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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특집 에세이

우리집 길흉사가 왜 거지들의 잔칫날인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5.08 14:27
  • 수정 2020.05.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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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롱불 앞에 앉아서 어머니가 손수 자수를 놓아 시집올 때 가지고 오셨다던 80년이 훌쩍 넘은 배게머리는 우리집 가보가 되었다.

옛날에는 정말 거지들이 많았다. “ 거지 떼서리”라고 하며, 여러 명이 모여서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니던 시절이었다. 나도 거지들의 행렬을 따라 막대기를 들고, 땅바닥을 두드리면서 함께 길을 따라가던 기억도 있다. 이제 대한국민이 잘 살게 되어, 이제는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우리 어머니께서는 거지들이라도 정말로 지극정성으로 대접을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집 길흉사는 거지들이 먼저 알고 찾아왔다.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우리 집 주변에서 가장 시원한 사과나무 아래 자리를 깔아 놓고, 그들을 그곳에 모시고 일일이 음식을 소반에 차려서 우리들을 시켜서 공손하게 상을 올리라고 시키셨다.  아마도 우리들에게 교육을 시키시기 위해서 심부름을 시키신 것 같고, 또 거지들을 무서워하지 말라는 뜻도 있으셨으리라.

아이들이 음식을 공손히 올리면 그들도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어린 나는 왜 거지들을 이렇게 모시느냐고 물었다. “ 잘 들어 기억해 두어라. 그들은 가지 않는 곳이 없는 사람들이다. 너희들이 성장하여 혼인을 할 시기가 오면, 주변에서 우리 집을 탐문하게 될 것이야. 그때 그들의 입을 통해서 우리 집의 인심이 알려지는데, 보잘 것 없는 우리집이 인심 나쁘다는 소리는 듣지 않아야지.” 어쩌면, 어머니는 요즘 이야기로 ‘마케팅’을 하신 것이다. 홍보를 어떻게 하는지 그 시대에 홍보 대사가 거지들이었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통해서 입소문이 좋게 나도록 하기 위해서 자녀들은 좋은 가정에서 가정교육을 잘 받고 자랐다는 것을 타인의 입을 통해서 소문이 나도록 노력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음력 7월 11일) 한 무리의 거지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5일장으로 장례를 치렀는데, 그 기간 동안 거지들이 우리 집 일을 도와주셨다고 한다. 날씨는 덥고 손님은 많아 일손이 부족할 때 거지들이 발벗고 나서 심부름을 다 해주셨다.

특히, 그 당시는 개울가에 있던 우물에서 물을 길러 먹었는데, 집에서 우물까지는 언덕을 한참 내려가 먼 곳에서 물 지게로 물을 길어오는 게 가장 어려웠다.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거지들이 오셔서 물을 길어주고 떡 상자를 옮겨주고 부조라고 하여 식혜나 묵을 옹기 그릇 같은 곳에 담아오면, 멀리서 그림자를 보고도 달려 나가 받아 주는 것을 도와주곤 했다. 

유난히 손님이 많았던 아버지의 초상, 소상, 대상까지 3년 상!그때마다 잊지 않고 찾아와서 일손을 거들어 주던 거지들이 그 후로는 모습을 감추었다 한다.  어머니는 늘 후손들에게 복이 되는 삶을 살다 가셨다. 어머니가 계신 곳은 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와 행동으로 솔선수범하시어 사람들을 감동 시키셨다.

오히려 내가 어머니랑 오래 생활을 하지 못하여 진짜 어머니의 모습을 더 많이 몰라서 제대로 묘사하지 못함이 어머니께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한 세상 똑같이 살고 가지만, 사람의 삶에는 개와 같은 삶이 있고 소와 같은 삶이 있고 악마와 같은 삶이 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갈 것인가? 그것은 바로 본인이 선택할 몫이다.  어머니께서 우리에게 엄하게 교육을 하신 것은 한번 태어나서 죽는 삶이지만, 스스로를 욕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깨워 주시려고 참으로 힘들고 어렵게 세상을 살고 가셨다.

남들 눈에 비친 어머니가 모범적으로 보이지 않으실까봐 옷매무새 한번 흩트리지 않으시고, 장터에 가셔서도 국밥 한 그릇 드시지 않으셨다. 그런 어머니를 잘 알아 모시지 못하여 자식 된 도리로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사람 귀한 것을 알라 하시고, 지나가는 거지도 귀하게 여기시던 어머니! 그 가치를 어머니가 떠나신 다음 더욱 새록새록 느껴짐에 눈시울이 뜨거워 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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