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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시끌벅적 하다

[에세이] 최정주 / 재경향우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5.15 11:32
  • 수정 2020.05.1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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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한 삶의 여정(旅程)이 늘 그랬듯, 오늘도 그러한가보다

코로나 19의 추가 확진자수가 79명을 넘는다는 언론사발 뉴스가 전파를 탄다

아무도 경험 해본적없는 말없는 바이러스 창궐(猖獗)의 시작은 두려움으로 시작되고, 두려움의 진행이며, 그 끝이 어디쯤인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 이제는, 이태원이다

이태원(梨泰院)...말 그대로면 배나무 많고 큰 집, 동네인데 작명이 잘못됐나보다

조선시대 있었던 역원(驛院)의 일부중 하나인데 역사의 흐름에 따른 부침(浮沈)이 심해서

여러 설(說)이 있는곳이기도 하다 지금의 이태원 구역은 미군 사령부가 이전하면서 시대를 풍미했던 영욕(榮辱)이 점철(點綴)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오늘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이 전파된 장소, 이태원 클럽의 이미지가 남았으니 세상사, 아이러니지 않는가

범,국가적인 방역 체계와 실행으로 방역 모범 국가라는 국격을 얻기도 했고 국내,외적인 경기에도 미치는 영향이 업종,업태, 지역을 가리지 않고 심각한 피해를 발생하게 하고 있다 생산과 소비. 그리고, 유통 싸이클이 붕괴 되면서 농,어촌의 농산물과 특산품 그리고, 소비재까지 위축되는 국가적, 총체적 불황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체감되는 경기 불황의 끝인 먹거리 소비가 줄어드는 상황은 I.M.F때도 경험하지 않았던 악재가 되있다. 더구나, 코로나 바이러스의 백신이나, 치료제가 전무한 현재의 상황은 언제가 그 끝이 될줄을 모른다는데에 결정적인 리스크를 안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조기 안정화 및, 일상으로의 정상화에 목표한 방역 씨스템과 조치로 지역 폐쇄, 이동의 제한없이 최대한의 일상을 유지하며 최대의 성과를 거두어가는 과정에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목표 달성에 생활속 거리 두기로의 전환을 시행하며 일상으로의 복귀를 추진할즈음 이태원 클럽의 추가 감염사태가 발생하게 됐으니 또 다른 국가적, 사회적 문제들을 재 점검하고, 정책적 대안을 가져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더구나. 학생들의 학교 학습 과정이 지연되 개학이 미루어지고 모든 학사 일정이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져 오고 있었다 교육 당국의 심사 숙고끝에 순차적인 개학 일정이 발표되고 고 3부터의 개학이 계획 됐지만 이제, 그것 마져도 재 검토하고 결정을 해야하는 위기가 도래한 원인이 이태원 클럽 확진자

감염 사태가 그것이다. 개탄할 일이다. 무책임하고 이기주의적이고 편향된 사고의 결과는 결국,자신을 포함한 사회,국가적인 재앙으로 부메랑이 되는 것이다.

정책이나 방향, 대안은 정부가 국가적 위기 관리로 부터 시작된다.

그것의 최종적인 실행이나 결과는 정책 입안자들의 몫이나 그들의 행동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주체가 되야 되는 것이고 그것이 결과로서 얻어 지도록 하는것이 의무이며, 책임이며, 공동체 구성원의 역할이여야 한다.

이것이, 선직국형 제도이며 선진 시민이 되는것이다 국격의 가치 상승은 곧, 국민 개개인의 격이 비례 상승 하는 것이다.

나만 아니면 되고, 나는 상관없고, 나는 괜찮다는 편협한 사고가 결과적으로 사회와 국가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 우(愚)를 범하게되는 것이다. 클럽이나 감성의 일시적 이용과 욕구 충족의 후과(後果)치고는 혹독하지 않는가.

개인 혼자만의 건강에 해악으로 그치는 일반적인 병(病)이 아니다 가족과 자신 그리고, 지역, 사회, 국가 구성원 모두에게 미치는 피해는 물론, 국가적 손실까지 지대한 영향을 초래하는 중대한 범죄와도 같기 때문이다.

건국이래, 국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하는 긴급 재난 지원금을 쏟아붓는 이런 위기 상황이 언제 있었는가를 직시해야 한다 국가의 곳간을 열어 푸는 것이다. 그 재원의 보충은 어디서 되는것인가 . 결국은, 국민들의 세금에서 시작되고 세금으로 메꾸어져야 한다. 그냥, 거져 주어지는 떡이 아니라는것이다 국가적 재난이 바이러스 전염병에 국한되지를 않는다.

태풍,홍수,산불,지진, 흉년,산사태,화재, 무수한 재난들은 반복되고 거기에 수반되는 사회적, 국가적 비용 부담은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사람의 문제로 귀착된다. 좋은 나라, 살기 좋은 국가, 더불어 사는 사회는 정치 지도자들이 한 밤중에 만들어 내놓은 신기루가 아니다.

그들은 마법을 부리는 마법사도 아니고 홍 길동이도 아니다. 안전한 미래를 보장하는것중의 하나도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인간(人間)이라는 정체성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존재가 성립될때 비로소 사람 즉, 인간이라 하는것이다 성숙한 시민의식, 살아있는 영혼, 깨어있고 참여하는 선진 시민의 자세가 절실히 요구될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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