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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범 자

에세이/ 이선화 넙도 작은도서관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4.24 14:53
  • 수정 2020.04.2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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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와 여자는 꽃샘추위가 시샘하는 봄날에 처음 만났다. 바닷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지쳐보였다. 여자는 쉴 곳이 필요했다. 여자는 주머니 속의 약병을 만지작거리며 힘없이 걷고 있다.
사내는 키가 크고 덩치도 있어 누가 보아도 듬직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좋게 말하면 장군감이고, 나쁘게 말하면 비만이다. 사내의 한쪽 눈은 감길락 말락하니 뜨고 다른 한쪽은 순한 사슴같은 눈이다. 사내는 그녀에게 지상낙원에서 왔다고 했다.

그녀는 사막의 오아시스를 연상해냈다. 야자수 그늘에 시원한 물과 양들이 풍요로운 모습이 머리에 그려진다. 사내가 같이 가겠느냐고 묻는다. 주머니 안에서 약병을 만지작거리며 사내를 따라 간다. 그렇게 사내와 여자는 동거를 시작한다.
 며칠 지나지 않아 사내의 한쪽 눈이 시력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잘 보이지 않는 만큼 예민했고, 짜증도 자주냈다. 바닷일을 나갈 때를 빼고 사내는 거의 방안에서 나오는 법이 없다. 바닷일이 고되기도 하고 눈이 아프다는 이유로 낮에도 사내는 커튼을 쳐서 어둡게 하고 지내는 것이다. 사내는 여자를 놓치기 싫은 듯 잘때도 손을 꼭 잡고 잔다. 마을을 산책할 때도 시장을 갈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여자 옆에서 뭐 거들것이 없냐며 마늘을 까고 시장바구니를 들곤하였다.

그렇게 서너달이 지나고 여자도 다른 섬 여자들처럼 사내를 따라 바다에 간다. 몸이 약하고 멀미가 심하여 제대로 일도 하지 못하면서 그래도 사내를 도와 무언가 할 일이 없을까 하며 배안을 오가곤 한다.
사내는 바다에서 돌아오면 술을 마신다. 여럿이도 마시고 혼자도 마신다. 한병도 마시고 다섯병도 마신다. 기분이 좋아서 마시고 화나서 마시고 거의 매일을 술을 마신다. 사내 옆에서 한잔 두잔 마시던 그녀는 이제는 사내만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제사고기가 있으니 술한잔 해야제. 횟감 있으니 한잔해야제. 이바지 들어왔으니 한잔해야제하며 이유도 가지가지다.
안주는 횟감부터 삶은 고기, 마른 고기, 나물, 심지어 과자하고도 술을 먹는다. 섬문화는 술문화가 한자리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술자리가 많다.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아지면서 사내는 난폭해지기 시작하여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더니 급기야 여자를 때리기까지 한다. 전복이 패사하고 돈벌이가 안된다는 소리가 많아질수록 싸움도 잦아졌다. 아무도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여자는 이제 바다에 가지 않는다. 술병을 들고 볕좋은 평상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사내는 이제 여자가 들어오든 나가든 신경도 쓰지 않는다. 니 알아서 해라 하는 것이다. 여자는 밥도 하지않고 밥을 먹지도 않고 아침부터 술을 마신다.
그렇게 하루 이틀. 잠이든 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 약병의 약이 한알도 남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마을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저럴 줄 알았어 저럴 줄 알았다니까.”
“젊은 것이 어쩐댜 불쌍해서 어쪈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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