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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박소현 / 횡간도 보건진료소장

이제 너, 내 딸 안하련다! ”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3.20 15:37
  • 수정 2020.03.2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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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너 내 딸 안 하련다. 전화도 한 통 없고 서운하다.”
아버지다. 멀리 서울에 계시는듯한 느낌이 든다.
더구나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영상통화를... 반갑기도 하고 놀란 마음에 “아빠, 미안해. 내가 코로나19 때문에 집에 못 간지 두 달이네. 이래저래 바쁘고 정신없어 전화라도 드려야지 했다가 잊고 또 잊고...” 말씀드리자 언제 서운해하셨냐는 듯 “우리 딸 아빠가 미안해. 바쁜 것도 모르고 투정 부려서.”


마음이 풀리신 것 같아 웃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달력을 보니 곧 아빠 생신이 돌아온다.
살아계셨을 적에 생신이 돌아오면 외식이라도 하자고 제안하던 엄마에게 “잘 먹은 날이 생일이지. 생일이 무슨 의미가 있어?” 답하고 조용히 넘기려던 아버지. 9남매에 일곱째로 태어나 제일 큰 형님 내외 댁에서 학교 다니며 자란 탓에 생일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엄마를 만나 결혼하기 전까지는. 심지어 수학여행을 본인이 선생님이 되고 학생들을 인솔해 처음 가본다고 수학여행 가는 설렘을 엄마에게 고백하셨다니 참 마음 아프다. 어차피 이번 주말에도 나는 집에 가지 못하니 엄마와 막내 이모 편에 아빠 생신 케이크 하나 사서 다녀오시라 했더니, 엄마는 돌아가신 분 생신이 무슨 의미냐고 했다가 아빠가 간밤에 전화 왔더라 말씀드리자 그제야 알았다 하신다.


동네 주민들은 더 바빠지신 듯하다.
도시의 자식들이 마트 가는 일도 수월하지 않을 거로 생각하셨는지 밭에서 야채 뽑아 김치 담그고 바다에서 낚은 고기들, 해초류까지 모아 택배로 보내시기 여념이 없다. 주말에 집에 못 가는 것을 애잔하게 여기시고는 내 몫까지 챙겨주신다. 근무 끝난 저녁에 우두커니 앉아 있으니 “박 소장! 소장님!”하고 애타게 부르는 통에 깜짝 놀라 나갔더니, 얼굴엔 모래진흙을 위장전술 나가는 군인처럼 칠하고 양쪽 종아리는 내의와 바지를 돌돌 말아 걷어 올렸다.
얼굴이며 종아리가 푸르딩딩해 보여 바다에 다녀오신 게 틀림없다.


“엄마! 이 추운디 뭐한디 바다에 갔어? 감기 걸리믄 어떻게 할라고!” 밀고 다니는 유모차 닮은 보행기 가방에서 굴멩이(군소)를 꺼낸다. 한 마리, 두 마리에 “됐어, 엄마.” 세 마리가 되자 “그만!” 이제야 고개를 든다.
“소장 네가 내 딸 같이 한께야! 매일은 못 준다마 오늘은 여럿이 바다에 갔어도 다들 마이씩 잡았어. 그래서 너 주고 재핀께!” 아이고, 울컥한 맘도 들고 얼른 들어가서 파스 한 장 가져와서 붙이고 주무시라 하고 내일 진료소에 내려오시라 했다.
안마의자라도 하시게 하려고. “창시 잘 빼서 끼리쳐서 맛나게 잡솨. 너머 너머 고마워.”하시며 보행기를 밀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아도 아침에는 다른 어머니가 며칠 전 택배로 파김치 보낸 것을 자식들이 맛있다고 했다며, 이번에는 나 주려고 무생채와 파김치를 담가오셨다. 집에 안 간 지 오래되어도 이상하게 냉장고에 먹을거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동네 어르신들은 간자미에 문어도 경운기 타고 가시다 주고 가시고 가뜩이나 주말에 집에 안 가니 활동량이 줄어 살이 찌는데 더 통통해져 간다.


도시에 사는 친구들은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으로 저녁 약속을 못 잡으니 책을 읽게 되더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청정지역에 사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가, 집에 못 간지 두 달이 지나간다고 하면 그 소리가 쏙 들어간다. 매번 쉽게 보고 싶은 사람을 보다가 이제는 그리워도 참아야 하는 시간이 왔다.
이번 위기를 극복하게 되는 날 나는 가족들과 무엇을 할까 행복한 상상을 해보며 이미 성큼 와버린 봄을 잠시 접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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