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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충격과 대안!

완도차밭, 청해진다원의 茶 文化 산책(105) 김덕찬 / 원불교 청해진다원 교무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3.20 15:39
  • 수정 2020.03.2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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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발병한 유행성 질환으로 '코로나19'라고도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전 세계 여러 나라로 확산되자 1월 30일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으며, 3월 11일에는 팬데믹(감염병 세계 유행)을 선언했다. 현재 백신 항원이 우리나라에서 개발되어 임상실험중이라 하지만, 아직은 예방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30초 이상 손을 자주 씻고 말리기, 외출 시 위생 마스크 착용하기, 사람의 밀집 장소 피하기, 기침과 재채기 등 호흡기 질환자와 떨어져 있기 등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번 코로나19는 인류가 이룩한 최고의 지성이자 정신문명인 종교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즉 종교의 신앙과 수행적 의례인 각종 의식을 멈추게 한 것이다. 위의 예방법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의 헌금이 없으면 현실적으로 운영이 어렵다며 종교의식을 강행하여, 스스로 감염의 전파역할을 솔선하는 꼴이 되어, 세상의 혼란을 더욱 가중하고 사회적 심각한 물의를 일으키는 더욱 안타까운 상황을 만들었다. 같은 이유로 슬그머니 문을 걸어 잠근 곳도 있다. 즉 헌금이 목적이고 사회의 고통을 방관하는 종교가 과연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인가? 이제 그러한 종교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워야 하지 않을까?

즉 ‘우리 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단순히 전염방지 목적을 위해 두 손 놓고 막연히 기도만 하면서 기다려야 하는 무기력한 종교! 과거에 난세를 구제하려고 온갖 몸부림과 생명마저 내놓는 그 숭고하고 거룩한 성현들과 선지식들께서 솔선의 표본으로 보여주신 희생적 삶과 구도적 열정은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즉 종교 본연의 역할에 대한 직무 유기다. 이러한 난국을 등지고 지상낙원은 어디서 찾고, 어느 곳에 건설하려 하는지 알 수 없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종교는 이웃을 향한 따스한 손길이며, 위로이고 격려이며 사랑과 헌신적인 봉사인 것이다. 또한 온갖 거짓과 위선과 오만과 독선이 없는 투명하고 밝은 진리적 보편성과 사실적 도덕에 기반하여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정신적 리더쉽을 갖춘 묵묵히 그 역할에 충실하며 실천하는 종교라야 하지 않을까? 종교인의 한사람으로 수치스럽고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다행이도 마스크 공급의 대란을 극복하기 위해 뜻있는 개인, 단체들이 마스크를 만들어 공급하는 사례가 미담이 되고 널리 확산되고 있다. 또한 의료진들과 봉사자들, 그리고 개인적 기부자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역시 빛나고 숭고하고 거룩하다. 그 어떤 종교와 성직자들보다도. 이로 말미암아 우리 인류는 다시금 영적 진화를 꾀하는 기회로 삼고 더욱더 지혜를 연마하고 바른 실행에 거듭 힘써야 할 중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집단적인 종교행위가 멈추어야만 비로소 사회와 세상이 안정을 찾고 치유가 되는 상황까지 왔다. 진정한 신앙과 수행에 대한 정신차림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안에 깊이 잠들어 있는 순수 지성을 깨워야 한다. 순수 지성을 깨우는 유일한 방법은 다름아닌 바로 깊은 명상이다. 사사로움으로 분별과 집착하지 않는 힘을 키워야 한다. 또한 차는 그 심신을 더욱더 맑고 밝고 강건하게 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차를 바빠서 못마신다고 한다. 특히 성직자들은 이 바쁜 세상에 어찌 한가하게 차나 마시고 앉아있겠냐고 반문한다. 차는 고요와 여유로움이다. 차 한 잔과 명상, 진정 이 시대에 필요한 우리의 수양 덕목의 하나이지 않을까? 또한 차의 가장 강한 효능인 해독성과 면역력증강 작용은 우리의 심신을 평온하게 하여, 명상의 극대화와 많은 난제 해결의 묘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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