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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과 쉼의 미학!

완도차밭, 청해진다원의 茶 文化 산책(107) 김덕찬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4.03 11:00
  • 수정 2020.04.0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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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에서 차 한 잔의 여유로움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홀로여도 좋고, 더불어 말없이 마음 나눌 수 있는 벗과 함께여도 좋다. 이 처럼 차 한 잔을 마주하는 시간이면 참으로 평온하고 여유롭다. 일체 아무런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차의 양, 물의 온도, 우려지는 시간, 다기의 따스함, 이윽고 피어나는 차의 향, 맑고 투명하게 우려지는 차의 색, 거기에 은은하고 고요하고 밝은, 반짝거리듯 총총한 빛의 에너지 다발이 마구 쏟아져 내린다. 찻잔 속으로! 그 어느 한 생각도 끼어들지 못한다. 그저 차향속에 푸~욱 빠져들게 된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머리는 더욱 맑아지고, 몸은 따스한 에너지가 안으로부터 스멀스멀 나오는 듯 온 몸을 휘어감는다. 이미 몸의 긴장과 마음의 긴장은 녹아 없어지고 평온함만 깃들어, 한없이 넓고 높은 구만리 창천을 유유히 유영하듯 노니는 붕새의 마음이 이럴까! 낮 동안의 피로감과 번민들은 모두 사라져 없다. 텅 비어 고요하니 그 안에 따로 고통이랄 것도 없다. 차 한 잔 마셔내며 얻을 수 있는, 즉 중정의 다법으로 지극한 다법의 묘경에 들면 이미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은, 그러나 모두 그대로 여여한, 구경에 들 수 있다. 이것이 명상의 구경과 다르지 않으니, 바로 다선일미요, 다도일미의 묘경이지 않을까! 차와 명상! 둘이되 둘이 아닌 경계이며, 하나이되 역력히 둘인 상태 그대로이니! 오호라, 차 한 잔이 갖는 신묘함이여! 이것이 바로 쉼의 극치이며, 이 상태로 말미암아 치유가 일어나고, 이를 일러 차 명상이라 하며, 또한 미학적 극치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다법의 묘경을 통해 심미적 가치를 바로 내 안에서 실현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쉼이란 무엇을 말할까? 앞서 언급한 차 한 잔 우려내고 있는 상태를 보자. 오롯하게 차를 우려내는 일련의 과정에 오롯하게 몰입되어 있는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 그 순간 만큼은 불필요한 보고, 듣고, 말하고, 만지고,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등의 모든 작용이 모두 멈추어 있고, 오직 행다의 다법에 몰입되어 있다. 즉 스스로의 참나상태로 여여하게 존재하고 있는 상태임을 이야기 하고 있다. 다른 각도로 보면, 나라는 일체의 에고가 멈춘 상태임을 바로 쉼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미 행다의 다법과 하나되어, 그냥 무위의 행다 상태 그대로인 것이다. 그런데 그 상태를 그냥 단순한 상태라고 하지 않는다. 즉 단 한 순간도 다른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음은 바로 고도의 일심상태이며, 또한 오롯한 다법의 원리를 스스로 그대로 구현해 냄은 바로 고도의 원리적 이해의 극단이고, 행다 전 과정의 완성도 높은 다법 시연은 바로 오롯하게 익어있는 취사의 극단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억지로 나누어 표현해 보았지만, 사실은 나뉜 상태의 셋이 아니라 이미 그 상태가 바로 궁극의 하나인 상태이다.


  고도의 정신적 몰입상태는 사실 쉽게 얻기 어렵다. 수없이 많은 시간을 통해 오롯하게 들이는 정성의 극치가 아니면 쉬이 얻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경우라면 더욱더 그 묘경을 체험하기란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 세계를 전혀 체험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세계를 위한 시작, 즉 한 걸음의 내 딛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 하였다.


  차 한 잔의 쉼은 인위적이지 않는 무위다법의 구경이지만 알아차리는 깨어있음을 놓치면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 없이 편하게 차 한 잔 마시는 데서부터 시작함을 잊지 말자. 그냥, 오롯하게 나 자신을 위해 차 한 잔 정성스레 대접해 보는 시간을 갖자. 그 시간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는 나만의 오롯한 시간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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