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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서향을 천리향이라 했던가

[완도의 자생식물] 128. 서향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20.01.23 14:52
  • 수정 2020.01.23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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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기쁨 속에서 평화와 풍요로운 생명을 가슴 가득히 채워 준다. 그대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있다 하여도 나의 행복은 그대 속에서만 충만하다.

그대 괴로움이 지나고 미완성으로 남은 삶은 구만리장천이다. 지독한 그리움이 독이 될지언정 그 연한 눈물로 마음을 다독이며 그냥 가자. 씨줄과 날줄로 엮어갈 사랑도 그 부드러운 숨소리가 없으면 무슨 향기가 있으랴. 운명은 소리 없이 다가오지만 그 향기는 구만리에서도 낱낱이 듣나니 임의 목소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걸. 사랑은 내 앞에서 안부를 묻는다.

들꽃은 잔잔 물가로, 꽃향기는 언덕에 앉아 봄볕을 맞이하고 한 없는 사랑은 꽃을 꺾으려 한다. 그리움이 천리만리 떨어져 있든 간에 가장 깨끗한 꿈을 꾼다. 사랑은 그 깊이를 알 것이지만, 그래서 더 외로워한 님. 누가 서향을 천리향이라고 했는가. 천리는 약 400킬로 떨어져 있는 데 그렇게 멀리 있는 꽃으로 부르고 싶은 모양이다. 사랑이 가깝게 있을수록 멀리 날아가는 향수가 되고 싶을까. 소망하는 것들은 다 멀리 있다. 그래야 지고지순한 사랑이 될 수 있으니까.

서향은 상스러운 기운이다. 앞으로 좋은 일이 일어날 기운이다. 따뜻한 남쪽에서 자라며 키는 2미터 정도다. 꽃은 이른 봄에 핀다. 꽃향기가 멀리 간다고 해서 천리향이라고 한다. 또한 만리향이라고도 부른다. 가을에 피는 만리향도 있다.

물푸레나뭇과인 상록수인데 금목서이다. 꽃은 주황색으로 자잘하게 피며 키는 2~3미터이다. 요즘 정원수로서 가을의 꽃향기가 뜰의 안팎으로 그윽한 분위기를 만든다. 서향과 금목서는 하얀 꽃을 달고 있는 것도 있다. 서향은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하얀 꽃을 달고 있는 서향은 원래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꽃이란다. 백서향도 꽃이 단출하면서도 향기가 그윽하며 꽃향기가 멀리 가 정원수로 많이 심는다. 거리의 단위를 리로 사용해왔다. 오리, 십리, 백리, 천리, 만리, 구만리 길로 오고 가는 사람들은 왠지 인간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십리 길은 약 4킬로 정도다. 네 마을 사이를 오가는 거리이다. 이 정도에서 우리 옛사람들은 심리적 거리를 두고 살았다.

십리 길을 넘어서면 천리 길, 만리 길이 되고 만다. 구만리 길에서도 그대의 향기를 맡고 싶다. 그 향기를 맡으면 가슴이 뚫어질 것 같다. 이른 봄에 핀 서향의 꽃잎에서 마르지 않는 눈물을 깨끗하게 씻어 밤하늘의 푸른 별이 되어 주기를. 수천 번의 너를 끌어 안으면서도 너를 꺾지 못한 이유는 천리 길 마다하지 않고 매일 찾아 온 그리움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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