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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한창 차 만드는 시기!

[완도차밭 청해진다원의 茶 文化 산책 - 112] 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5.15 11:35
  • 수정 2020.05.1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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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매일 찻잎을 채취하여 차를 만들고 있다. 물론 청심향(녹차)과 여래향(발효차) 이다. 그런데 차를 만들면 만들수록 어렵다. 이상하다. 만들면 만들수록 쉬워야 하는 것이 세상의 정칙일텐데, 왜 만들면 만들수록 어려운 걸까? 그것은 아마도 불을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380내외의 고온 덖음을 하기 때문에 더욱더 어려운가 보다.

그 가운데 차의 성정을 놓치지 않고 절묘하게 잘 만들어 내고자 혼신을 다하는 정성과 몰입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한 솥에 2~3kg의 어린 찻잎을 고루 높은 온도로 잘 익혀내는 일, 그것은 필자에게 있어 하루 하루 일상 속에 매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일념으로 잡아내려는 깨어있고자 하는 심법과도 둘이 아닌 공부이기도 하다.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 하더라도 그 순간 마음을 놓치면 찻잎은 타고 말기 때문이다.

혹은 설익어 차 본연의 성정을 오롯하게 드러내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찻잎속 수분에 맞는 덖음과 비비는 강약과 정도의 조절, 다시 솥에서 뜨거운 불을 맞이해야 하는 찻잎의 상태 등을 면밀하게 알아차리지 못하면 만들고자 하는 차는 만들지 못하게 된다. 그럴 경우엔 얼굴로 다가오는 불의 열기도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허리는 끊어질 듯 더 아프고, 비오 듯 쏟아지는 땀과 익어가는 손끝의 아려옴은 극도의 지침으로 이내 심신을 주저앉히곤 한다.

늘 들어지는 생각이지만 좋아하는 일임에도 찻일은 참 어려운 것 같다. 이런말을 할 땐 스스로 안타까움도 살며시 일어난다. 찻일이 쉽고 재미있기만 해야 하는데, 그래야 많은 이들이 모여들고 찻자리가 더 발전할 것이고, 등등.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음을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벌써 차계에 몸을 담은지 30여년 남짓 된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차서적을 읽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차인들과의 인연도 있고, 수없이 많은 차모임 등 다양한 찻자리를 만들어 왔고, 많은 차관련 강의도 해 왔지만, 여전히 찻일은 참 어렵다. 항상 겸양해야 하는 까닭일 것이다.

그 가운데 차를 만드는 일은 더욱더 어려운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많은 제다법들을 거의 섭렵해 왔지만, 역시 차를 만드는 일은 어려운 것 같다. 그럼에도 차를 만들고 있는 것은 왜일까? 그 만큼 좋아서이지 않을까? 차가 가진 향이 참 좋고, 그 맛 또한 그 무엇으로도 비교되지 않는 것 같다. 혹자는 미쳤다 할 것이다. 설사 그렇다하더라도 상관없다. 차의 묘미 묘향에 매료되어 차를 마시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며, 나아가 이러한 차를 좋아하는 차인들 가운데 그 영혼이 맑고 밝은이들이 참 많기 때문에 더 좋다. 그들과 나누는 대화가 꼭 고담준론이 아니여도 그 어떤 대화보다 진솔하고 속깊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차가 주는 정신적 안정과 평화로움, 그리고 더 귀한 것은 맑은 영혼들과의 교류와 교감 때문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시간은 어둠이 이미 내려앉았지만, 낮엔 서울 등에서 차인들 세분이 다녀가셨다. 그중 한 분은 매우 독특하고 남다른 제다법을 가진 분이셨다. 아주 오래전 어깨너머로 잠깐 보았던 정도의 제다모습을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제다법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불은 순수하게 장작불을 이용하며, 고온임에도 장갑 등을 끼지 않고 독특한 도구를 활용하여 차를 만드는 것으로 숙련된 분이 아니라면 결코 쉽지 않는 제다법이기도 하였다. 환경적 여건상 완벽한 제다 시연을 하지 못하셨지만 나름 매우 의미깊은 제다법임을 서로 확인하게 되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차를 백인백차라 했을까! 만드는 이가 100명이면 100가지의 차가 만들어 진다는 의미이다. 저마다 독특한 이론과 경험과 숙련도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에도 자기가 만드는 차가 최고이며, 전통이며,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더러 있기도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품평의 시각과 마음이다. 나아가 정밀한 제다법을 알아차릴 정도의 품평 실력임도 잊지 말자. 결론은 마시는 이가 잘 마셔낼 줄 알아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려면 많은 차를 마셔보아야 한다. 그래야 좋은 차도 만들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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