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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시론] 정택진/ 소설가

꽃은, 땅에 진다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20.03.20 15:30
  • 수정 2020.03.20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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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잎사귀 사이에 피어났던 동백이 졌다. 목을 꺾어 땅으로 툭툭 떨어지더니 사라지고 없다. 뒤이어 산에는 오리나무 싹꽃이 피어올랐다. 황량한 들판에 연초록으로 나오는 것이 마치 작은 꽃송이처럼 보였다. 들판에서는 쑥이, 습한 곳에서는 머위대가 올라오는 것도 그즈음이다. 지금은 피종가리 향기가 온 천지를 채우고 있다. 꽃은 안 보이는데 밤꽃향기 같은 특유의 냄새가 동네에까지 내려온다. 봄의 꽃으로는 가장 이르다.

진달래와 목련이 뒤를 이었으니, 봄은 향기와 함께 오는 셈이다. 땅속에서 숨죽여 있던 것들이 땅의 위로 올라오는 때이니, 봄은 생명의 계절임에 틀림없다. 땅이 키운 저것들은 세상으로 나와, 싹을 틔우고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고 성장해갈 것이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생자필멸’의 운명이니 저것들은 가을이면 시들 것이다. 그러고 보면 생명의 저 시작이, 달리 생각하면 사실은 소멸의 시작인 셈이다.

생성이 곧 소멸이니 그것을 일러 서양의 철학자는 ‘부조리’라 했던가.
인간도 분명 자연의 한 부분이므로 주변에 펼쳐지는 자연현상은 곧 인간의 모양새와 탁해 있다. 태어나서 살다가 그리고 때가 되면 지는 것이나, 동백꽃처럼 큰 모양새로 핀 것이 있는 반면 개나리나 피종가리처럼 아주 작게 핀 것이 있다. 세상에 크게 이름을 날린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듯, 이르게 핀 사람이 있고 늦게 핀 사람이 있듯. 그가 어떤 무게의 삶을 살았고 어떤 크기의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생명의 법칙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자연계를 지배하는 그 절대법칙에서는  절대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그 법칙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 존재는 이미 생명이 아닌 존재가 돼버리고 만다.  인간은 분명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무한대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인 그가 상상은 하고 있지만, 만들 수 없는 것은 그 상상의 종류만큼이나 많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소독을 하는 것과 마스크를 쓰는 일뿐이다. 과학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백신을 만드는 상상을 하겠지만 아직까지는 그저 시도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게 지금 인간이 다다라 있는 능력이다. 인간은 자신들이 쌓은 업적들에 바탕해 언젠가는 코로나 백신을 만들겠지만, 그 다음에는 어쩌면 더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코로나보다 더한 것이 출현할지 모르고. 그것을 발전의 과정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달리 본다면 끝없는 악순환일 수도 있다. 코로나의 진원지가 된 ‘신천지’는 영생을 꿈꾸었다고 한다. 바이러스 하나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보통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영생’을 믿었다고 하니 가히 넋칠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늘에 닿기 위해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신의 분노는 샀을지라도 도전의식이라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땅에서 탑을 시작함으로써 적어도 인간으로부터 발돋음을 했다. 그런데 코로나를 종교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자신들에 대한 박해로 보는 이들의 발은 대체 어디를 디디고 있는 걸까. 설사 영생을 얻을 수 있다 할지라도, 영생을 얻을 육체가 있어야 그게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 육체가 의지하고 있는 곳은 분명 땅이다.  무덤은 소멸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이 낳은 결과물일 것이다. 동그마한 뫼뚱이 있던 자리에 대리석으로 만든 납골묘가 들어서고 있다. 그것이 현실적 편의 때문이든 영원에 대한 인간의 욕망에 기반한 것이든, 나는 그것이 마치 하늘로 지겠다는 꽃인 것만 같다.

땅을 디딘 발은 없고 오직 하늘로 향하는 눈길만 있는 존재로 보이는 것이다.  같이 살던 사람들은 다 사라지고 없는 땅에 혼자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존재가 연상되는 것이다. 그것이 동백꽃이든 피종가리 꽃이든, 진달래든 장미꽃이든, 세상의 모든 꽃은 땅에 진다. 생로병사처럼 그것은 절대불변의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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