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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정만리의 큰 꿈을 꾸어라"

[스승의 날 특집 에세이] 35년 전 스승의 제자 강미경

  • 강미경 기자 thatha74@naver.com
  • 입력 2020.05.15 10:27
  • 수정 2020.05.1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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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공부왕이 즐겨찾는 고사성어탐구생활(naver)

“붕새라는 새가 있는데, 이 붕새가 날개를 펼쳐서 솟아오르면, 한번 날갯짓에 구만리를 난다는 구나. 너희도 나중에 커서 붕새와 같은 큰 꿈을 펼치며 살 수 있기를 바란다 ”

1986년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졸업을 앞둔 우리 반 아이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35년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그 시절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다.

학창시절을 통 털어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스승을 꼽으라하면 망설임 없이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이라고 말하고 싶다. 삶이 힘들 때마다 , 꿈을 잃지 말고 살라는 그때의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라 버틸 수 있었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니 유독 그 시절 선생님이 그리웠다. 세이클럽이 인기를 끌었을 무렵 연락이 닿았던 적은 있었지만 그 후로 바쁘게 살다보니 연락이 끊겨버렸다. 예전 핸드폰 번호와 이메일을 보냈지만 반송되어 돌아왔다. 이러다 영영 선생님 소식을 들을 수 없으면 어쩌지 하는 조바심이 들어 슬픔까지 밀려왔다. 잘 계시다는 안부라도 듣고 싶었다. 언젠가 TV에서 해당 교육청에 연락하면 ‘스승 찾기’를 신청할 수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교육청 사이트에 들어가니 콜센타를 통해서 신청이 가능했다. 내가 다녔던 해의 학교와 선생님 성함을 알려주면 확인 후 문자로 통보해 준다고 한다. 다만, 개인정보 보호법 때문에 교육청에서 먼저 선생님께 정보공개를 허락한 후에 알려줄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상대방이 정보공개를 거부하거나, 세월이 35년이나 흘렀기 때문에 현직에 계시지 않고 퇴직을 하셨다면 찾지 못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5일정도 소요된단다. 혹시나 퇴직하셔서 영영 선생님 소식을 못 듣게 될까 두려웠다.

교육청에 문의하진 10분도 채 되지 않아 문자가 왔다.

‘ㅇㅇㅇ선생님은 ㅇㅇ초등학교에 재직 중입니다’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토록 찾고 싶었던 스승님이였는데, 막상 계신 곳을 알게되니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하나 두렵기도 하고 설레었다. 연락했다가 선생님이 날 기억하시지 못하면 어쩌지? 나에 대해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선생님이 기억을 하실까? 등등 괜한 걱정들이 스쳐지나갔다.

설레이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ㅇㅇ초등학교 교무실로 전화했다.

“혹시 ㅇㅇㅇ선생님이라고 계신가요?”

“저희 교감선생님이십니다.”

아, 35년 전 새내기 선생님은 세월이 흘러 교감선생님이 되어계셨다. 부재중이시라 하여 이름과 연락처를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혹 나를 기억을 못하시면 전화가 안 올지도 모른다는 잠시 잠깐 어리석은 생각도 들었다. 십분쯤 흘렀을까.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미경이냐?”

반갑게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분명 그 시절 선생님 목소리였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어도 단 번에 기억할 수 있었다. 굳이 나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선생님은 또렷이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다정히 내이름을 부르는 선생님 목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떻게 통화를 했는지 모르겠다. 목소리는 심하게 흔들렸고 눈에선 주책없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단지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스승님 목소리를 듣는 순간 12살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했다. 아마도 내가 찾고 싶었던 것은 그 시절 12살 어린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의 다정한 목소리가 그동안 힘겨웠던 내 삶을 괜찮다며 잘 살았다고 토닥 토닥 위로하는 듯했다. 선생님은 내년에 퇴직을 앞두고 있다고 하셨다. 퇴직하셨다면 어쩌면 영영 선생님 안부를 찾을 길이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이제라도 찾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퇴직 후에 완도에 꼭 한번 다녀가시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 때의 선생님 말씀이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마음은 당장이라도 그 시절 어린 아이가 되어 선생님~! 하고 큰소리로 외치며 달려가고 싶습니다.

철부지 12살 계집아이는 이제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덕분에 저의 붕새의 날갯짓은 아직도 비상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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