니다. 
의미 있는 증언이 나온다면, 악마의 진실에 대한 연구가 진지하게 진행될 수도 있겠지요.
재판장님께서 이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잘 알고 계십니다. 제가 이춘재에 대한 증인신문을 자신하는 이유입니다. 증인으로 채택해 달라고 조르는 것, 이제 그만 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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