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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서 위험할 때 “마~조!” 이름만 불러도 도움 손길[기획 특집] 완도의 마조신앙
김형진 기자 | 승인 2020.02.02 18:56
청산면 신흥리 신당(사진 좌측)과 중화권의 도교 사당에 세워진 전통적 형상(사진 우측)

편집자 주> 마조(女馬祖)라는 도교의 해상 수호신인 여신이 있다. 마조의 성은 임씨이며, 북송 초기인 906년에 태어났으나 한 달이 지나도록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 그 이름을 묵이라 불렀으며 또한 여자였기 때문에 임묵낭이라고 하였다. 어릴 때부터 기이한 능력을 보유하였다. 
16세 되던 해 부친과 형제들이 바다로 나갔다가 풍랑을 만났을 때 마조는 꿈속에서 헤엄으로 물에 빠진 부친과 오빠들을 구하려고 애서 오빠들은 구해냈으나, 이들이 죽은 줄 알았던 어머니의 통곡소리에 입에 물고 있던 부친을 놓쳐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오빠들은 풍랑 속에서 무엇인가에 의해 위로 들려져 살아났다는 기적적인 사실을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함으로써 이야기가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사람들은 바다에 나가 위험이 닥칠 때면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마조’를 찾기 시작했는데, 그러면 어김없이 그녀가 나타나서 도움의 손길을 뻗어주었다고. 오늘날 대만에서 마조는 옥황상제보다 더 인기가 높을 정도이다. 타이완의 종교는 불교, 도교, 민간신앙이 혼합돼 있다. 본당에는 관음보살을 중심으로 문수, 음현, 관음보살 등이 있고 후전에는 바다의 신 마조 등의 신불을 기리고 있다. 
대만 전통신앙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마조신앙이다. 마조신은 대만과 푸젠성 등 중국 남부에서 바다의 뱃사람의 수호여신으로 신앙되는데, 전통적인 마을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청산면 신흥리 불당신제와 생일도 학서암 등 조선시대 들어 온 것으로 전하는 완도의 마조신을 소개한다.


바다 여신 마조신앙을 바탕한 신흥리 불당산제

본 이야기는 청산면 신흥리 이해택 씨와 주민들이 구술한 이야기로  2008년도 김하룡 전 완도문화원 사무국장에 의해 조사됐으며 지종옥 문학박사가 감수한 내용이다. 

신흥리는 이조 숙종대에 당시 사정리(현 청산면 상서리)의 덜리에서 연안 차씨, 언양 김씨 등이 해안을 따라 해초와 고기잡이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이주하여 살았다고 전하나 확실한 내력은 알 수 없다. 조선 17대 인·효종대에 언양 김씨 등이 입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입주 당시의 마을 이름은 1729년 호구총수에는 해의리와 신흥리로 되어 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불당곡(성산포)과 해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1896년의 호적대장 상의 기록에 신흥리로 표기된 것을 근거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의 정신적 지주로 소중하게 모셔오던 불당은 당초 마을 앞 당제에 있었는데 신흥리 포구가 한참 파시를 이루던 때였기에 당 주변이 왁짜지껄 시끄럽고 정결하지 못하여 주민들은 조용하고 전망이 좋은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당 제주 선정은 마을 대동회의에서 사전에 선정하는데 가장 참신하고 신망이 투터운 사람을 지정하여 정갈한 제물을 준비해 매년 정월 초하룻날에 성산포 바닷가 동쪽에 불당 당집에 신당을 모셔놓고 주민의 안녕과 풍어를 위해 제를 지내고 있으며 제가 모두 끝나면 마을 중요한 곳 공동샘, 선창, 동사무소 등에서 지신밝기 굿을 친 다음에는 각호를 돌면서 마당밝기 굿을 친다. 이때 가정에서는 돈과 쌀 정화수 등을 마당 가운데 차려두고 뿌리면서 오만 잡귀신 다 물렀거라 하면서 액을 쫒아내주고 또 다른 집으로 돈과 쌀은 이장이 자세하게 기록하여 대동회의시 마을주민에게 보고하고 마을공동기금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떠나고 마을에는 노령화로 육체적 경제적 어려운 사람만 남아 있어 옛날과 같은 당제는 못올리고 이장이 간소하게 제물을 올리고 있다는데, 향토사학계는 이충무공전서에 나타난 청산 상산포 진린 도독비와 관련해 이곳의 마을 공동제사가 마조여신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진린이 가져온 마조 여신이 깃든 생일도 학서암

다음 이야기는 샘물출판사 이광호 대표 광남일보에 연재한 글을 발췌했다.
미역과 관련된 마고할미의 이야기가 생일도에서 시작한다고 밝힌 이 대표는 " 마고할미는 마고와 마조가 이 땅에서 토속화된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해양의 여신이 마고할미인데, 중국에서는 할머니가 아닌 18살의 처녀 마고와 28살의 마조로 등장하나 한국에서만 할머니로 등장한다" 고.

생일도의 마조신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진린 도독이 가져왔다고 밝히고 있다. 
바다에서의 안전한 항해와 안녕을 지켜주는 여신으로 조난 위험 시나 혹은 험한 풍랑 속에서도 마조를 부르면 나타나 지켜준다는 바다의 여신 마조. 그 마조상이 진린의 조선파병과 함께 세워졌고 또한 왜구를 물리친 진린의 승리가 이 마조여신의 덕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사는 섬에 당(堂)을 지어 제를 올리며 평화를 갈구하는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라고 밝혔다.

생일도는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깊어 좋은 미역이 나는 곳이었고 또한 궁방(宮房)에 소속돼 미역을 공납하고 각종 부역이나 군역에서 해방되는 곳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당시에도 미역은 고가에 거래됐고 미역이 나는 곽전(藿田)은 아주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누구나 함부로 아무나 채취할 수 없었다. 무단채취하다 걸리면 치도곤을 당하곤 했다.

생일도를 중심으로 미역과 전복을 채취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으며 조선왕조실록에도 “연해의 여러 고을에서 봉진하는 해산물의 진품은 모두 포작인이 채취하는 것입니다”라고 했으며 “전선(戰船)은 포작인이 없으면 운행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이 때 완도를 비롯한 전라도인들은 울릉도와 독도까지 진출해 미역과 전복을 따면서 돌섬을 독도라고 부르면서 현재의 독도가 됐다고 한다. 
홀로 외로운 섬이 아닌, 전라도 포작인들이 미역을 채취하는 돌섬이 바로 독도였다고 밝혔다.

또 왜구들이 거문도나 청산도에 침입하면 포작인들은 생일도에 모였다. 생일도는 백운산이라는 높은 산이 있어 조망하기 쉬울 뿐더러, 수심이 깊고 해안절벽이 발달해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고, 또한 백운산 정상에 성을 축조, 왜구들과 대치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후방기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는데, 진린 도독의 마조신의 영향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청산도 상산포의 여신상이라고.

그리고 백운산에 주민들 모두가 추렴, 자신들을 지킬 수 있는 학서암(1719년)을 만들어 정신적인 지주로서 키워나가고자 했으며, 마고할미당을 만들어 미역을 바치며 풍어와 풍작을 기원하는 제를 지금까지 300년 넘게 지내오고 있다.

“한겨울에 전복을 캐고 한추위에 미역을 채취하느라 남자와 부녀자가 발가벗고 바다 밑으로 들어가 떨면서 물결에 휩싸여 죽지 않은 것만도 참으로 요행이며, 해안에 불을 피워놓고 바다에서 나오면 몸을 구워 피부가 터지고 주름져서 귀신처럼 추한데 겨우 몇 개의 전복을 따고 어렵게 몇 줌의 미역을 따지만 그 값으로는 입에 풀칠을 하면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라는 기록에서 당시의 실상을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마고할매에게 의지하였던 것이 아닐까. 마고할매가 지켜준다는 생각으로 그들은 삶을 영위했다고 본다고. 

생일도의 마고할미당에는 아무런 상(像)이 없다. 그저 신위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진린 도독이 가져온 마조처럼 젊은 선녀가 당을 자리하고 있는 곳이 있는데, 생일도가 마주 보이는 청산도 상산포 당(堂)이다. 생일도와 청산도의 사이에는 과거부터 질좋은 넓미역이 자라고 이를 귀하게 여겼다. 지금은 찾기 힘들지만 생일도와 청산도 사이의 바다에 자생하는 넓미역을 채취하기 위해 생일도 및 청산도, 삼도진역(소안도, 보길도, 노화도)에는 미역을 채취하기 위한 포작인들과 포작선들로 넘쳐났다고 한다.

미역을 바치고 풍작과 안녕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또한 그 당에 젊은 여성을 모시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말하는 마조와 마조의 상이 한국적으로 변형된 모습으로 볼 수도 있다.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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